뭐라도 했다고 말해보자
딱히 계획을 세우고, 지켜나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보통은 하나만 건지자는 심정이다. 굵직하게 기억할 만한 하나만 있으면 올 한 해도 어쨌든 잘 보낸 거라는 생각.
'옥상공방'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면서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사실 그다지 적을 게 없다. 이름을 정한 것 말고는 고민과 회의의 반복이었지 실제 진행하고 마무리한 일은 없다. 그래도 굳이 한 일을 꼽자면 팀을 꾸리고, 이름을 정하고, 방향을 설정한 것 정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면,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업자 이름을 달고 한 일이 조금씩 있다.
먼저 연초에는 함께 지내는 분을 통해 3D 모델링 작업을 외주로 진행했다. 혼자 한 것도 아니고, 결국 일이 늘어지면서 마무리는 함께 하던 분이 도맡아 해 주셨지만, 디자인 관련 첫 외주(생각해보니 2017년에도 간단한 일이 하나 있긴 했다)이자 3D 작업을 통해 수입이 발생한 것이 처음이라 기억에 남는다. 이 일을 통해 블렌더(오픈소스 3D 프로그램)에 조금 더 익숙해질 수 있었고, 짧은 기간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컬러 보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겼다. 컬러 MDF 소재를 활용하여 데스크용품을 제작하는 프로젝트였는데, 단기간에 3~4개의 간단한 제품을 디자인하고, 시제품 제작까지 완료하여 아이디어스 등에 출시하였다. 제품들은 모두 조립식으로 구성하여 구매자가 직접 조립해볼 수 있도록 설계하였는데, 이런 제작 방식이 나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 자체는 크게 성과 없이 흘러갔고, 올해를 마무리하며 정리할 생각이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습득한 작업 방법 등은 향후 제품 개발에 활용할 계획이다.
'반자동 모듈식 목공툴'이라는 아이템으로 지원 사업에 지원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그동안 나무로 직접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직접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여 진행하였지만 지원사업이 끝나는 시점까지는 썩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지 못했다. 다만, 직접 툴을 만들어보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니 조금 더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 가지 기술을 학습하면서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었다.
플라스틱 컵 회수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알게 된 분이 추진한 프로젝트였는데, 한 해 배출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테이크아웃 커피 컵)이 너무 많고, 아무 데나 막 버려져 큰 부피를 차지하니 이것을 어떻게 하면 덜 쓰고, 잘 버리게 할 수 있을까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사실 처음에는 버려지는 플라스틱 컵을 잘 모아서 재활용이 가능한 단계까지 한 번에 구현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컵을 잘 수거하는 프로젝트가 되었는데, 이런 의사 결정 과정에서 보고 느낀 점들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배운 점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크고 복잡해 보이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그 모든 과정을 한 번에 할 수 없으니 관심의 범위를 좁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푸는데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른 글을 통해 적겠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큰 문제에 접근하는 (실제로는 작은 문제를 푸는데도 유용한) 생각과 방법을 몸소 겪으며 익힐 수 있었다.
선물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옥상을 조금씩 더 작업하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기도 했다. 얼마 전에 시작한 배려 거울 프로젝트(이것 또한 위의 '플라스틱 컵 회수 프로젝트'를 추진하신 분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이다)도 있고, 개인적으로 진행한 일들도 있으니 올 한 해 기억에 남길만한 일들은 충분한 것 같다. 이 기세를 몰아서 내년에는 조금 더 인상적인 일들로 채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