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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군 Dec 23. 2018

(또) 팀을 만들다

이번엔 다르겠지

또 나만 뛰고 있나? 왜 구경만 하는건데요? 니들은?!  -   https://pixabay.com/


회사를 그만두고 야인으로 살며 여러 번 팀을 꾸려보려 했지만, 번번이 안착에 실패했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친구가 어느 순간 나의 일상에서 사라진 걸 깨닫는 건 퍽 씁쓸하다. 실패의 이유를 곱씹는 것도 매번 하기엔 썩 유쾌한 일이 아니라 한동안은 팀을 꾸리려 했던 노력과 그것이 무위로 돌아갔음을 그저 사실 그 자체로만 기억했다. 덧붙여 홀로 온전히 서기까지 다시는 가벼운 협업 이상의 관계를 꾸리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9월 즈음엔 나에게 '장사'는 너무 어려운 일이라 여겼고, '무엇인가를 만들 것인가?'와 '무엇인가를 팔 것인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려 하고 있었다. 아니, 사업자를 내놓고 '물건을 팔 것인가?' 따위의 질문을 하고 있었다니, 이미 글러 먹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맞다. 그 무렵 나는 이미 글러먹었고, 지금도 글러먹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무엇을 잘 만들지도 못하는데, 잘하지도 못하는 '파는 행위'에 대한 고민과 부담도 함께 끌어안으려니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차라리 하나하나 집중해서 배우고 익히길 반복하는 게, 여러 가질  부여잡고 자리에 뭉개고 앉아 있는 것보다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한 선택은 '일단 만들자. 파는 건 모르겠고'였다.


이것도 내가 할 일, 저것도 내가 할 일, 까먹고 안 적은 것도 내가 할 일.  -  https://pixabay.com/


결정을 내린 후 오랜만에 만난 L과 이야기를 하던 중 어쩌면 이 친구에게 도움을 받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포기를 결심했는데, 이 마음을 뒤집으면 이번 기회에 정말 제대로 뭔가 배워서 한 단계 뛰어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L이 대단한 영업맨이라거나 이런 건 아니었지만, 나보다 관련 분야에 경험이 많았고(나는 아예 없으니ㅠㅠ), 나보다 트렌드에 민감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겐 무엇이든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L과 다시 한번 팀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은 퍽 즉흥적이었다. 직전까지의 결정을 뒤집고 L에게 배움을 요청한 것도 그랬지만, 그냥 도와주는 것보다 직접 한 팀이 되어 자신의 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L의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그러자고 한 것도 다분히 순간적이고, 즉흥적이었다. L의 의지가 고마웠고, 어차피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니 그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 해보자고 했다.


이 손을 잡으면 일은 니가 하고, 돈은 내가 받는 거임  -  https://pixabay.com/


L과 팀을 꾸리고 약 3개월이 흘렀다. 그간 L은 회사일, 나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바빴다는 핑계에 기대어 많은 일을 하지 못했다. 다만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생각을 나누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조금 더 고민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L과 3개월 남짓을 함께 하며 팀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간 내가 꾸려온 팀은 비슷한 역할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니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고, 서로의 작업에 피드백을 주기는 쉬웠지만, 모두가 비슷한 취약점을 갖고 있었고, 이는 팀 전체의 약점이 되었다. (나 같은 사람들만 모여있으니 세일즈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ㅠㅠ) L은 확실히 나와 다른 영역의 사람이고, 둘 사이의 차이가 큰 만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이 넓었다.(물론 기대일 뿐이고, 그것마저 일을 했을 때 말입니다.)


L은 지금은 비록 세일즈의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진 않지만, 한 때 그쪽 분야에서 일을 했었기에 나름의 전문성이 있고, 나도 그간 좌충우돌하며 성장(했겠지?)한 덕분에 나름의 전문성을 갖춰가고 있기에 두 사람의 만남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동안은 내가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없어서 전문성을 갖춘 상대에게도 충분히 요구하지 못하고, 시너지는 커녕 서로를 안주하게 만드는 식으로 팀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관대함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렇게 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안주하다 하나 둘 흩어졌다. (흩어진 이후엔 관계도 덩달아 끝이 난 경우가 대부분이니 사실 좋은 게 결국 좋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다.)


L과 팀을 꾸리면서 결국 나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둘은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팀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많은 글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라고도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점을 직접 느끼고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간 팀이 흩어질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서 혹은 함께한 이들에게서 이유를 찾곤 했다.


드... 드디어!!! 깨달은 것 같아! 이제 부자 되는 건가?!  -  https://pixabay.com/


어쩌면 L과의 협업도 이전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로 끝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또 한 번의 실패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분명 L과 팀을 꾸리면서 했던 생각, 어떤 사람을 찾고, 어떻게 가치를 모으며, 어떤 식으로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또 한 번의 경험이란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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