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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군 Jan 31. 2019

생각을 위한 시간

생각하는 것에도 충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최근 한 유튜브 영상에서 생각하는 시간과 행동하는 시간을 나눠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과 행동을 병행하면 생각의 속도가 행동의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행동이 충분히 이뤄지기도 전에 생각이 이미 거대해져 (혹은 자주 방향이 바뀌어)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생각만 하기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각을 위한 시간을 따로 할애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늘 큰 그림, 멋진 상상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에게 확 와 닿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해 봅시다.  -  https://pixabay.com/


계획은 단순했다. 일요일 점심시간 이후를 나를 위한 시간으로 할애하고, 주간 정리(요즘 매일 분단위로 어떤 일을 하는지 기록하고 있는데, 한 주에 한 번 노트의 기록을 스프레드시트에 옮기고, 문서 파일로 정리한다)가 끝나는 대로 차주 계획을 세우며 생각에 온 시간을 쏟기로 한 것이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직원처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처음 두세 주는 시간을 비워 계획을 세우는 것도, 그 계획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이 명확했고, 일요일을 비우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난주에 처음으로 위기가 왔다. 매월 한 번씩 참여하는 유기견 봉사를 하느라 일요일 오후를 통째로 사용했고, 이를 대신하기 위해 염두에 뒀던 토요일 오후 시간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모두 사용해버린 것이다.


어떤 행동 양식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는 그 행동을 통해 무엇인가 느낄 때도 알 수 있지만, 그 행동 양식이 무너질 때, 그래서 그 결과로 이전에는 퍽 쉽게 성취하던 것을 성취하지 못할 때 확연히 깨달을 수 있다.


지나간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이번 주에는 아쉬운 대로 아침 시간을 활용하거나 중간중간 짬을 내어 급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일주일을 꾸려보려 했다. 사실 주간 계획을 세울 때도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진 않았었다. 길어봐야 두세 시간? 그러니 아침 시간을 쪼개고 저녁에 일과를 정리할 때도 시간을 조금씩 더 쓰면 일요일에 놓쳐버린 생각의 시간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틀이 채 지나기 전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해야 하는데.. 저건 언제 하지? 아! 그리고 그것도... 아, 정신없어.  -  https://pixabay.com/


오늘 혹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과 내일 할 일이 머릿속을 가득 매우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전체를 아우르는 생각을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하루를 온전히 비워두고 생각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과 온갖 방해 요소 속에서 짬짬이 생각하는 것은 효율이 달랐다.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면 이내 변화한 상황과 기분(기분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이 마치 파도가 모래성을 쓸어가듯 이전의 생각을 쓸어가 버렸다. 그렇게 생각이 충분히 되어있지 않은 일을 할 때에는 행동과 생각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이번 주를 보내면서 내가 어떤 식으로 그간의 시간을 보냈었는지 돌아보았다. 지금까지의 생각은 행동과 충분히 분리되지 않았고, 온전히 집중해서 다듬지 못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매번 내보내야 할 생각과 가운데 두고 집중해야 할 생각을 분리하지 못했고, 그 틈새로 전혀 중요하지 않거나 큰 의미가 없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마치 방을 정리하기 위해 방문을 열어두었는데, 그 틈새로 온갖 소음과 잡생각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와 방을 더 어지럽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제법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생각을 쌓아왔다고 여겼는데, 새삼 그간의 생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행동이 왜 이리 더디고 갈피를 잡기 어려웠는지 알 것 같다.


이번 주는 끝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흘려보낼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해 보겠지만, 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과 별개로 무너진 어제가 오늘을 무너뜨리기 전에 그것을 담담히 마주할 필요가 있다. 감정을 갖고, 후회를 갖기보단 그저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그랬었구나 하며 오늘을 새로이 마주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 주를 마무리하고, 다음 주를 맞이할 필요가 있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내고 이번 주말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하자. 오로지 생각을 위한 시간을 갖자.


흐음...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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