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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군 Feb 08. 2019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

스스로 계획하고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시스템 속에서 떠밀리듯 일할 때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그때는 왜 그렇게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는지,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일임에도 왜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는지,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안정적이었음에도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그때는 왜 하지 못했었는지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이제는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 시간


약 6개월간 분단위로 하는 일을 기록하면서 (중간에 대충대충 한 적도 있지만)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시간은 늘 부족하고, 어떤 일이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일주일의 3분의 1은 잠을 자고, (조금 덜 자면 4분의 1쯤 잔다) 도로 위에 꽤 많은 시간을 흩뿌리고,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열 시간 이상을 보내며(식도락을 찾으면 스무 시간도 순식간이다), 씻고, 잠시 앉아서 숨 좀 돌리고 나면 이미 손안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깨닫는다.


건전지를 뺀다고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 없다.  -  https://pixabay.com/


반면 잘게 쪼갠 업무를 하나하나 수행하면서 시간을 기록해보면 어떤 일이든 늘 예상했던 것에 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됨을 확인한다. 심지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을 예상하고 넉넉하게 시간을 배분해도 새로운 일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형태로 진행되어 예상 시간을 초과해버린다. 한 시간이면 충분하리라 예상했던 도면 수정은 반나절에 걸쳐 진행되었고,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걸 염두에 두고 반나절 가량을 할애한 외주 가공 주문은 하루를 꼬박 잡아먹기도 했다. 일이 조금 익숙해져서 예상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되면 어김없이 새로운 일이 시간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고, 얼마 없는 시간을 통째로 집어삼킨다.



2. 에너지


회사를 나오기 직전에 가장 많이 생각했던 부분이고, 회사를 나온 이후에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명확하게 느낀 부분은 '에너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 이 에너지를 내 의지대로 여기에는 더 쏟고, 저기에는 덜 쏟고 하기 쉽지 않다.

회사에 다니던 때에 익숙해진 회사 업무를 수동적으로 처리하며 최대한 회사에서 에너지를 아끼고, 집에 와서 관심이 많던 서버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번번이 컴퓨터 앞에서 졸고 있는 자신을 보는 일은 참 낯설었다. 그때 어렴풋이 내가 에너지를 아끼려 한다고 아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도 번번이 의지에 따라 에너지를 분배하는데 실패하면서 결국 하루 8시간을 쏟으면서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겠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힘을 빼더라도 일정 시간 이상 불을 밝히고 나면 더는 반짝이지 않는다.  -  https://pixabay.com


결국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지를 컨트롤하고 싶으면 마음을 다잡고 의지를 다지는 것보다 일의 순서를 바꾸고 어디에 더 시간을 할애할지 정해서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우선순위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늘 가장 하고 싶은 일을 고르는 것보다 2순위, 3순위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결국 그 2, 3순위 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의 시간을 빼앗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한 테드 강연을 보다가 우선순위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을 접할 수 있었다.

강연자는 자신이 인터뷰 한 사람 중 인터뷰에 30분 ~ 한 시간을 할애하기도 힘들 정도로 바빴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이 한창 바쁘던 어느 날 밤늦게 집에 돌아갔는데 지하실 배관이 터져서 그것을 수습하느라 당일 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시간까지 몇 시간을 거기에 할애했다는 사연이었다. 강연자는 이 일화를 통해 어떤 일이 얼마나 급박하냐에 따라 아무리 바쁜 사람도 자신의 삶에서 그 일을 위한 시간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함과 동시에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어떻게 하면 마치 지하실 배관이 터졌을 때와 같은 우선순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급한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  https://unsplash.com/


이 강연을 듣고 다시 한번 곱씹어보면서 실제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 그리고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지, 거기에 더해 어떤 일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와 실제 내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 어떤 일을 붙잡고 있고, 하게 되는지는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걸 위한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하다고 해서 늘 그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가끔, 아니 생각보다 자주, 중요하진 않지만 당장 눈 앞에 있으니까, 혹은 그냥 땡기기 때문에, '어떤 일'을 선택하고 그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중요한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요한 일에 어떻게 '우선순위'를 부여할까 하는 부분을 고민하고, 실제로 외면할 수 없는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지시를 벗어나 나를 가운데 놓는 기간이 길어지니 그 전에는 깊이 해보지 못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한없이 늘어지다가 의욕적으로 일어나 달리고, 그러다 퍼지기를 반복하면서 직접 몸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가며 내가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움직이는 사람인지 깨닫게 된다. 아니 정확히는 가설을 세우고 맞춰보고, 수정해보고를 반복하는 것일지도.

최근에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 '에너지', '우선순위'라는 키워드를 마음에 담고, 일을 나누고 배치하며 하나하나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각각의 키워드에 '어떻게'를 덧붙여가며 나름대로의 방법론을 만들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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