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페 인디즈 - 1

by 익군

간밤에 공기가 차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에 옷을 좀 두툼하게 입고 나왔더니 찬 공기를 가르며 쏟아지는 햇살도 부담스러웠다. 아침 저녁으론 벌써 겨울이 성큼 다가왔지만, 낮시간은 아직 여름의 영역이었다. 처음 오는 동네라 서둘렀던 탔도 있지만, 생각보다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아서 현식이가 일러준 시간보다 20분가량 일찍 도착했다. 지나는 척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아직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카페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느긋하게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려고 그냥 가게를 스쳐 지나갔다. 완만하게 이어진 경사는 곧 급한 경사로와 함께 언덕으로 이어졌다. 더 이상 땀을 흘려서야 깔끔한 모습으로 면접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진로를 왼쪽으로 틀었다.

굳이 작정하고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도 쉽지 않을 곳에 있는 카페에서의 면접이 내 인생의 첫 면접이 될 줄이야. 현식의 말을 믿어보면 웬만해선 붙을 면접을 보게 된다는 걸 위안 삼아야 할지 아리송했다. 가게를 스쳐 지나며 안에 계실 사장님의 인상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지만 좀체 시간이 흐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5 분여를 남기고 카페의 문을 밀었다.


“어서 오세요.” 톤이 높은 젊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혼자서는 좀체 카페를 가지 않는데다 손님으로 들어선 것이 아니라 더욱 쭈뼛거렸던 것 같다. 가게를 한 번 휙 둘러보며 카운터로 향하는데,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뒤늦게서야 소리가 들려온 곳이 카운터 즈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인기척이 있어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사용하던 남자가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잠시만요.” 그렇게 나의 뒤를 돌아 카운터로 향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저, 현식이 소개로 온 박진규라고 합니다.” 남자는 그 자리에 우뚝 서더니 잠시 생각을 더듬다가 이내 다시 밝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 진규 씨. 현식이한테 이야기 잘 들었어요. 밖에 덥죠?” “네.” 그렇게 대답하며 어정쩡하게 서 있자 남자는 카운터 바로 앞의 2인용 자리를 권했다. “저기 잠시 앉으시겠어요?” 내가 자리에 앉는 사이 그는 물 두 잔과 메모지, 볼펜을 챙겨 들고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역에서 걸어오셨나 봐요.”

“예.”

“여기 찾기 좀 힘들죠?”

“아, 아뇨.”

“되게 힘드신 것 같은데요.”

“좀 일찍 와서 이 주변을 좀 돌아다니느라요.”

“일찍 오셨구나. 그럼 그냥 들어오시지.”

“네.”

“제 소개를 깜빡했네요. 전 대성이라고 해요. 이대성. 뭐 얼굴마담이지만 아무튼 여기 사장이에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전 박진규라고 합니다. 현식이랑은 과 동기고요.”

“현식이는 형이라고 하던데?”

“제가 재수를 해서요.”

“그렇구나. 집은 이 근처인가요?”

“봉천동이에요.”

“그렇게 멀진 않네요. 다행이네.”


대성이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는 얼굴이 하얗고 윤곽이 흐릿한 모습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중 열에 둘셋 정도는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할법한 흔한 외모였다. 일어나서 걸어올 때는 170대 후반은 되어 보였는데 마주 않으니 그리 위협적인 풍채는 아니었다. 왜소한 체형은 아니었지만 흐릿한 그의 인상과 근육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몸 때문인 듯했다. 그는 시종일관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편한 그의 미소에 잠시 마음을 놓았다.


“취업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아, 네.” 이 질문이 들어오면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었다. 그의 인상에 마음을 놓고 방심하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무슨 말이든 늘어 놓았을 게 분명했다. 어떤 말을 했어도 볼품없는 변명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예상치 못한 타이밍, 아니, 약간의 방심이 오히려 입을 다물게 했다.

“요새 쉽지 않죠?”

“네, 뭐 그렇죠.”

“전공이 어떻게 돼요?”

“기계과 졸업했어요.”

“그래도 기계과면 남들보단 좀 낫겠네요.”

“네, 그렇긴 하죠.”


기계과를 졸업했다고 하면 어김없이 비슷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기계과, 전자과 출신은 취업에서 프리패스라도 가진 듯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왜 내가 취업 재수를 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냥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일단 스케줄 조정이 필요하면 편하게 얘기해요. 너무 자주 빠지지만 않으면 일정 맞추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말해주면 좋고요. 그럼 언제부터 일할 수 있죠?”

“네? 아 저 그 전에...”

“아, 뭐 궁금한 게 있나요? 편하게 이야기해요.”

“그... 제가 뭘 하면 되나요?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하는지랑, 시급 같은 것도...”

“으흠? 아! 현식이가 설명 안 해줬나 보네요?”

“네, 그냥 괜찮은 자리 있다고만...”

“하하, 그랬구나. 하긴 그 친구가 그렇게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성격은 아니죠? 내가 깜빡했네요. 미안해요.”

“아, 아닙니다.”

“보자, 뭐부터 설명을 해 줘야 하나.”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0. 2015년 9월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