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페 인디즈 - 2

by 익군

물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끝이 날 것 같던 면접은 그 이후 1시간에 걸친 설명으로 이어졌다. 설명의 대부분은 턱없이 낮은 최저 임금 기준과 영세 자영업자로서 그 기준조차 충족시키기 어려운 현재의 경제 사정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지만, 그 와중에 근무시간은 오후 2시에서 11시, 휴무는 주 2회 보장되며, 가능하면 주중에 휴무를 가져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들어온 것 같은 손님만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오늘 하루를 온전히 카페에서 처음 만난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냈을 것이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카운터 뒤에서 웃으며 인사를 건넨 사람은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아무리 잡아도 20대 중반은 넘지 않을 것 같은 여자애가 그 곳에 서 있었다. 내가 약간 의아한 듯 그녀를 쳐다보며 다가가자 그녀도 나의 의중을 읽을 수 없다는 듯 잠시 갸웃거리다 입을 열었다.


“혹시, 오늘부터 아르바이트하시기로 한...?”

“네, 박진규라고 합니다. 저... 근데...?”

“안녕하세요. 전 희은이라고 해요. 최희은. 사장님이 오후에 갑자기 일이 생기셨다고 해서 제가 대신 나왔어요.”

“아, 네.”

“진규 씨 이야기는 간단히 들었어요. 오늘부터 새로 일할분 올 거라고.”

“아...”


1초, 2초...


“아, 참. 죄송해요. 저기 오른쪽으로 돌아가시면 문이 하나 있어요. 그 안에 가방 두시면 되고, 나오시면 앞치마 챙겨 드릴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서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녀가 알아채 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지금도 그 앞에서 말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을 것이다. 고작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나보다 어린 사람 앞에서 '뭐 해야 하나요?' 따위의 질문도 찾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일을 맞닥 뜨릴 때마다 매번 겪었던 상황이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어김없이 머릿속은 하얘졌다.

대충 가방과 외투를 창고 같은 방에 던져주고 나오니 희은이 여유로운 웃음을 머금고 잘 접힌 앞치마를 꺼내어주었다. 새삼 그녀의 여유가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서툴게 앞치마를 둘렀다. 내가 고개를 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긋한 목소리로 나의 첫 일을 알려주었다.

카페 인디즈는 전형적인 셀프 서빙 형식이었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마친 고객들은 픽업 데스크에서 이름을 불러주면 음료를 받아갔는데, 조금 번거로운 것이 있다면 주문을 받을 때 꼭 손님의 이름을 물어봐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지갑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친구가 되었다. 라나 뭐라나요.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노래하듯이 이야기하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더라고요. 어쨌든 그게 사장님이 정하신 이 카페의 전통이라니 귀찮아도 지켜야죠. 뭐 그래도 손님 대부분이 단골이라 조금만 있다 보면 대부분 외우실 거예요. 그러고 나면 그다지 번거로울 것도 없죠.”


참 유난스럽지 않냐며 말을 꺼냈던 희은도 이 전통이라는 것이 썩 싫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사장님을 흉내 낸답시고 그의 미소와 말투를 따라 읊는 그녀의 목소리엔 장난기마저 느껴졌다.

일반적인 카페와 다른 점이 몇 가지 더 있었는데, 첫째는 맥주를 같이 판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1인당 마실 수 있는 맥주가 2잔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제한이 되어 있는 것은 맥주만이 아니었다. 커피도 한 잔은 리필이 가능한 대신 그 이상은 돈을 주고도 마실 수 없었다. 하루 많이 벌기 위해 친구의 건강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단골이 아니라면 아예 안내가 필요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실제 카페에 앉아서 음료를 몇 잔씩 마시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다) 단골의 경우는 그런 제한을 퍽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게 희은 씨의 설명이었다. 재밌는 것은 맥주를 딱 한 잔만 해야지 하던 사람도 '어차피 두 잔밖에 못 드세요'라고 하면 기어이 두 잔째를 털어 넣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선한 인상에 영 세상 물정은 몰라 뵈는 사장님의 장사 수완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는 게 설명의 마무리였다. 어제 처음 만났을 때의 허술해 보이던 모습과 장장 한 시간에 걸쳐 현재의 경제 상황과 자영업, 비정규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내던 모습이 교차하며 이대성이란 사람이 새삼 궁금해졌다.

사장님이 돌아온 것은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배운 것이라곤 설거지를 하고, 테이블을 닦고 의자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 정도였다. 프랜차이즈가 아니라서 인지, 서비스 관리를 따로 하지 않아서인지 손님의 이름을 묻는 것 외에는 따로 낯 뜨거운 인사멘트를 날려야 한다거나 뒤도 돌아보지 않는 고객의 뒤통수에 인사를 날려야 하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희은이 알려준 정도에선 그랬다. 싱크대에서 부지런히 컵을 닦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잠시 후 그나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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