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군 Sep 25. 2015

휴가철 부산역 풍경

종착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열차 속에는 아직도 꽤 많은 사람이 남아있다. 금요일이긴 하지만 이제 막 정오를 향해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꽤 많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많은 이가 기내용 캐리어를 자신의 발치에 두고 객차 복도에 길게 늘어서 있다. 어느 모로 보나 고향을 찾은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휴가철이라는 단어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눈앞의 광경으로 다가온다. 딱히 철을 맞아 쉬는 직장이 아닌 덕에 붐비는 휴가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백수가 된 지금에야 휴가철이 실감 나게 다가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한껏 들떠 문이 열리기도 전에 서두르는 그들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짐을 챙겨 플랫폼으로 내려선다.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하늘이 여름을 알린다.

유난히 두리번거리는 이들이 역사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곳이 익숙지 않은 인파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흐름에 진로를 잃어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 이내 출구를 찾아 나선다. 늘 이용하던 화장실로 향하는데 입구가 많이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문득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에게는 지금 이 모습이 유일한 부산역의 전경으로 남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바뀌기 전의 모습이 그들에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또 한 번 변한다 한들 그들에겐 아무 의미가 없겠지. 이 모든 생각도 그들이 부산역을 기억이나 할까에 이르자 덩달아 의미를 상실한다.

건물을 나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부산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가족이 보인다. 아들과 부인이 모델이 되고, 아버지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데, ‘저렇게 찍어서야 아버지는 사진에 안 남을 텐데’부터 시작해 ‘여행사진을 폰으로 찍는 시대가 되었구나’를 거쳐 ‘누군가에겐 이 부산역이 사진의 배경이 될만한 곳이구나’까지 온갖 생각이 이어진다. 나도 돌아서서 역을 찍어볼까 하다가 이내 마음을 접고 버스정류장을 향한다.


#계간지 #휴가철_부산역_풍경


http://www.gyeganji.com/2015/09/01/휴가철-부산역-풍경/

https://www.facebook.com/gyeganji

작가의 이전글 일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