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고 새빨갛던 누나의 김치 볶음밥
김치 볶음밥을 만들었다. 아버지께서 김치를 잔뜩 보내셨기에 어떻게든 먹어치우고 싶었다. 레시피를 뒤적거리기도 귀찮아 손에 잡히는 대로 참기름을 두르고, 조각낸 김치를 볶았다. 참치와 양파, 대파 정도를 더 넣었을 뿐이다. 이번에도 질어질까 봐 시간을 두고 볶아댔다. 물기가 마르면 고슬고슬한 밥이 만들어질까 싶었다. 수분이 충분히 빠진 걸 확인하고 밥을 넣었는데, 김칫국물을 조금 넣는 순간 어김없이 진밥이 되었다. 보기 좋다 싶은 생각에 욕심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무렵 누나와 둘이 점심을 먹으면 메뉴는 십중팔구 김치 볶음밥이었다. 누나는 여간해선 라면을 끓이는 법도 없었다. 라면보다 자신 있는 요리가 김치 볶음밥인듯했다. (누나가 라면을 맛있게 끓인 기억이 없다. 정확하겐 라면을 끓인 기억 자체가 드물다) 직접 차려 먹는 수고를 덜 수 있어 종종 누나의 선택을 따랐다. 누나의 김치 볶음밥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김치 볶음밥 해먹을 건데, 너도 먹을래?'란 질문에 늘 '어, 그래'라고 답했지만, 그런 대화가 오간 날 오후엔 어김없이 배탈이 났다. 그런 사실을 누나는 전혀 알지 못했고, 나 또한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눈앞에 놓이는 밥그릇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했다.
그 시절 누나와 나의 접점은 김치 볶음밥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끔 컴퓨터를 놓고 다퉜지만, 그 외의 시간엔 말 한마디 섞는 일이 드물었다. 누나는 닫힌 방문이자 김치 볶음밥이었다. 시내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누나를 만난 적이 있다. 막 도착한 버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어깨를 쳤다. 돌아봤지만 눈에 익은 사람을 찾을 수 없어 다시 버스 앞문을 바라보는데, 그가 한 번 더 어깨를 두드렸다. 재차 돌아봤을 때에서야 뒤에 서 있는 누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눈이 마주쳤지만, 인사도 건네지 않고 버스에 올라섰다. 버스에서도 누나와 나란히 섰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집 밖에서 누나와 마주친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
아버지께선 우리가 자주 교류하며 지내길 원하셨지만 둘 다 살갑지 못한 성격 탓에 쉽지 않았다. 누나와 내가 서로의 안부를 묻기 시작한 것은 내가 대학 진학으로 집을 나온 지 1년 넘게 지난 후였다. 여자친구 선물을 핑계로 말을 걸면 어색하고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좀처럼 친해지기 힘들 것 같았지만, 한 학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연락은 퍽 자연스러워졌다. 한 지붕 아래서의 20년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어리숙하게 여자친구를 들먹이는 동생이 우습기도 했을 것이다.
방학 때 집에서 다시 만난 누나는 휴대 전화 속 문자만큼 친근하진 않았다. 여전히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삶은 각자의 친구를 향해 있었다. 작은 변화는 식탁 위에서 일어났다. 드물긴 했지만, 시간이 맞으면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내가 라면을 끓일 때 누나 몫이 더해지는 경우가 늘었고, 누나도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했다. 덩그러니 놓인 김치 볶음밥이 유일한 접점이던 우리 사이에 대화가 놓였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누나와 삶의 공간을 공유하는 일은 끝이 났다. 나는 서울에 자리를 잡았고 누나는 부산에 남았다. 누나가 어떤 요리를 더 할 수 있게 됐는지는 알지 못한다. 가끔 SNS에 올라오는 누나의 식탁 사진은 이전에 비해 다채로워졌다. 이젠 어엿한 주부가 된 누나의 레시피가 김치 볶음밥에 머물러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닫힌 방문과 김치 볶음밥의 이미지가 희미해진 지도 오래다. 전에 없이 풍성한 기억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녀의 늘어난 레시피 만큼, 아니 그보다 많은 추억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독립 후 나는 종종 요리를 했다. 그간 다양한 요리를 시도했지만 빨간 음식은 잘 만들지 않았다. 매운 음식을 곧잘 먹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 맛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탓이다. 다만, 가끔 김치 맛이 입안 가득 차오를 땐 맵고 짠맛이 강렬했던 누나의 김치 볶음밥이 생각난다. 며칠을 두고 입맛을 다심에도 생각을 걷어내지 못하면 기어이 김치를 팬에 볶게 된다. 질고 새빨갛던 누나의 것보다 잘 만들겠다는 다짐도 늘 함께한다. 하지만 그릇에 담긴 모양새는 10년 전 그 모습과 매한가지다. 아직 그 시절 누나의 솜씨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오늘도 진한 맛의 그것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나를 부르던 목소리와 김치 볶음밥을 수북이 담은 그릇을 툭 하니 놓고 돌아서던 누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강렬했던 그 맛만큼 진한 기억으로 남았다. 먹고 나면 배탈이 날지도 모른다. 짠맛에 한껏 텁텁해진 입맛을 다시며 물을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그 맛을 찾을 것이다. 끈적한 김치 볶음밥을 그릇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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