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슬픔을 참고 있구나. 손을 뻗어 너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늘은 나를 찾지 않길 바래. 그렇게 몸을 웅크려도 뻥 뚫린 가슴을 지나는 바람을 막을 수 없으면, 넌 나에게 손을 뻗겠지. 내가 따뜻한 눈물을 흘려 너의 찬 가슴을 녹일 수만 있다면 기꺼이 너의 품에 안길 텐데. 나를 찾기 전에 그 슬픔이 그치길 바래.
내가 너를 처음 만난 건 네가 3살 즈음이었을 때였지. 넌 웃음만큼 눈물도 많은 아이였어. 사내아이가 운다고 어른들은 놀렸지만, 넌 울 때조차 가슴이 따뜻했어. 늘 나를 꼭 안고 울었고, 난 너의 품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끼곤 했지.
아마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을 거야. 니가 더는 눈물 흘리지 않게 된 것 말이야. 따뜻한 가슴으로 울던 넌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되어 온 방 안을 뛰어다녔지. 밖에 나가 노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넌 잠이 많은 아이였고, 난 하루에 꼬박 8시간은 너의 품에 안겨있을 수 있었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 품에서 잠들던 그 시간을 기억해. 니가 커 갈수록 나는 텅 빈 방 침대 위에 홀로 앉아있는 시간이 늘었지만, 괜찮아. 니가 남기고 간 행복한 기억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까.
그때 기억나? 훌쩍 커버린 너를 대신해 집안을 뛰어다니던 강아지의 장난감이 되었을 때 말이야. 그의 날카로운 이빨에 귀가, 그리고 팔과 다리가 하나둘 떨어져 나가면, 그렇게 나는 추억이 되겠구나 생각했어. 그래도 괜찮았어. 너의 가족이라 생각하면 그와 놀아주다 가는 것도 괜찮다 싶었지. 가끔은 날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오랜만에 집에 온 너는 나를 재빨리 낚아채 안아줬어. 덕분에 나는 다시 텅 빈 방을 지키게 됐지만, 아직은 조금 더 너의 곁에 머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어.
집이 이사하던 날도 너는 기어이 나의 손을 잡아줬어. 이젠 나도 추억이 되어야 하는 걸 아는데, 니가 손을 뻗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조금만 더 라는 생각을 하게 돼. 이제 넌 더 이상 눈물이 많은 아이도, 8시간이나 잠을 자는 아이도 아닌데 말이야.
넌 어느새 눈물만큼 웃음도 잃어버린 것 같아. 눈물을 그치던 날의 너는 누구보다 행복한 아이였는데, 눈물을 잃은 너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아 보여. 이번 한 번만 더 나를 품에 안아. 너의 뚫린 가슴을 지나는 찬 바람을 꼭꼭 막아 줄게. 너의 가슴이 다시 따뜻해 지면, 이젠 정말 나도 추억으로 돌아갈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너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