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포털에 접속했을 때 ‘오늘의 운세’가 눈에 띄는 날이 있다. 그럼 어김없이 그 글자를 쫓아 마우스를 움직이게 된다. 점은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혼자 있을 때면 운세란 단어를 지나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남들이 볼세라 조용히 페이지를 열어본다. 한 번 페이지를 열면 ‘띠별 운세’, ‘별자리 운세’를 거쳐 ‘생년월일 운세’까지 확인 해야 직성이 풀린다. 가끔 마음이 싱숭생숭하면 올해의 토정비결을 부지런히 찾아보기도 한다.
어제 본 문구가 떠올라 오늘은 굳이 이것을 보기 위해 포털을 열었다. 생년월일 운세는 아주 좋고, 띠별 운세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별자리 운세가 영 탐탁지 않다. 생년월일 운세를 취하자니 애정운이 과하게 좋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별자리 운세를 듣자니 종일 마음이 불편할 것만 같다. 결국, 오늘도 무엇 하나 마음에 담지 못하고 창을 닫았다.
생각해보면 매번 확인했던 운세 중에 기억에 남는 문구가 없다. 그간 돈을 내지 않는 선에서 빠짐없이 읽었음에도 말이다. 창을 열기 전에도 창을 닫고 나서도 항상 하는 생각은 똑같았다. 이런 운세가 나의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를 어떻게 대변해 주겠느냐는 것이다. 매년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같은 생년으로 살아간다. 별자리는 더하다. 연도에 상관없이 12갈래이니 대략 한 갈래에 400만 명은 족히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운세를 한 줄로 요약한다는 게 가당찮아 보인다.
이런 생각에도 번번이 ‘오늘의 운세’를 피해가지 못하는 것은 결국 그만큼의 불안 때문이다. 타인들과 마주할 땐 늘 확신에 가득 차 있다가도 혼자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으면 2%쯤은 그 확신이 비어버리는 것이다. 흔들리는 스스로가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결국, 사람이란 늘 적당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오늘도 시침이 12를 넘어서기 무섭게 오늘의 운세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