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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군 Oct 20. 2015

뱉다

뱉다. (사람이 입속에 든 것을)입 밖으로 세차게 내보내다. (‘Daum 어학사전’)

동네의 25m 풀장에서만 수영하다 시립 수영장의 50m 풀에 몸을 담갔을 땐 그 50m를 건너는 일이 도무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손을 젓고 발을 굴러도 반대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면 늘 가운데 어디쯤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한 번 고개를 들면 공간이 충분해질 때까지 뒷사람들을 먼저 보내야 했다. 숨을 아무리 꾹 참아도 50m를 건너기 전에 호흡이 거칠어지기 일쑤였다. 최대한 적게 숨을 내쉬어도 숨이 가빠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호흡이 가빠지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 몸이 뻣뻣해졌고, 호흡은 더 가빠졌다. 좀처럼 호흡을 다스릴 수 없었다.

가쁜 호흡을 안고 우격다짐으로 50m를 왕복하던 무렵, 호흡은 들이마시는 것보다 내뱉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폐 속에 가득 찬 공기를 충분히 내뱉고 나면 자연스럽게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부지런히 호흡을 내뱉었다. 새로운 공기를 마시기 위해 고개를 들 때도 호흡을 내뱉는 것이 먼저였다. 너무 열심히 내뱉을 때는 고개를 다시 물속으로 집어넣을 때까지 충분히 숨을 들이쉬지 못해 물을 대신 마시기도 했다. 호흡을 빠뜨리지 않고 했지만, 여지없이 숨이 부족했다.

처음엔 뱉는 것이 익숙지 않아 소리를 내며 억지로 호흡을 밀어내야 했다.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면 여지없이 호흡이 남아 고개가 물 밖으로 나와 있는 순간도 온전히 숨을 뱉는데 할애하기도 했다. 하지만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들숨을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여지없이 마지막 날숨이 터졌다. 마지막 날숨 후는 온전히 들숨을 위한 시간이었다. 들이마신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쪼그라들었던 폐는 깊이 새로운 공기를 받아들였다. 그 이후엔 그저 고개를 박고 숨을 온전히 내쉬기만 하면 되었다. 다음 순간엔 여지없이 맑은 공기가 폐를 가득 메울 것을 믿을 수 있었다.

잘 내뱉기 시작하면서 나는 호흡이 거칠어지는 법 없이 50m를 가로지를 수 있게 되었다. 50m를 가로지르고, 100m를 가로지르니 그 이후엔 더는 호흡이 가빠질 일이 없었다. 몸에 힘이 빠지며 호흡을 채찍질하는 요소도 사라졌다. 그렇게 100m는 쉽사리 1,000m 가 되고, 50분에 걸쳐 쉬지 않고 2,000m를 헤엄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 모든 과정이 숨을 들이마시는 과정이 아니라 내뱉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뱉기가 중요한 것은 수영만이 아니었다. 오래 달려야 하는 마라톤에서도 내뱉는 호흡이 들이마시는 것 이상으로 중요했다. 노래를 부를 때도 호흡은 중요한 것이었다. 음과 음 사이의 짧은 순간에 숨을 충분히 들이쉬기 위해서는 남아있는 호흡을 순간적으로 모두 내뱉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다. 순간적으로 빈 폐는 빠른 속도로 충분한 양의 공기를 받아들였다.

호흡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위한 이 뱉기가 스포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이것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오랜 시간 먼 거리를 여행하기 위해 짐을 잘 버려야 한다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이 또한 그와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다시 담기 위해서 지금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것에 더 가까웠다. 두 손이 가득할 땐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듯이 뱉는 것은 담기 위해 비우는 것과 닮아 있다.

수영을 오래 쉰 지금에야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지금 내가 호흡을 고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나는 관심을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부지런히 비우려 했다. 떠나가는 것, 끝이 나는 것을 붙잡지 않았고, 자연스레 나는 짐을 덜어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호흡이 정돈되진 않았다.

다음으로는 숨을 잔뜩 들이마셨다. 힘을 잔뜩 넣었고, 집중해야 하는 두 가지 정도에 온갖 호흡을 불어넣었다. 그래도 가쁜 숨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매일 같은 것을 붙잡고 씨름했다. 충분히 내뱉지 않아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이 나를 하루도 쉴 수 없게 했다. 잔존하는 숨을 끌어안고 다음 공기를 마셔봐야 맑은 공기는 폐의 반도 채우질 못했다. 나는 쉴 새 없이 가쁜 호흡을 몰아쉬었다.

꽤 긴 시간을 쉬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일하지 않는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충분히 태우지 못한 것에 사로잡혀 한순간도 온전히 쉬지 못했다. 고르지 못한 숨은 뻣뻣한 몸으로, 뻣뻣한 몸은 고르지 못한 숨으로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 말미에 호흡을 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넉넉히 남은 숨도 다음 호흡을 위해서는 독이 된다. 텅 빈 폐가 입을 벌리는 것만으로 새로움을 담뿍 담을 수 있음을 믿는다면, 한순간의 숨이 충분히 쓰이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것은 아니다. 그저 그것이 눈앞을 스쳐 가는 시간일 때, 하루, 한 주라는 절대적인 숫자로 가늠될 때, 그것을 온전히 뱉는 것이 조금 더 어려울 뿐이다. 가슴을 눌러 깊은 한숨을 뱉는다.


#계간지 #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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