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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Aug 05. 2019

무기력과 나

조금 지친 사람 이야기 

무기력하다. 방은 집의 다른 곳보다 3도는 더 높다. 선풍기를 켜도 따뜻한 바람이 분다. 다리를 꼬았다 떼면 살이 찐득하게 붙었다가 떨어진다. 사소한 일이 크고 버겁게 느껴진다.  별 것 아닌 일들에 짜증이 자주 일고 내 모습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더워서 그런가. 우울하다.


뭘 먹고 싶은지 물으면 그것조차도 어려운 질문이 될 것이다. 당장 뭘 먹고 싶은지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겠고, 일단 이 상태는 싫다고 생각하는 나는 지쳤다고 결론지었다. 청소는 내일, 밥도 이따가, 연락도 좀 이따,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시간만 보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옷은 좀 이따 걸어야지, 했던 게 쌓이고 쌓여 한 주가 지난다. 아침의 텁텁함을 새벽에나 겨우 씻어낸다.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이제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도 어렵다. 한 것 없이 괜히 피곤하고 몸에 에너지는 진즉에 방전된 것 같이 느껴진다.


나로 존재하는 게 버거운데 남과 함께하는 건 쉬울까. 친구나 지인은커녕  같은 공간에 사는 가족을 대면하는 것도 힘들다. 자연스러워야 할 자질구레한 일상생활이 하나하나가 모두 실제보다 무겁게 또 커다랗게 느껴지니 조금씩 무게에 눌려 짓이겨지는 기분이다. 들이마셨던 숨이 그 무게에 조금씩 한숨과 함께 새어나가면서 이게 다 새어나가면 다신 못 일어날 것 같고, 뭐 그런 기분. 그런 기분에 인간관계는 사치에 가깝다. 내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없고, 내 마음 같은 사람은 또 없으니까. 혼자 있으면 외롭지만 누군가를 만나면 힘들고 버거웠다. 가끔 누구를 만나고 온 날에는 혼자는 아니라는 안도감과 없는 에너지를 쥐어짜 방전된 후유증이 함께 날 찾아와 괴롭혔다.


요새 더워서 그런 걸까. 그래서 입맛도 없고 몸도 별로고 많은 일에 짜증이 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기엔 나는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기분이 더러웠고, 쨍하면 너무 더워서 또 상태가 별로였다. 1년에 내가 기분이 기복 없이 좋은 날은 손에 꼽았던 것 같다. 


나는 너무 모자랐다.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20대 들어서부터 무기력했던 것 같다. 어디든 모자라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평균 키와 몸무게에 한참 미달인 나. 그렇다고 피부가 좋지도, 외모가 잘생기지도 않았는데, 20대 초반에는 사회성도 꽤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나마 사회성은 어디 가서 욕은 안 먹는 정도가 되었지만. 여하튼 나는 딱히 뭐 잘하고 잘나고 그런 게 없었다. 내가 모자라고 성에 차지 않으니 뭐든 불만이었다.



 크고 작은 실패를 겪으며 더 단단해지기보다는 깎여나가는 기분만이 들뿐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인기 있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사람들이 되고 싶었다. 내가 불러도 거절당하기보다, 먼저 부르는 사람들이 많고 부르면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 소위 '인싸'들이 정말 부러웠다. 뭘 어떻게 해야 인정받고 또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고, 나름의 행동을 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크고 작은 실패를 겪으며 더 단단해지기보다는 깎여나가는 기분만이 들뿐이었다. 


기대는 조소가 되었고 연기라도 했던 활기참과 섬세함은 시큰둥함과 염세주의로 변했다. 이마와 아랫얼굴을 이어주던 기둥이던 미간은 찌그러져 내려앉았다. 문득, 나는 누구도 시키지 않은 짓을 하다가 질려버리고 지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무기력해졌던 것 같다. 노력은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느낌에. 그 느낌의 반복에.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거였다. 기대라는 재료로 노력을 통해 음식을 만들었지만 시원찮으니 화로 변하고, 실망으로 되어 부패해 악취를 풍기고, 그걸 치우기조차 싫어 그냥 멀뚱하니 두었다. 그러다가 몇 번 다시 시도를 해보고, 또 실패했다고 느끼고, 종내 다른 음식을 더는 하기 싫어지는 것같이. 남은 건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예상, 앞으로의 앞날이나 기대에 대한 걱정, 그리고 어둑하고 , 아득하고, 찝찝하며 몽연하기까지 한 기분이었다. 


어릴 적에 고모네 집에 가면 펌프가 하나 있었다. 아주 낮은 곳에서부터 물을 끌어오는 걸 보며 어렸을 때 참 신기해했었다. 그 펌프는 노력을 하면 물이 올라온다는 교훈 비슷한 걸 줬던 것 같다. 하지만 잊고 있었던 사실도 하나 있었으니, 펌프는 마중물을 한 됫박은 부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마중물을 만드는 일도 이제는 힘들어졌다. 최소한의, 내 나름의 마중물을 만드는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거였다. 수영을 등록하고 댄스 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이제 그 취미생활마저 버겁다.


지금 하는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학원 수업 시작까지 2시간가량이 남는다. 집까지는 편도 1시간 10분. 학원도 집에서는 편도 1시간. 그러면 그냥 학원으로 바로 직행해야 한다. 혼자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고 1시간 반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학원에 일찍 가도 열 살은 족히 차이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어색한 홀로 됨을 느끼는 게 싫고 무서웠다. 먹어야 하니까 먹는 밥도, 듣고 싶었던 것 같은데 들어야 하는 걸로 바뀐 수업도.


결국 오늘 나는 다니는 두 개의 학원에 모두 일이 생겼다고 거짓말 섞인 연락을 했다. 수영은 지난주 목요일에 시작인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기대되기보다 걱정되고 무서워 시덥잖은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았다.


보통 무기력하고 우울한 사람은, 아니. 일반화는 하면 안 되니까 그냥 나는, 내 생각이 잘못됐음은 안다. 걱정이 과한 것도,  그 걱정이 사실은 별 것 없으리라는 것도. 하지만 그 현장에, 그 순간 그곳에 내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내가 쌓아둔 둑에서 물이 샌다. 견고하지 못한 나는 집에 가면 괜히 힘이 든다. 뭔가 해보고 싶은데 마중물, 그 한 됫박 되는 물 한 번을 뿌릴 힘이 나지 않는 처지에 헛웃음도 나지 않는다. 


혼자 있고 싶다. 근처에 사람 형상을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외딴곳에 가고 싶다. 

어딘가에 가고 싶어 시작한 일이 아니라 내가 있던 곳에서 도망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지친다. 그런데 나로부터 백날 도망친다고 그림자가 나를 따라오기를 그만두던가. 그림자가 싫어 암실에 들어간들 달라지던가.  



내가 나인 이상 이 무기력은 떼어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오늘은 정말 방청소랑 빨래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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