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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Jul 08. 2024

장애인은 꼭 배려만 해줘야 하는가

최근 공연에서 작은 역할을 하나 맡아 했다.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명찰을 달고 한 2주 반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여기저기 연락 돌리고 사람들 식사 챙기고 길 찾아주고 뭐 그랬다. 그냥 시민공연 참가자 1에서, 어쩌다 원래 직책을 맡던 분이 다치게 되어 내게 그 일이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허둥허둥 공연은 다 마쳤다. 얼마만큼의 돈이 입금되고 끝이 났다. 이번 공연에는 수많은 소수자들과 함께했다. 극의 연출가가 그런 데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그런 공연을 많이 진행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난민. 농인. 시각장애인. 그들이 모여 공연의 일부가 되었다. 솔직히, 보여주기 식도 아니었고 꽤 괜찮았다. 


다만 시각장애인들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좀 있다. 평소에 나는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를 굳이굳이 찾아 배려해야 할 대상으로 치지 않는다. 각자 영역 안에서 잘 지내면 좋다. 갇혀 살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 어느 사회 구성원이 그렇듯 각자가 위치한 곳에서 자기 할 일을 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에서 농인이든, 시각 장애인이든 그들이 불편을 겪을 만한 것을 제외하면 똑같이 대하려 했다.


농인 둘은 편안했다. 그들의 시야가 미치는 곳에서 몸짓 손짓을 하고, 모르겠으면 글을 써서 보여주기도 하고 짧은 수어를 몇 개 공부해 장난도 치곤 했다. 만나기만 하면 야 너 사랑해! 하고 온몸으로 수어를 외쳐댔는데, 그 중 한 명이 참 좋아했다. 나중에 사진을 몇 번이나 같이 찍어달랬다. 몇 시각장애인들은 달랐다.


장애인임을 떠나 무례한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해내려 했다. 수많은 연출가들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이번 공연의 연출가, 그리고 나 역시도 공감하는 지점이 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공연의 밑바탕이고 받침이다. 밟히는 발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반 관객을 방해해선 안 된다. 


노력. 시도. 좋은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의욕과 노력은 사족이다. 안 하느니만 못한 행위이다. 공연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지만 결국 공연을 끌어가는 것은 배우를 비롯한 출연진, 그리고 뒷받침을 하는 대본과 극본이다. 무대팀. 조명팀. 음향팀. 안무. 시민 참여자.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때 비로소 공연은 완성된다. 물론 공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오답은 존재한다. 이번 공연엔 자잘한 오답이 너무 많았다.  


시각장애를 가진 분 중 두어 분. 과하게 움직였다. 보이지 않으니 그런 게 아니냐고? 아니다. 각 시각장애인에겐 모두 한 명씩의 안내자가 붙어 모든 행동을 함께했다. '너무 크게 동작하지 마세요.' '일반 관객 앞을 너무 막지 말아 주세요' '안내자의 말에 따라 주세요.' 등의 피드백이 매일 들어왔다. 그들은 듣지 않았다. 장애를 권리 이상으로 사용하며 원하는 대로 행동했고, 일반 관객들이 누릴 권리를 침해했다. 관객 참여형 공연이라면, 처음 오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몇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안내자들은 매일 퇴근길에 영혼이 다 빠져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덧붙이면, 비장애인이라고 다를 것 없었다. 극에 너무 심취한 분이 계셨는데, 정말 제지하기 힘들었다. 


공연이 끝난 후 한 시각장애인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공연을 보자고. 표도 예매해뒀다고. 마음은 감사하나, 집에서 쉬고 싶다고 답했다. 그것도 그거지만, 속을 있는 대로 썩힌 사람은 장애의 유무를 떠나 같이 뭔가 하고싶지 않았다.  


또 안내를 맡았던 이와 연락이 닿았다. 그녀는 한 시각장애인이 노골적으로 몸을 만졌다고 했다. 촉각과 청각에 의지하는 수준을 넘은, 불쾌감이 느껴지는 손길이 잦았다고. 그리고 자꾸 따로 개인적으로 보자고 연락이 온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차등은 없으되 차이는 있다. 그럼 차이를 떼어놓고, 차이에서 오는 격차를 줄이기 위한 권리와 편의가 제공된 이후, 그들은 우리와 완벽하게 같은 권리를 갖는다 믿는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과 말을 하는 것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섬세하고 차분하던 시각장애인 한 분은 따로 만나뵈었다. 편안하고 즐거웠다. 농인 친구도 밥 먹으러 만날 생각이다. 그 친구가 싱글거리면서 수어로 야 잘 지냈냐, 사랑해 ㅋㅋㅋㅋ, 하던 게 떠오른다.


동시에 공연에 차질을 주고 안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 시각장애인도 기억난다.


장애는 마땅히 필요한 배려와 권리를 제공받아야 한다. 나도 처음으로 그들과 가까이 있으면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하지만 그 이후는 다른 문제다. 아닌 건 아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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