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이 산다. 무기력하다. 입맛이 없어 일어나서 밥을 꾸역꾸역 먹고 컴퓨터를 켠다. 멍하니 쳐다본다. 게임도 재미가 없어지는 날이 올 줄 몰랐다. 그 무엇도 재미가 없어질 날이 올 줄 몰랐다. 글 한 줄이라도 써야지 그림 한 장이라도 그려야지 했는데, 글은 커녕 그림도 한4일 그리다 관뒀다. 혼자 있는 건 싫지만 만날 사람도 없어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결국 누워서 멀뚱멀뚱 있다가 쇼츠나 릴스나 보고, 저녁이 되면 내가 오늘 뭘 한거지 한다. 자괴감을 느끼는 단계야 진즉 지났다.
며칠 전엔 지인의 집들이 겸 청첩장 모임엘 다녀왔다. 처음 보는 얼굴들도 많았는데, 딱히 뭘 할 게 없었다. 하루 자고 가기로 한 그룹이 있어 지방에서 올라간 나와 다른 지인 하나만 남았는데, 술을 마시다 보니 그렇게 욕을 먹었다. 내가 너무 연애에 무감각하고 감정이 결여되어있다, 전혀 절실하지 않다라는 게 그들의 말이었다. 그랬나. 남의 집이라 세게 잡힌 손목에 대해서도, 추임새 같던 욕에 대해서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예. 예. 명심하고 신경써 볼게요. 아유 그럼요.
책을 읽자 하니 손이 안 간다. 활자가 띄엄띄엄 눈에 들어온다.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내 맘대로 맥락을 해석해버리는 일이 많다. 몸을 움직이자 했더니 이건 이것대로 내 마음같지 않았다. 유연성. 새로운 몸동작에 대한 어색함. 뭐 그냥 다 모자란 게 영상에 담겨 있었다. 그 많고 많은 게임도 재미도 흥미도 없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 무기력하고 건조한 삶에 사람이라도 만나면 재미가 있을까 해서. 내가 재미가 없는 사람인데 상대에겐 무슨 실례인가 싶다가도 결국 사람이 보고 싶다. 하지만 남들의 ㅋ톡이나 메신저와 다르게 내 건 파발마나 우편쯤 되는 모양이다. 내가 뭘 보내면 읽었다는 표시가 뜨질 않는다. 숫자가 사라지질 않는다. 내가 해외로 택배를 보냈을까. 아닐 텐데.
지난주엔 병원을 갔다. 알고리즘에 이끌려 본 사회성인격장애인가 하는 말이 괜히 걸렸다. 의사는 그건 아니라고 했다. 내가 그정도는 아니라고. 안도와 동시에 그럴 기회가 많이 없었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저는 알바도 했었고 학창시절도 있었는데, 그럴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다 놓친 게 아닐까요? 라고 했다. 의사가 잠깐 말끝을 흐렸던 것도 같다. 여하튼 아니라니까, 그런가보다 한다.
약 때문인가 싶다가도, 그나마 최소한의 눈치와 사회성을 챙길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라는 생각에 뭐 마음대로 단약을 할 수도 없다. 약을 먹고 있으면 타인에 대해 신경은 쓰게 해 주고 그나마 적절한 말이나 행동을 출력해낼 수는 있으니까.
이런 내가 연기를 하고 극을 만든다는 게 우습다. 울지도 웃지도 않는 내가 극을 만든다고.
사주를 예전에 비하면 재미 삼아 믿는다. 따로 막 굴려 보진 않았지만, 몇달 전 지인과 만나 시간을 때우던 중 나왔던 말엔 망신살이 세 번인가 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화면을 공유하며 회의를 하다가 상당히 부끄러운 화면을 타인에게 들켰다.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갔지만 진짜 공중 목욕탕이라도 몇 번 갔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몇 번 들었다.
친구 둘이 해외에서 한국에 들어왔다. 보고 싶어 몇 번을 연락했으나, 다들 일정이 바빴다. 내가 보고싶은 만큼 이들은 나를 보고 싶지 않았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연산아. 자주 스스로 얘기했잖아. 물어보지 않은 것 답하지 말고, 쓸데없는 소리 해서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나아진 것도 같다. 나는 네가 보고 싶지만 너에게 부담을 주기는 싫다는 말로 대화를 종료했다.
전에 일하다 만난 누군가를 서울서 보기로 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 애인이 날 만나는 걸 너무 싫어하니,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애인 유무를 알았으면 애초에 보자고 하지 않았을 텐데, 내가 미안하다고 했다.
평안한 나날 보내라고 했다. 연산 너도 하려는 일 잘 되면 좋겠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내가 너무 보기 싫어 없던 애인이 생겨났나, 라고 푸념했다가, 내 얘기를 듣다 지친 동생에게 뭐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좀 말라는 얘길 들었다.
사는 게 썩 재미가 없다. 의욕도 에너지도 없고. 몸은 야위는데 배만 나온다. 정말 볼품없다. 하루하루 조금씩 뻘밭 수렁에 박혀 가라앉는 기분이다. 입에 텁텁한 치태가, 머리에 낀 기름이 그걸 증명하듯 찐득하다. 최근 담배를 끊으라는 이야기를 좀 들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연인 후보 제외 1순위라며. 글쎄, 내가 겨우 담배 좀 안 피운다고 없던 애인이 생겨나진 않을 텐데.
이런 삶도 행복하다고 여겨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면 이래도 꾸역꾸역 배우 모임엔 참석하고, 되도 않는 소리라도 써서 계획서를 올리고 작품을 만들고 있으니. 그리고 그걸로 내가 굶지 않으니. 편하게 내 썩은 마음만 쳐다보고 싶은데 그것도 어렵다. 개가 아플까 무섭고 엄마의 암 검진이 무섭다. 당신께선 너무 무서워하시기에 병원 가는 것도 애먹었다. 나는 찌들 대로 찌든 나를 이끌고 병원을 다녀왔다. 내가 해야 하는 도리니까. 그리고 내 병원을 갔다 오고 내가 사회성 장애가, 아니 최소한 그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다.
별 일 없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