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이 나,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 아직도 마음이 아파. 나 그때, 내 마음이 쿵 정말 많이 아팠어.
"승현아. 제발 내가 이렇게 무릎 꿇을게. 제발 나 좀 봐주면 안 돼? 승현아.. 제발 응?"
난 여전히 겁쟁이고 여전히 무서워 그 순간이,
근데 H야, 내가 그랬지. 내 소매자락을 가엾이, 울고불고 매달리며 잡는 너에게. 아주 차갑게, 이성적이다 못 해
마음이 털끝 하나 남아있지 않다는 듯이, 마치 남 일인 것처럼.
그렇게 냉정히. 독하게,
"H야, 그만하자. 그만.."
네 이름 못 부를 거 같아서 작게 읊조릴 줄 알았는데,
나 아직도 기억나. 악을 쓰며, 아주 아프게, 나쁘게, 평소 선하고, 모질지 못하는 나인데, 나쁜 년을 자처하던 나를,
네 이름을 못 부를 줄 알았어, 눈물이 흐를까 콧물이 날까
눈물범벅이 될까. 그래서 수천번도 수만 번도 더 연습했어.
담담하게, 네 이름 부르기, 그만하자고 이성적이고, 차갑고 매몰차고, 냉정하게 말하기. 내가 그냥 네 기억 속에서 모조리 나쁜 년 되기.
그때, 네가 내게 무릎 꿇는다고 했고 참, 내가 뭐라고,
내 소매자락을 참 가엾이 도 꼭 잡았고 계속 수도꼭지처럼 흐르는 눈물을 넌 멈추지 못했고, 기억나지 H야?
내 자취방에서, 내가 좋아하던 향초가, 불이 붙었다면
내가 크게 화상을 입을 수도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그때를,
몸싸움인지 실랑이인지 모를 그것이 내내 반복되던 그때,
넌 울며 내게 말했어, "그만해. 승현아, 나쁘지도 못 하면서 왜 자꾸 나쁜 사람 코스프레를 해. 그냥 소리 내어 울어. 내가 미안해, 다 나 때문이야. 승현이가 변한 게, 눈물도 많고 웃기도 잘하는 착하고 예쁜 애가 왜.. 승현아, 내가 다 아플게. 그만해 이제 알아들었어. 미안해 내가, 그만하고 소리 내어 울어. 내가 다 미안해"
근데 H야, 너 울면서 그 비좁은 원룸 방한칸에서 나한테 마구 달려오더라.
내가 혹시나 데었을까 봐 내가 혹시나, 화상 입었을까 봐.
넌 바보같이 항상 너보다 날 더 걱정하더라.
넌 바보같이 늘 나만 보더라, 넌 바보같이 나부터 걱정하더라.
내가 참, 뭐라고.. 그땐, 적어도 난 나쁜 년 코스프레하느라 몰랐는데.
너 진짜 바보구나. 매번 내가 뭘 좋아한다고 하면 마인드부터가 나보다 너인 너를, 내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
H야, 나는 이 글을 적으면서도 연신 눈물이 나.
근데, 내가 뭐라고 바보같이. 그랬니,
5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넌 날 너무 잘 알더라.
그래서 노래 가사 중에 딱 이런 표현이 있었는데, 네가 내 마음에 와서 산다.라는 네가 딱 그랬는데, H야, 그래, 맞아, 나 모질지도 못 하고 악하지도 않아. 늘 생글생글 웃고, 사람 기분 좋게 해 주고 또 마음은 은근히 여려서 잘 울고 상처 받아. 근데, 그때는 단 한 생각밖에 없었어. 네가 나쁜 사람 돼서 나중에 힘들어질 거 생각하면, 지금만 생각 않고 나중도 보면 내가 울음을 꼭 참고 나빠져야겠다. 무슨 이율 대던, 싸가지 없이, 나쁘고, 아프게, 너에게 말해야겠다.
근데 H야, 네 말이 맞더라, 어리석게도 나만 아플 줄 알았어.
내가 간과한 거지. 나만 나쁜 년 되면 넌 덜 아플 줄 알았어. 근데 선한 파스텔 같은 예쁜 마음에, 먹칠하기 참 쉽지 않은 거더라. 난생처음 해본 일이니까. 난 서로 힘들어질지 모르고 나 그때 나쁜 년 자처했던 거야. 넌 다 알고 있었겠지만, 네가 승현아 울어. 미안해. 내가 그만할게 이제 좀 울어! 참지 말고 제발 울어..라고 말하는데 네 표정 변화가 너무 가엾더라. 내가 널 보는 것만 가엾었을까. 너 또한 그랬겠지,
H야, 기억나니? 나 너 만나면서, 많이 웃었고 행복했으면서
역시 명암이 짙기라도 하듯이, 많이 힘들었고 한 때는 불행했으며 숨 막히고 좌절스럽고 다 그만하고 싶었어. 당연히 매일매일 너 모르게 울었고, 너 보는 날은 바보같이 웃었어. 많이도 지났으니 너 역시도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참, 우습지만 H야, 네가 울라고 제발 내가 다 잘못했고 내 탓이라고. 왜 나쁘지도 못 하면서 나쁜 사람 코스프레하냐고. 제발 울라고 승현이 답지 않게, 왜 그러냐고..
너 그때 나보다 더 서럽게 울더라..
근데 그 말 듣는데, 너한테 미안하고 나한테도 미안하더라.
그래서 참았던 눈물이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폭포수처럼
눈물이 마구 끊이질 않는데, 1년 치 흐를 눈물이 다 흐르더라.
거기서 쉬이, 편하게 못 우니까 네가 날 다독다독해주려 해서
내가 그때 온몸으로 거부하면서도 참 많이 울었던 거. 너 기억하지?
너 만나면서도 참 많이 울었는데, 그렇게 많이 운 거 난생처음이라고 해도 과언 아닐 정도였던 거. 너 알지?
네가 나쁜 사람 하겠다고 했는데, 미안하지만 결국 끝이 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X 년이 된 건 네가 아닌 나였어.
왜냐고? 네가 다시 만나자고 편지 6장도 넘게 보냈을 때,
이메일과 블로그에 댓글 달았을 때, 택배 보냈을 때.
메일은 바로바로 삭제했고 블로그는 차단까지 했으며.
손편지는 보는 자리에서 쫙쫙 찢어서 휴지통 깊숙이 넣었으며 택배는 치즈나, 홍삼만 먹고 다른 건 너에게 받은 모든 물건을 기억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너의 집으로 보냈어.
연애의 온도처럼, 진짜 네 기억에 정말 나쁜 년 같겠다.
연애의 온도처럼, 착불로. 물건을 편의점으로 옮기는데 크게 두 박스 나오더라? 5년간 받은 게 겨우 이건가 우리 추억이
겨우 이 두 박스로 정의되다니, 엄청 현타 오더라.
그래도 나도 찌질하게 매달려도 봤고 최선을 다해봤고
그 환경에 할 수 있는 한 나로선 너에게도 최선을 다했기에.
그리고 너 역시도, 우리가 그 이상을 그렇게 힘든데
각자의 환경에 어찌했겠니.근데 너 치사하더라?
내가 손으로 만들고 써준 건 끝까지 안 주더라.
나는 그래도 네가 준거 기억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다 보냈더니. 네가 생각보다 쉽사리 잊히더라.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날에는 정말 놀랍고 놀라웠어.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리고 너 때문에 블로그 이름도 바꿨는데, 나도 참 독했지. 택배도 다 받고 너 울며 미안하다고 연락했을 때, 나 냉철하고 참 못 됐었지.
그래서 지금의 내가 아닌, 지금의 그분을 만나는 거고.
우리의 찌질함이 사랑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것도 맞지만.
찌질함은 그냥 찌질함인거 같아. 현실로 돌아오니까,
우린 너무 달랐고, 비슷했으며 그래서 안 맞는 거더라.
조금 더 일찍 헤어져주지,라고 난 늘 입버릇처럼 말했었는데.
소중한 경험 덕에 인물 묘사, 심리묘사는 끝장나게 할 수 있을 거 같아. 드라마도, 영화도, 문학도 모두!
그건 참 고마워 H야, 너 나 처음 보고 반했었잖아.
나도 그랬었는데 근데, 나 무지 예쁘지만 못 됐거든.
그러니까 지금 헤어진 게 복일 거야. 앞으로도 쭉쭉쭉 잘 살아. 나도 내 남자 친구한테만 좋은 사람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