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7 토
엄마가 사촌 동생, 나랑 동갑.
결혼식쯤 이름만 말하면 아는 그 호텔에서 했는데.
돈만 많고 너희 고모 선생님이면 다 뭐 하냐,
인성이 먼저 되어야지 하셨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게 정말 다가 아니구나.
나는 돈은 많은데 인성이 안 된 그 무리에
절대 섞이지 말아야겠다.
내심 강하게 다짐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1000만 원짜리 가방을
족히 들고 다니는 고모랑은 사뭇 다르다.
내가 돈이 훨씬 더 많아져도 난 늘 검소할 것이며
친구들이 10대 시절부터 너처럼 알뜰한 애
나 처음 봐. 라며 말했듯이 늘 그렇게
일관될 것이다.
명품백은 몇 개 있긴 해도 그게 다는 아니다.
줄곧 난 에코백을 매니까,
사촌 동생은 연세대 (명문대)를 나왔다.
고모는 선생님, 고모부는 은행장.
내가 친구들이랑 수입 소고기 먹을 때
걔는 늘 한우 먹던데.
어쨌든 그게 다는 아니다.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니까.
있어질 일은 언제라도 늘 발생한다.
나는 명품 중고백을 사도 기본 5~10년을 드는데,
1000만 원짜리 가방을 아주
호화스럽게 들고 다니는 삶.
나는 별로 그걸 이해하고 싶지가 않다.
한 때는 고모처럼 강남에 살고 싶었고.
강남 건물주가 20대 어느 날은
꿈이었으며.
그런데 지금은 전혀 아니다.
난 내가 꿈이다.
직책, 돈, 명예, 권력에 끌려다니지 않는 삶.
그것들이 내 족쇄가 아닌 삶.
난 내 이름 세 글자로 살고 싶다.
여전히 그러고 있고,
여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난 고를 것이다.
나는 돈이 아주 많아져도 1000만 원짜리 가방
깔별로 다 갖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딱 하나 내 인생 수고했어! 고생했어의
의미 정도? 사치스러운 게 난 싫다.
그래서 네일 아트도 잘 안 받는데,
네일 아트를 받는 게 사치스러운 게 아니라
내가 프리랜서인데 그 받는 돈에 비해
네일에 쓰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서.
가끔의 사치는 누릴 권리가 있다지만
그런 나를 보는 게 난 퍽 싫어서,
혹시나 세상과 손 잡을까,
가볍게 타협할까.
늘 절제하며 살아왔다.
네일아트.. 그게 대체 뭐라고.
예전엔 좋아했는데 이젠 보이는 것들이,
다 시시하다.
그리고 그게 다도 아니다.
엄마 말처럼 명문대 나왔다고 인성 좋은 거 아니고.
선생님이라고 혹은 카이스트 나왔다고
말 귀 잘 알아먹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교대, 사대 나오고
서울대 나오고 카이스트 나온 친가보다
대학 안 나왔어도 따스운
우리 이모가 더 좋다.
따습고 정답고 다정한 건 그건
연습으로도 절대 안 된다.
근데 나는 요즘 들어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다가 아니고,
외모도 명문대 나온 것도 다가 아니구나.
명문대 나오고 잘 생기고 집에 돈 많고,
그런 사람들이 우르르 내게 다가올 때면
난 그 정도가 아닌데?
왜 자꾸 다가오지? 했다.
늘 무서웠다.
근데 이젠 나 그 정도구나,
이젠 제대로 거절할 자유 있으니까
뭘 쫄아! 걔네가 너 안 잡아먹어.
그냥 당당하자. 싶다.
이미 한참 전부터
아주 당당하고 말이다.
사주 선생님께서 나를 데려가는 사람은
천복이랬다.
나는 나도 복덩이지만 나를 알아봐 주고
데려가는 내 남편이 복덩어리라서.
둘 다 복이라고 말했다.
다 맞는 말이지만 나라는 천복은,
아쉽지만 누구나 그냥 다 잡을 순 없다.
모진 풍파를 나만큼이나 죽을 고비를
마음으로 다 받아내야 한다.
그리고 무섭다면 이 글을 보고
당장 수건 던져~!
너 아니어도 나한테 다가올 남자 많아.
느낀 감정: 설렘, 당참, 당당함,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