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는 성별, 나이, 키, 몸무게, 학교를 비롯한 개인적인 모든 걸 다 적어야만 했다.
심지어는 부모님, 형제자매 직업, 연봉, 동거여부까지 다 적어야 했다.
나는 몹시 불쾌했지만 그 당시 취업이라는 커다란 목표가 있었기에.
순한 양처럼 이력서를 집어 들고 그렇게 한 줄 두줄 써 내려갔고 그 후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한 회계 사무소에 면접을 갔을 때의 일이다.
면접관은 나와 같은 여자분이었고 심지어는 아이를 낳은 기혼자였다.그 면접관은 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남자 친구 있어요?"
"결혼 계획은?"
"아이는 언제 낳을 거예요?"
그 당시 내 나이는 스물셋, 대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인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 질문을 받고 나는 몹시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식 이하의 질문이었다.
사실 속으로는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순한 양처럼 대답을 하나씩 친절하게 해주는 나에게도 나는 몹시 화가 났다.
학교에서 아무리 멘토링을 하고 압박면접을 열심히 준비했어도 이런 개념 없는 대화가 내 면접의 시초일 거라고는 교수님도, 선배들도 친구들도 말해주는 이가 없었기에 나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더 충격적이었던 건 내가 받은 저 무례한 질문들은
모두 업무외적인 질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면접관은 이런 말을 더 덧붙였다.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으로 시작되는 말.
드라마, 영화에서나 볼법한 상식 이하의 개념 없는 질문과 무례한 대화가 끝없이 오갔다.
누군가 내게 그 당시 얼음 땡!라고 말해줬다면 그 무의미한 면접에서 내가 빠져나오기 훨씬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가면서 든 생각은 남자 친구도 없고 결혼 계획도 없는 갓 스물셋이 된 내게 그런 말을 한 게 무례한 게 아니라 면접관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인간대 인간으로 존중도 배려도 하나 없이 참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면접관만 봐도 그 회사가 어떤 분위기인지 안 봐도 불 보듯이 뻔했다.
만약 그 면접관이 내 사수가 됐다면라는 생각을 하니 지금도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이 다 곤두서는 것 같다.
나에게는 사실 더럽게 기억하기 싫은 정말 더러운 기억이지만 친구들에게 물으니 면접 시 이런 건 그냥 기본이란다. 친구들의 말에 나는 충격과 동시에 몹시 슬퍼졌지만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인 다른 나라만 봐도 이력서에 성별, 사진, 나이, 부모의 직업, 연봉, 동거여부 등과 같은 개인적인 건 이력서에 절대 기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개인적인 정보가 이력서에 반을 차지하는 반면, 독일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은 학벌이 아닌 기술적인 부분을 더 위주로 이력서를 기재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에겐 꽤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우리나라가 아무리 반도체 기술이 좋다고 한들 아직 정신적인 가치나, 내면의 성숙은 많이 떨어지는 후진국이라는 순순히 인정하는 수밖에.
우리도 다른 선진국처럼 개인정보를 싹 다 빼고
이름, 학교, 가지고 있는 기술만 적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 또한 그 당시 많이 해봤다.
그리고 그 이력서를 토대로 업무적인 부분만 묻고 면접을 진행한다면?라는 생각 역시 안 해본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참 가혹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보이는 가치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서
내 마음은 참 울적하기만 하다.
그러고 나서 엄마에게 볼멘소리처럼 한국에서 취업하기 참 힘들다고 말했더니 엄마는 대한민국에 사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대략 60곳의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면 20곳 이상에서 업무외적인 결혼 계획이나, 남자 친구, 여자 친구 유무, 임신 계획과 같은 무례한 질문을 당신에게 던졌다고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에서 취업하기 여전히 힘든데, 만약 그 당시 나와 같은 사회 초년생이 또 있다면 회의감과 괴리감이 들지는 않을까? 하고 심히 염려된다.
이래서 대한민국 청년들이 뉴질랜드나 다른 나라로 일하러 가는 건가? 싶고 100프로 이해도 가고 마음이 참 먹먹하다.
6년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은 성별, 나이, 학벌, 부모의 연봉 등과 같이 보이는 것에만 더 취중 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의식 수준이 후진국이라고 불리는 어느 한 나라보다 더 떨어지며사람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의식의 흐름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를 후진국이라고 칭하면 욱하며 화를 내는 사람들도 더러는 많이 있다.
그런데 인정할 건 인정하자!
우리나라가 기술적인 부분은 몹시 뛰어날지 모르지만 내면의 가치는 여전히 바닥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가 반도체 기술, 부동산 시장은 날로 성장해도 자살률은 계속 올라가는지 그것만 봐도 우리나라의 행복지수와 정신적인 가치는 아직도 많이 떨어진다는 걸 아주 절실히 실감할 수 있다.
이건 꽤 개인적인 얘기지만 내가 스무 살 때 습작으로 쓴 자살에 관한 시나리오가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2위였기에) 나는 그 심각성을 알리려고 펜을 꺼내 들어 습작을 시작했는데,
참 안타깝게도 대략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낮아지기는 커녕 여전히 독보적인 1위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 또한 두 자릿수를 웃돌고 있다.
이것만 봐도 우리나라가 기술적으로 많이 발달되고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고 꽤 풍족한 듯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얼마나 빈곤하고 공허한지 저 수치만 보더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언제 가는 우리나라도 보이는 돈, 명예, 권력과 같은 외적인 가치가 아닌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더 집중할 수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손에 무엇을 쥐고 있든 돈, 명예, 권력과 같은 눈에 훤히 보이는 가치는 언젠가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는 걸 절대 잊지 말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이력서 역시 개인정보, 부모의 연봉,성별, 학벌, 나이, 외모가 아닌 정말 개개인의 이력을 묻는 이력서가 되기를 나는 저자로서 진심으로 바란다.
이력이라는 뜻을 사전에 찾으면 이렇게 나온다.
이력 (履歷) [이ː력] [명사]
1. 지금까지 거쳐 온 학업, 직업, 경험 등의 내력.
2. 많이 겪어 보아서 얻게 된 슬기.
3. 정해진 과정에 따라 경전을 공부하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면접이라는 자리는 구직자 입장에서는 평가를 당하는 긴장되고 떨리는 자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인격모독, 비하 혹은 업무외적인 무례한 질문을 구직자에게 던져서는 안 된다는 걸 꼭 인지하시길 바란다.
면접이라는 자리는 어쩌면 인간대 인간으로 같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서로의 인성을 테스트하는 소중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인재 채용에 있어서 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인성이 아닐까? 성품이 완성되지 못했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들인다고 해도 절대 바뀌지 않으니까.
내가 면접관이 되면 적어도 업무외적인 비상식적인 대화를 오가게 하는 일을 없어야겠다는 결연에 찬 다짐을 해본다.
당신이 겪었던 가장 비상적인 면접은 무엇이었나요?
댓글로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우리 모두 더 나은 면접 문화 함께 만들어요.
(독자분들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기작 집필로 드문드문 올리고 있지만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