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관심 있는 사람들과 별반 관심 없는 사람들.
- 나는 후자에게 더욱이 감사한다.
살다 보면 나에게 관심 있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그보단 나에게 별반 관심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이다.
근데 되려 나는 후자에게 더욱이 감사한다.
진짜 관심이 없는 건지 그냥 척인진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 잘은 몰라도,
나는 우선 관심을 몰빵으로 받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의무감으로 나를 대한다거나
별반 관심 없는 사람들을 대환영한다.
(그렇다고 의무감 또는 진심이 아닌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왜냐면 모든 사람들이 가족을 포함해
내 취향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에
사사건건 관심을 다 갖는다면
그것만큼 피곤한 일이 있을까?
내가 그 많은 사람들과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난 연애라고 해도
너무 지나치게 내 이목을 끌고
내게 관심을 갈구하며 내게 관심을
담뿍 주는 건 상당히 지치기 때문에.
이건 다른 얘기지만 그런 이유로
난 비연애주의자도 제법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연애야 마음먹으면 하는 거라지만
어디 그 마음 한 번 먹기 쉬우랴.
살다 보면 나처럼 지나치게
선을 칼 같이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지나치게 피곤할지라도
지나치게 퍽 외로워도 겹겹이,
쌓인 이 상처를 혼자 아물게
적당히 거릴 두고 싶다는
나 같은 사람들.
그리고 나에게 관심 있는 사람들과
별반 관심 없는 사람들.
관심의 척도야 다 다양하지만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난 딱히 상관없다.
중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한다면
나에게 연애를 하자 구애하던 취향을
더 궁금해 하든 그게 다 무슨 상관이리?
그저 그건 다 개인의 선택이고
개성일 뿐이지.
하지만 인간에게 중용은
거울과 경계 같아서 나는 나한테,
의무감으로 대하고 별반 관심 없어하는
그 사람들이 사실은 불편한데.
굳이 둘 중 고르라면 그들이 더 편한 게
사실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친 사람들의 관심은
참 감사할 뿐이지만,
부담스럽고 또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 주기도 하니까.
퍽 내 동생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모든 관심을 다 껴안고 유복하게
사랑받고 자란 첫째라서.
자유롭고, 꽤나 멋진 막내의 삶을
그토록 많이도 동경했었다.
어찌 됐건 관심이란 건 척도에 따라
다 다르긴 하겠지만 내 생각엔,
서로 마음이 통용된다면
어쩌면 이젠 조금은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난 지금껏 관심의 척도를 받고
싶은 곳이 딱히 없었거나,
그쪽이 아닌 또 엄한 곳에서
관심 담뿍 받고 있어 꽤 불안하고
불편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젠 나조차도 관심의 척도를 원하지 않는
그 어떤 곳에서 나를 별반 관심 없어하니
난 그저, 그게 감사할 뿐인 거고.
어떤 관계에 대해 나랑은 ' 많이 친하다'라고 칭하는 나만의 기준이 꽤 굳건해진데 비해
난 그저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뭐,.. 썩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똑같은 기간 누군가를 알고 지냈어도
유독 아픈 손가락, 유독 애틋한 손가락.
마음 쓰이는 아이가 있듯이.
나에게는 상대에게 관심을 줄
마음도, 이젠 충분하지만
그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만.
기꺼이 받을 내 마음이란 것도 있는 거니까.
p.s 내 모습이 엄마, 아빠, 할머니, 동생 같은
가족과 통화했을 때 또 다르고.
회사 대표님, 직원들.
그리고 지인들과 통화했을 때,
또, 사뭇 다른 거 보니.
나 어쩌면 이젠, 누군가에게
제대로 관심받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