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생겨 동네 친구를 불러냈다. 오후 4시쯤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다가, 놀이터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초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친구들이 4명쯤 들어오더니 피구를 하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했지만 대화하는 데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아서 굳이 자리를 옮기진 않았다.
벤치 쪽으로 또르르 공이 굴러왔다. 나는 그 공을 집어서 다가오는 어린 친구에게 던져주었다. 어린 친구는 공을 받고 휙 돌아서 상대편을 향해 공을 던졌다. 옆에 대화 중이었던 친구만 들을 수 있게, "고맙습니다 해야지"라고 말했다. 그런 종류의 말이 소위 '꼰대식 발언'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같이 키득거릴 수 있는 시답잖은 농담을 던진 것이었다.
내 말소리가 컸던 것일까? 그 어린 친구의 귀가 밝았던 것일까? 어린 친구가 공을 던지고 갑자기 휙 돌아보더니, 배꼽 인사를 하며 "고맙습니다!"를 외쳤다. 얼떨떨했지만, 그래도 상냥하게 "어, 그래."라고 답했다.
너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실소했고, 대화를 나누던 친구는 옆에서 박장대소했다. "내가 지금 방금 뭔 짓을 한 거냐?" "야, 이 꼰대 새끼야." 한참을 웃다가, 어린 친구한테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자리를 옮겼다. 평소에 꼰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더 자괴감을 느낀 것일 수도 있다.
그날 지하철을 탔다.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커플이 같이 앉을 수 있도록,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고 옮겨주는 모습을 보았다. 커플 두 명은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고개조차 살짝 숙이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보고 불과 몇 시간 전에 어린 친구에게 했던 "고맙습니다 해야지"가 떠올랐다. 잘한 일이었나, 라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단순히 꼰대식 발언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고마운 일에 대해 사례의 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 친구에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닐까, 인사성을 키워 준 것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오갔다.
결국 이런 고민과 생각들은 질문 하나로 귀결되었다. 과연 "고맙습니다 해야지"는 꼰대식 발언이었을까?
기본의 기준. 바로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사람마다 기본의 기준이 다르다. 살아온 환경, 축적된 경험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같은 기준을 공유하면 다툼이나 갈등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질타를 받는 것이 당연해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모두 제각각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문제는 나의 기본이 상대방의 기본과 충돌할 때 발생한다. '꼰대'도 바로 여기서 등장한다. 기본의 기준은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꼰대 또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내가 꼰대라고 느끼는 상대방이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는 정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내 입장에서 상대방의 기본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지거나, 상대방이 나에게 자신의 기본을 강요할 때, 그 상대방은 나한테 꼰대가 된다.
그렇다면 "고맙습니다 해야지"는 '꼰대짓'이었을까? 강요가 아니라 권유의 어투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본인만 안다. 그렇기에 그 질문은 더 이상의 고민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론적으로는 간단하다. 내 기준의 합리성을 계속해서 판단하고, 나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된다.
이론보다 어려운 이유는 바로 '꼰대 문화'에 있다. 실질적으로 꼰대는 학교, 동아리, 회사 등 특정 모임의 '꼰대 문화'와 결부되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기에, 한 개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하여 쉽게 바뀔 수 없는 관성의 문화가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는 그 단체를 나오는 것이 최고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라도 정신을 차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상책일 것이다.
사실 꼰대는 요즘 생긴 것이 아니다. 항상 있어 왔다. 융통성 없고,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사람이 옛날에는 없었겠는가. 그래도 '꼰대'라는 표현이 사용되면서 생긴 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꼰대짓'을 하면 안 되겠다, 이런 식의 생각을 더 의식적으로 하게 만든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 단어가 너무 자주, 그리고 생각 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 많은 사람이 올바른 소리를 했거나, 강요가 아닌 정당한 권유를 했을 때조차 '꼰대짓'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성적 판단은 미뤄둔 채, 듣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꼰대로 단정해버리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기본의 기준에 대해 항상 성찰할 수 있는 지혜를 갖기를. '꼰대'라는 이름에 가려져, 어른들의 지혜를 배우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는, 그런 어리석은 세대가 되지 않기를.
20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