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지난주 금요일부터 소심한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소심한 이유는 오늘 동료들과의 식사시간에 의견 제시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결국 육류를 조금이라도 먹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실패입니다.
계기가 있다면.... 시간을 거슬러 언젠가 갑각류도 고통을 느낀다는 이야기, 낙지나 문어와 같은 연체동물은 다리가 절단된 상태 그대로 고통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일까요. 본격적으로 다짐하고 실천하기에 약 2~3년이 걸리게 된 것이겠네요.
갑각류가 고통을 느낀다는 이야기에 느낀 충격은 '못 느끼는 줄 알았는데, 느낀다고?'의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들에게 '고통'이라는 감각이 있을지 생각해본 적조차 없는, 무에서 유가 된 인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충격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고향집에 내려가니 아버지가 새우를 사다가 소금구이를 해 먹자는 말에, 아빠 갑각류도 고통을 느낀대.. 산채로 구워지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난 못 먹겠어..라고 그대로 이야기했고, 아버지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가 못 먹겠다고 하니 알겠다며 다른 음식을 함께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제 고향은 산낙지가 유명한 곳인데, 그 이후로 살아있는 낙지는 먹지 않았습니다. 내 입에서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하면 나는 너무나 끔찍한 인간 포식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참, 그때 즈음에 낚시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재미를 위해서 날카로운 바늘로 생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결국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인식에 대한 충격은 거기서 그쳤고, 새우소금구이와 산낙지를 안 먹는 것 외에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고기도 열심히 먹었고, 익혀서 나온 새우나 낙지는 또 먹었습니다. 눈앞에 생경하게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이 아니면, 아무래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사회적으로 비건이나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고, 친한 언니가 채식을 하는 것을 응원하며 지켜보고 있었고, 올해는 조금 채식에 관심을 가져볼까 하던 중에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이 책에도 다른 동물, 생물이 인간 때문에 느끼게 되는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공장식 축산업의 문제점과 인도적 도살이란 없다는 이야기를 단호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작가의 말이 구구절절 옳았습니다. 그 책을 읽고, 더 이상 내가 채식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모든 말에 공감이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당장, 금토일 집에서 채식을 실시했습니다. 채소와 버섯으로만 만든 된장찌개, 두부반찬, 김치비빔국수, 비건만두 등. 굳이 계란이나 고기를 곁들이거나 재료로 넣던 것에서 고기와 계란을 걷어냈습니다. 일단은 해산물과 생선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다른 욕심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100% 실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집에 예전에 사두었던 계란과, 치즈와, 생선과, 고기가 조금씩 남아 있기 때문에 천천히 처리해가야 합니다. 샤브 국물 소스라든가, 치킨스톡도 일단은 쓰긴 써야 할 것입니다. 쓰지 않고 버리는 것보다는, 천천히 먹어서 처리하는 것이 환경면에서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처리하면서 좀 더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만큼 더 실천할 것이라는 것에서요.
무엇이든 완벽할 수는 없겠지요.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보려 합니다. 당장 이번 주말의 친구들과의 모임이 걱정되지만, 방법을 잘 찾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