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당하지 말고 맞이하자.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의 선택지가 비프 혹은 치킨인 것을 보며(기꺼이 비프를 선택하면서도) 채식을 하는 것은 미리 신경 쓰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최근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동물권이나 여러 이유로 채식을 조금씩 실천하고 있던 터라 2가지 선택지 모두가 육식인 기내식을 만난 그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비프 or 치킨인 이유는 이게 항공사 입장에서 경제적이기 때문이겠지? 왜 편하고 쉽게, 그리고 값싸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무언가를 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까? 왜 지구에게도 인간에게도 결과적으로 해로운 선택을 하는 게 더 편리한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걸까? 이게 우리가 만들어가는 발전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인류의 궁극적인 목표는 종말인 걸까? 그럼 나는 종말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지?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결국 죽기 위해서 인가?!라는 (잡다한) 생각과 갖가지의 물음이 스페인으로 가는 하늘 길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나갔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나도 마찬가지다.’라는 이 명제를 우리는 영원히 모르는 것처럼 살아간다. 나 또한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고민만 했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고민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 지금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언젠가 혹은 곧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살았다. 그랬는데,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 아빠가, 2달 전 어느 날 갑자기 생사를 오가며 생과의 사투를 벌이게 됐다.
이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의 그 며칠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소식을 기다리고, 아빠가 만약에 죽는다면? 에 대해 고민하고, 그 이후에 대해서 상상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그때의 감정은 후회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웠다. 저 사람이 이 세상에 사라지고 혼자 남을 외로움에 대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등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생각했다. 아, 5년 10년 후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일이라도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는 거였구나.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겠구나.
다행히 아빠는 무사히 생으로 돌아왔고, 열심히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에 지금 나도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다짐했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로, 그리고 우리의 죽음을 준비하기로. 언젠가 당신이, 내가,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로.
Well-being은 결국 Well-dying으로 연결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살다가 죽을 것인가로 이어진다. 내 죽음에 대해 바라는 것이 있다면, 후회가 없는 상태였으면 좋겠다. 아쉬운 것은 있더라도, 아주 대단한 후회는 없는 상태로. 그리고 내 신념대로 적당히 살아왔다는 약간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길. 아빠의 죽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의 의지를 내가 물려받을 수 있길, 그가 나에게 미안함 없이 떠날 수 있길, 그리고 작별인사를 충분히 할 수 있길.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들었던 내 생각(인류의 생의 목적은 결국 죽음이자 멸종인가?)을 친구에게 늘어놓자 친구는 목적이 죽음이라기보다는 후손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남겨 영원히 사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라는 모범적인 대답을 들려주었다. 비록 내 유전자를 남길 기회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지만, 내가 어떻게 살았다는 하나의 흔적만은 세상에 남길 수 있길, 그러한 마지막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길 바라본다.
23.03.14 소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