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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인 Dec 26. 2016

나의 시장 답사기 (1)_광주

16.12.07. 광주 1913 송정역시장

어쩌다가 시장 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첫번 째 답사 장소는 광주 송정역시장이다. 우리의 답사 목표는 그 시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곳에 청년상인들은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 지를 보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의 다른 일정을 급하게 마치고, 오후 3시 50분 KTX에 몸을 실었다. 예상 소요 시간은 한시간 사십분. 참 대단하다 싶었다. 서울에서 두시간도 채 되지 않아 광주에 갈 수 있다니.  

나의 고향은 KTX 종착역인 목포이지만, KTX는 잘 이용하지 않았다. 고속버스가 더 익숙하다거나, 이사 간 집이 목포역보단 버스터미널에 더 가깝다거나 하는 이유 등이 있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었다. 고속버스는 삼만원, KTX는 오만원대. 친구들과 우스개소리로 KTX는 시간을 돈으로 사는거라고 이야기 했는데, 그게 진실인 것 같다.

어쨌든 한시간 사십분이라는 놀랍도록 짧은 시간내에 우리는 서울특별시에서 광주광역시이동하였다. 그리고 광주송정역시장은 광주송정역과 매우 가깝게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출구로 나가는 통로에서도 송정역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역에서 나와 횡단보도로 가는 길에서도 마찬가지. 송정역시장 간판은 우리가 가야 할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계속해서 알려주고 있었다. 길을 헤맬 일이 전혀 없었다. 조금 더 따뜻한 남쪽을 기대하며 내려왔는데, 광주도 역시 추운 날이었다. 송정역 시장 뒷편의 아파트가 조금은 쌩뚱맞아 보인다.

송정역시장 입구. 시국이 시국인지라, 박근혜 퇴진의 피켓이 붙어있는 것이 꽤 인상적이다.

1913년부터 존재했다는 송정역시장, 103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대개의 도시들이 그렇듯, 기차역 주변으로 조성된 도심은 점점 구도심화 되어가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 시장 역시 쇠퇴해가고 있을 터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기획하여 시장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현대카드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같이 들어가 있는 것이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민간 자본도 함께 붙어서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아 현대카드를 보니 콜드플레이 티켓팅의 악몽이 떠오른다.) 듣자하니 청년상인을 모집할 때 비어있던 점포수는 20개정도에 달했다고 한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20개의 점포는 시장 전체 점포의 거의 절반 혹은 그 이상 정도였을 것 같다.

 

송정역 시장이 계속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지키기 위한 변화' 였다. 무조건 개발하고 현대화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 기존의 상인들은 지켜가면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자는 것이었다. 대충의 과정은 기존의 상가를 샘플 상점으로 지정하여, 외관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빈 점포들에 청년상인들의 공모를 받았다고 한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청년상인들이 지원을 하게 되었고, 청년상인들은 건물주와의 협상을 통해 임대료, 외관 리모델링료 등을 지원받았다. 당첨(?)된 청년상인들이 입점한 이후에 일반 상인들도 개인 거래를 통해 들어온 다른 상점들도 눈에 띄었다. 전체적으로 바닥 공사, 햇빛가리개 설치 등이 진행됐고, 보기에도 깔끔하게 외관과 보행길이 정비 되어있었다.

기본적으로 차량의 진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반대편 입구로 들어오는 차량을 발견하긴 했지만.

유지되고 있는 기존의 상점들은 대략적으로 국밥집 등의 식당과 (상회라는 이름을 달고있는)쌀집, 방앗간, 채소가게, 생선가게와 같은 식료품점, 미장원, 의상실 등등인 듯 했다. 시장의 규모가 일단 작기 때문에 식료품 상점들이 겹치는 경우는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새로 들어온 상점들은 겹치는 점포들이 꽤 보였다. 특히 베이커리(빵, 쿠키 등)와 카페. 꽤 많은 카페가 눈에 띄었는데, 거의가 새로 들어온 상점들이었다. 그 외에 전집이나 중국음식점, 독일식 소시지를 파는 수제맥주집들도 있었고, 어묵과 구운치즈, 새우꼬치를 길거리에 놓고 파는 곳들도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아이디어의 문구, 팬시용품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전라도 사투리를 디자인하여 아이디어 상품으로 노트, 펜, 달력, 엽서 등등을 팔고 있는 곳이었다. 전라도 사람인 나는 곳곳에 묻어나는 센스에 웃지 않을 수 없었는데, 너무 재밌게 보느라 가게 사진은 못찍고 노트와 엽서만 사왔다.  

다 내가 자주 쓰는 단어들.
날씨가 추워서 평소보다 거리가 한산한 날이라고 국밥집 이모님이 말씀해주셨다.
흑백사진을 장당 오천원에 찍어주는 가게, 가게 내의 손님이 자신이 찍힌 사진을 바로 확인하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듯한 상점 중에서도 제일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한 것은 사진관이었다. 흑백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이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고, 사진을 찍으면서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붙어있는 사진에는 다양한 연령대와 관계의 사람들이 찍혀있었다. 기념으로 좋은 것 같았고, 우리가 찾았던 시간대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었다.

시장 가운데에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짐을 맡길 수 있는 락커가 있는 공간이 있었다. 역시나 건물의 내부나 외관은 최대한 살리면서 깔끔하게, 이용하기 편하게 만들어 놓았다.

송정역 시장의 변화상을 담아놓은 곳이다. 이 공간은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야외 휴게소 같은 공간이다. 야외라서 겨울에는 앉아있기 좀 추워보였지만, 그 외의 계절에는 괜찮아 보였다.

변화상을 보니 우리가 방문한 날은 2016년 12월인데, 이 곳이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은 올해 3-4월 쯤의 일이었다.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라 이렇다 저렇다 하기엔 아직 짧은 시간인 듯 했다. 청년상인 사장님과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찾아 들어간 두 군데 모두 알바님이 계셔서 궁금한 점은 물어보지 못했다.

  

답사를 하면서 느낀점은 다음과 같다. 긍정적인 지점은 '지키기 위한 변화'를 앞으로 내걸었다는 것. 정확히 그 과정을 알지는 못해 실제로 갈등이 존재했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기존의 것을 지키면서 새로운 변화를 불어넣으려고 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우려스러운 지점은 과연 이 곳을 온전한 시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모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순 없지만,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점포의 종류는 카페였고, 그 다음이 술집이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시장'이라는 곳, 사는 데, 먹는 데 필요한 생활적인 것들을 살 수 있는 점포들이 오히려 소수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쇠퇴해져가고 있는 시장을 지키기 위해 청년들을 받아들이고, 그 점포들이 어느정도 현대 젊은이들의 정서에 맞물려 하나의 관광명소로 탈바꿈 했고, 이로 인해 많은 방문객들을 다시 끌어오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더 이상 전통시장이라는 네이밍은 붙일 수 없게 된 것 같았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이 곳이 한국의 '시장'이에요 라고 하기엔 약간 애매해 보였다. 서울에서 온 나에겐 '통인시장'보다는 '서촌' 거리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던 것 같다.

여담으로 6시 내고향같은 곳에서 광주송정역 시장을 방문하여 "오늘은 송정역시장에 나왔습니다" 하면서 시장 상인들과 김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거나, 광주, 전라도의 특산물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확실히 힘들어 보였다. 수요미식회에 나와 이곳에 있는 신기한 간식 점포들이나, 국밥맛집을 소개해줄 수 있는 정도가 정말 다가 아니었을까.

긍정적인 점과 우려스러운 점에 대한 생각들이 교차하면서 3시간 남짓의 광주송정역시장 답사를 끝냈다. 시장 자체가 작기 때문에, 3시간이면 여러 상점들을 둘러보고 길거리 음식 한두개를 사먹고 밥먹고 차마시는 것을 끝낼 수 있었다. 내가 너무 고정관념속의 시장의 모습과 기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젊은이들에겐 꽤나 흥미로운 것이겠지만, 기성세대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변화이지 않을까. 물론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일단은 길게 지켜봐야 할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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