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즈음에

에세이

by 김아인

남들과 다른 내 처지가 틀린 것 같아 감추려 하고, 일방적으로 주어진, 맹목적인 목표만을 향해 끊임없이 돌진하다가 좌절을 겪었을 때,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아 슬퍼하던 시절이 있었다.


2016년 서른살이던 올 한해를 돌아본다. 올해 내가 제일 잘한 일 중 하나를 꼽으라면 꾸준히 사람들과의 관계를 업데이트 한 것이다. 이것은 매 해마다 새로운 다이어리에 적어가는 나의 메뉴얼 중 하나이다.'사람들과의 관계를 업데이트 하라.'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10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 2명이다. 한 명은 5월 제주도에서, 한 명은 12월 추운 겨울 서울에서 만났다. 서울에서 만난 친구는 10년 동안 연락조차 되지 않았던 터라, 아무런 정보의 업데이트도 없이 약간 긴장되는 마음으로 만났다. 친구를 기다리던 그 시간이 약간 초조하기도 했고, 너무나 차가운 바람에 더 움츠러들기도 했었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하고 익숙한 목소리와 말투에 나는 무장해제되어버렸다. 서른즈음에 다시 만난 우리는, 마치 우리가 10대였던 그때 처럼, 재잘재잘 잘도 떠들었다.


대체 왜 연락을 끊은 거냐며 궁금해 하는 나에게, 끊으려고 한 적은 없다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던 수능점수와 입시결과에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 같다고 담담하게 친구가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살이가 쉽지 않았고, 만약에 조금 더 일찍 연락이 왔다면 부담스러워서 못만났을 거라고, 스스로 안정적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 시기에 연락이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도 덧붙였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인생의 한 부분일 뿐, 별 것 아닐 수 있는 일들에 우리는 세상을 잃은 것처럼 슬퍼했고, 부끄러워했다. 이 아이가 자신이 진학한 대학이 맘에 차지 않아 모두를 기피했다던 시절, 나 또한 재수학원에서 죽도록 공부만 하고 있었고, 서서히 친구들과의 연락이 끊기기 시작했다. 몇몇의 관계들만이 2,3년이 지나서야 겨우 다시 이어질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었던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은 돌고 돌아 10년이 흘러서야 다시 추억속에서 소환되었다.


우리는 옛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상처들도 스스럼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이혼, 어려워진 집안... 그 때는 누구에게 함부로 말하지도 못하고 감추는데 급급했던 이야기들이었다. 10년이 지나서야 어른이 된 우리는 그것들은 누군가의 잘못이나 감춰야 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인정하며 내보일 수 있게 되었다.

2시간 남짓의 짧은 만남을 나누고 우리는 헤어졌다. 다음번에는 그 아이가 있는 광주로 내가 가는 것을 기약하며. 여전한 서로의 모습에 우리는 안도했고, 만남을 기뻐했으며, 이제는 솔직할 수 있었다.


나는 내 나이가 스물이 넘고, 서른 즈음이 되면 정말로 모든것이 완결된 어른이 되어있을 것만 같았다. 하고 있는 일, 직장, 가정, 미래 모든것이 명확하고 안정적이며 편안한 삶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무살 후반에 이르러 그것은 헛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뒤늦게라도 새로운 것을 하고싶어 하거나, 안정적이지만 힘들기만 한 삶을 거부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제발 우리 이렇게 살자고, 나 또한 그러고 있으니 우리 같이 이렇게 살자고 이야기하곤 했다.

우리가 이렇게 안정적인 못한 모습임에도 만날 수 있고 스스럼 없이 자신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더이상 환상속이 아닌 현실의 어른이 되었으며, 완결 될 수 없을 것임을, 그리고 그게 문제가 아님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로소 과거의 어리숙했던 그 마음들을 다시 한 번 다독이면서 그 무엇도 틀린 것이 아니었다고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이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어른의 장점인 것 같다. 이 마저도 할 수 없는 어른들이 있겠지만.


수만가지의 방향이 있는 인생에서, 10대의 우리는 단 하나의 방향, 좋은 대학이라는 단 하나의 방향만을 향해서 달렸고, 좌절했다. 그리고 10년을 돌고 돌아 다시 재회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몇번이고 다시 우리의 추억을 되새기고 되새기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만남을 새로운 추억으로 만들어가는 일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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