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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인 Aug 29. 2019

서울살이 14년 차

출퇴근 길 지하철 7호선은 한강을 지난다.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한쪽은 동쪽 다른 한쪽은 서쪽.

 

서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날엔 남산타워가 보이고, 동쪽을 바라보는 날엔 롯데타워가 보인다.

누군가 그랬던가.

각박한 세상 속,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던 서울 사람들도 한강을 지날 때만큼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는 사람은 소수 일 뿐. 

그리고 왠지 모르게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 

어딘가 감성적인 나의 모습을 남에게 내보이는 것 같은. 

각박한 세상 속에 정신 차리지 못해? 약해 보이면 끝이야! 이런 메시지가 들리는 것 같은.


오늘은 출근길 지하철에 서쪽으로 서서 창밖을 바라봤다. 

약간은 뿌연 경치를 바라보는데 그 창에 반대편 한강의 물결이 비쳐 들어왔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반대편 한강의 물결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창 안쪽으로 들어왔다. 

햇빛을 받는 물결과 그렇지 않은 물결이 나란히 보였다.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사실 가장 창피한 레벨은 그런 풍경, 특히 지하철에서 한강을 찍는 행위다. 

한강 그까짓 게 뭐라고, 사진으로 남긴단 말인가. 

이게 서울 사람으로서 가지게 되는 시니컬함 아닐까.

(하지만 모두의 핸드폰에 한강 사진 한 장 정도는 있겠지....)


가만히 헤아려보니 서울살이 14년 차다. 

서울살이 첫 해, 대치동에서 김치찌개가 5000 원하던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목포에서는 2천5백 원-3천 원이면 먹는다고!라고 외치면서도

3-40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빈 커피는 욤뇸뇸 매주 사 먹었던 갓 상경한 20살 


그랬던 나는 이제 서울시민이고, 우리 집의 세대주이고, 서울말을 유창하게 쓰는 서울 사람이 되어버렸다. 

주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방에서의 삶을 꿈꾸거나 이주계획을 이야기하는데, 

글쎄 나는 사실 계속 서울에서 살고 싶다.

가장 큰 것은 내 인간관계의 90%가 서울에 있기 때문이고, 

다른 이유는, 글쎄. 

어렸을 적부터 서울 가서 살아야 한다는 세뇌를 너무 당해서 그런가. 


도시의 소음에 지쳐버렸지만 

그렇다고 너무나 고요한 것은 무서운

밤마다 하늘을 보며 별을 찾아 헤매지만

그렇다고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보면 정작 무서워하는

오지은의 서울살이는 가사처럼 

울다가 웃다가 화내다가 즐거워지는

서울살이 14년 차. 



서울살이는 조금은 즐거워서
가끔의 작은 행복에 시름을 잊지만
서울살이는 결국엔 어려워서
계속 이렇게 울다가 웃겠지
 계속 이렇게 울다가 웃겠지

- 오지은 서울살이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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