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
나이가 들어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인류애는 점차 시들어간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변종들을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 허사로 끝난다. 예를 들어 다이소나 서점 같은 곳에서 자신이 집은 물건을 다시 원래 자리에 두는 것을 못하는 병자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자신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두고 그냥 가버리는 만행을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저지른다. 어떤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았을 때 감사 인사는 저 멀리 요단강으로 보냈다. 직원은 매장의 청결을 유지하는 사람이 맞다. 그리고 고객은 매장의 물건을 살피고 구매하는 사람이지, 횡포를 부리고 어질러도 되는 특권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다른 예로 흡연 부스가 없다고 횡단보도나, 인도에서 흡연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간들도 있다. 어린아이가 지나가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우측통행을 지키지 않고 연어처럼 사람들을 밀치며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은 소수라고 하기엔 너무도 많다. 질서가 없어진 현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 어떤 참사가 일어나는지 뻔히 목도했고, 스스로도 분개했으면서 그런 사소한 규칙은 지키지 않는다. 자신의 반대편을 혐오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갈라 쳐서 싸우는 것은 일간지와 주간지만 봐도 끊이질 않는다. 남과 북, 남과 여, 지역 간, 세대 간, 학력과 국내파, 해외파 등등 끊이질 않는 비교와 흑백논리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간다. 2000년대 초반에는 우리나라가 점점 더 선진국으로 향하고 있고,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80 ~ 90년대 생의 사람들도 얼마나 깊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혐오를 즐기고 가장 많이 전파하는 세대가 80 ~ 9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때문에 인간은 더더욱 고독해져야 한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문제가 생기고, 그들의 생각에 영향을 받게 된다. 타인을 혐오하는 게 쉬워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근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 성별을 차별하고 혐오하면 같은 성별을 가진 인간들은 그에 동조하기 마련이다. 정부나 매체에서 지역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뉴스와 기사를 쏟아내면 그 지역에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 또한 타 지역의 사람들을 혐오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자신의 의식이 맞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화마가 머리를 집어삼켜 괴물 같은 독설만이 튀어나올 뿐 인류애는 어디에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그런 것에서 멀어지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주관과 객관의 중용을 항상 떠올려야 한다. 그래야만 내 사람, 내 사랑을 지킬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