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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Apr 02. 2024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다




오래 살았다고 해서 전부 지혜롭지는 않다


    우리나라는 상호 간의 존중이 없어진 지 오래다. 나이 많은 사람은 어린 사람에게 쉽게 말을 놓으며, 그것의 잘못을 인지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못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젊은 사람 또한 연륜을 지혜의 척도로 보지 않고, 예전에는 '노인네' 지금은 '틀딱'으로 일컫는다. 더 나아가 80년대생과 90년대생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보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잘못을 오롯이 한 방향으로만 집계한다. 바로 젊은이들이 노력과 근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부당함을 참지 않는 것이라고.


    요즘 것들이라는 말은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왔다. 때문에 실제적인 잘못은 사실 어른들에게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것인데 어른들이 당했던 부당함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물려주려는 태도에 젊은이들은 분개한다. '나도 힘들었으니, 너도 힘들어봐라'는 생각은 공정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서로 간의 혐오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많은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지하철 무료 이용도 비판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것은 공경이 없다거나 배려가 없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에게 배려를 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 더욱이 좋은 말도 한두 번인데 나쁜 말로 강요하는 것에 웃으며 앞장서서 선행을 자처할 사람은 나이 불문하고 많지 않을 것이다.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인식의 수준이 다른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횡단보도와 인도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태우고 가래를 뱉는 인간은 청년을 훌쩍 지난 사람이다. 막무가내로 젊은 사람을 욕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는 것 또한 그러하다. 줄과 차례를 지키지 않고 무조건 자신이 먼저 하려는 태도와 무례하게 남을 밀치는 행동을 보이는 것 또한 동일하다. 이런 상황에서 배려를 쌍방이 아닌 젊은이만 해야 한다고 주창한들 어떤 청년이 그것을 반길까.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너는 조부모나, 부모가 없느냐"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입에 올릴 자격이 당신에게 없고, 존경하는 나의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누군가에게 그러한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만약 우리 가족이 그러한 만행을 저질렀다면 나는 기꺼이 쓴소리를 할 수 있다."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는 게 일반적인데, 몇몇 노인은 사과를 입에 담을 줄 모른다.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치거나 욕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나는 살면서 신사적인 노인을 본적이 거의 없다. 오죽하면 손에 꼽을 수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대중교통이 1호선이고, 그곳에서최악의 상황들이 자주 발현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노인을 위한 나라로 변모하고 있고, 청년을 위한 나라가 없어지고 있다. 청년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 희생을 해야 하나. 국민연금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제도는 현재의 청년들에게 없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하루 12시간 일을 위해 희생한 청년들을 앉아서 쉬지도 못하게 하는 사회는 병들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노인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노인은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지 않다. 아무리 노인이라 할지라도 시대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노인에게 스마트폰을, 키오스크를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한 현대의 대한민국은 인도나 횡단보도에서 담배 태우는 것을 기피하고, 초면에 반말하는 문화가 사라진 것 인식 해야 한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없다. 모두가 배려하는 세상 또한 마찬가지다. 배려는 의무도 아니고 나이순으로 받아야 할 권리도 아니다. 청년들이 나서서 선행을 하는 사회에는 강요가 있을 수 없다. 나이 듦이 젊음을 병탄하고 규탄하는 나라는 결국 망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빛 진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순국열사도 아니고, 참전용사도 아니지 않은가? 그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당신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게 현명하고 용감한 선대가 있었기에, 당신들이 노인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이 언제 영면에 들었는지 적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들은 청년일 때 죽었고, 그 넋을 달래지도 못했다. 그리고 지금의 노인들이 잘했으면 그들의 삶이 단칸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하겠는가? 노인의 늙음과, 우리의 젊음은 시간이 정한 것일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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