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일
인간은 삶을 살아가며 무수히 많은 죄를 짓고 있다. 내 삶과 타인 삶의 무게를 매번 저울질한다. 나는 그러한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멈출 수 없다. 그렇게 매번 이기적인 삶을 영위한다. 오직 나만을, 내 사람만을 위해서.
글: 박진권, 제호: 악의 평범성, 저자: 이산하, 출판: 창비
삶을 살아가며 바닥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인이 가장 유약한 시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해결할 방도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을 때 인간은 바닥을 경험한다. 이것보다 더 나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자조하며, 자기의 인생을 경멸할 수도 있다. 나 또한 바닥을 경험했다. 삶을 살아가며 더 심한 바닥이 계속해서 등장했다고 믿었다. 그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바닥을 치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생각했다. '바닥이 맞나?'
인생 최악의 경험도 시간의 흐름 덕분에 희미해진다. 과거 겪었던 최악의 상황을 상기하니 이것보다 더 깊은 바닥에서도 헤엄쳐 올라왔던 일이 생각났다. 때문에, 현재는 바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자 두려움도 허탈함도 사라졌다. 나는 인생 최악의 바닥을 이미 경험했고, 앞으로 있을 불행은 그 바닥을 다시 찍기 어려울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인생 최악의 바닥에서 다시금 올라온 경험이 있기에, 다시 수렁으로 빠진다고 해도 크게 두렵지 않다. 인생 속 최악의 상황은 결국 해결할 수 있는 일이고, 최악의 일은 최고의 인생 경험치다. 성장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하니, 이것보다 친근한 바닥이 없다.
인간은 해악에 민감하다. 자기의 통증에 가장 예민하고, 본인 이득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도 짐승이라는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유하기를 거부하고, 쉬운 길만 택하며,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짐승과 현대의 인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당함에 정적으로 맞서는 것이 아닌, 똑같은 부당함으로 맞서려 한다. 짐승과 인간의 다른 점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무서운 짐승이 바로 인간이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만의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인지하고, 사유하고, 상식의 선이 있어야 하며 법의 테두리가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면 인간은 사람으로서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짐승이 되지 않으려고 인내한다. 그러나 세상이, 더 작게는 나라가 그것을 두고 보지 않는다. 개개인은 비질란테에 환호하고, 나 또한 언제든 사랑하는 사람의 자경단이, 복수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다. 그것이 분명한 악덕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나 또한 짐승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벽오동 심은 뜻은
처음 강을 건너갈 때
나는 그 강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물론
그 깊이가 내 눈의 깊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고
수심이 얼마나 되든 끝까지 가본 자만이
가장 늦게 돌아온다는 법도 알지 못했다.
그 강 한가운데에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늙은 벽오동 한 그루가 지키고 있었다.
가지 위에는 일생 동안
부화할 때와 죽을 때만 무릎을 꺾는다는
백조 한 마리가 살며
생채기마다 부지런히 단청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허기지도록 적막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강의 깊이를 알지 못하고
또 백조가 왜 벽오동을 떠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다만
내 삶의 무게가 조금씩 수심에 가까워질수록
수면 위에서 반짝이고 있을 내 여생의 무늬가
강 가장자리로 퍼져나가며 단청이라도 한다면
내 비록 끝내 바닥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백조처럼 기꺼이 두 번 무릎을 꺾을 수는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