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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도복에 멋진 띠를 매고 통통 뛰며 발차기를 내지르는 게 참으로 멋있어 보였다. 우렁찬 기합 소리, 절도 있는 품세. 태권도를 배우면 왜소한 나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10살에 처음 태권도장을 찾았고, 부푼 기대는 금방 가라앉았다.
우리 동네는 태권도장이 총 세 곳이 있었다. 그중 내가 다닌 태권도장 관장의 교육 방침이 가장 구식이었다. 다른 태권도장은 아이들의 사기를 위해 띠를 더욱 세분화하여 성장 욕구를 해소했다. 또한 대망의 검은띠를 최대한 빠르게 습득해 아이들이 태권도에 더 붙어있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다닌 도장은 달랐다. 흰띠에서 노란띠로 넘어가는 것도 품세 시험을 봤고, 틀리면 영영 승급할 수 없는 구조였다. 또 품세를 연습할 때 틀리면 엎드려서 발바닥을 맞기 일쑤였다. 문방구 앞에서 오락하거나, 불량 식품을 사 먹는 걸 걸리면 또 맞았다. 겨루기 대회를 준비하며 또 많이 맞았고, 비슷한 체구의 아이와 끊임없이 겨루기를 해야만 했다. 주말에도 예외는 없었다. 대회 두 달 전엔 휴일 없이 매일 뛰고 대련하고 체중 감량까지 병행해야 했다. 나는 재밌는 태권도를 원했지, 너 죽고 나 죽는 태권도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태권도 하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버지 때문에 그만두기도 쉽지 않았다.
4년이 흘러 나는 검은띠 3단이 되었다. 그때부터 관장은 이상해졌다. 아이들을 직접 지도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젊은 사부 한 명을 영입해 거의 모든 것을 맡겼다. 고지식해도 심지가 곧아 보였던 관장은 어느새 술집을 드나들며 취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 또한 여러 가지 일정과 중학생이 되었기에 청소년·성인이 함께 배우는 20시 부로 옮겼다. 그곳엔 중학생과 고등학생 형들 그리고 소수의 성인이 있었다.
20시 부는 관장도, 사부님도 상주하지 않았다. 당시 계급이 가장 높았던 18살 형의 지도로 20시 부가 운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부님은 18시부까지만 하고 퇴근이었고, 20시 부는 원래 관장이 지도해야 했다. 그러나 관장은 술집에 있거나, 관장실에서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당시 18살 고등학생 형이 전체를 도맡아 지도했는데, 그 형은 동네의 유명한 불량 학생이었다. 도장에 있는 베란다와 화장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태웠다. 심지어 태권도장에 속해있지 않은 친구들까지 끌어들여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된 몇몇은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다. 워낙 자랑스러워했고, 다른 사람에게 태권도하는 나를 자랑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결국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도장을 나가지 않았다.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굉장히 실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상심한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어쩐지 내가 잘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며칠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시며 다른 운동 하고 싶으면 말하라고 하셨다. 나는 바로 “야구!”라고 했고, 아버지는 그날 밤 훈련용 야구 배트와 글러브 그리고 야구공을 구매해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