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군가의 험담과 조롱에 모두 반응하는 것은 좋은 판단이 아니다. 비방과 폄하를 일삼는 사람들은 언제나 사냥감을 노린다. 그들의 목표물은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다. 그저 반응 좋은 사람일 뿐이다. 그들의 모욕적인 언사에 대한 대처는 무관심이 제일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작은 해명을 하고, 그 외에는 전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게 가장 현명할 테다. 영향력이 미미한 이들과 매번 싸우는 것은 스스로의 가치를 그들과 나란히 하는 것과 다름없다.
[2]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가장 좋은 대처 방안은 그 이유를 없애는 것이다. 즉, 자리를 박차고 나와 코에 바람 좀 넣으면 화는 금방 가라앉는다. 그리고 즉시 자신을 다독여야 한다. 화가 난 이유를 곱씹지 않도록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게 좋다.
분노는 표출한 만큼 자신의 인격도 한층 낮아진다. 그리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을 때는 참담함을 겪을게 불 보듯 뻔하다. 화가 난다고 해서 그 화를 무자비하게 발산하게 되면, 이후 남는 것은 어려운 수습뿐이며, 수습을 완벽히 한다고 해도 모든 것을 가리지는 못한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최악의 모습을 겉으로 배설했으니 곁에 있던 좋은 사람들이 떠나가기 마련이다.
이처럼 단점이 명확한 분노에 이점을 얹어 지속적으로 뿜어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분노는 절대 득이 될 수 없다. 그들의 언행과 주변에 남은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 분노가 가지고 오는 것은 화마에 휩싸인 재앙뿐이라는 것을.
[3] 폭력은 어떤 행위보다도 단순하며 악하다.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정당방위는 폭력이 아닌 제압이고, 긴급한 방어 행위다. 방비를 위해 꺼낸 무력이 과하면 그것 또한 시작이 다른 폭력이며 정당하지 않다.
그런데, 내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약자에 대한 폭력이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보호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렇게 된다고 해서 청렴한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약자와 강자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력만은 예외다. 무력에 있어서 강자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을 쉬이 사용하는 이는 짐승에 가깝다. 야만에서 조금도 진화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단순한 행위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인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2.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
[1] 세상에 공평함은 없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라는 것을 정당한 패배보다는 비겁한 승리를 더욱 주요하게 바라본다는 것을 열 살 때 인지했다. 어떤 과정을 지나치든 1과 가까운 숫자를 향해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1에 다다랐을 때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열세 살에 깨우쳤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1이라는 숫자에 집착했고 1의 근처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일은 본능적으로 회피했다. 내 인생에서 못하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잘하는 일에만 뛰어들었고 결국 만능이라는 칭호를 얻어냈다. 타인의 시선에서 뭐든 잘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무엇 하나 뚜렷하게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2] 긍정적인 게 좋다지만, 나는 회사 일에 대한 긍정이 피어날 때마다 수치심이 느껴진다. 원하지 않고 재미도 없는 일에 뜻하지 않은 뿌듯함이 깃들 때마다 생각한다. '노예가 다 됐구나'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매번 부정적이게 지내는 것 보다야 낫지 않나 하며 위로하며 자책을 멈춘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날을 바라본다. 나는 그럴 수 있는 능력과 용기가 있다. 언젠가는 스스로 하는 일에 뿌듯함이 느껴져도 모욕감이 차오르지 않을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3] 나는 하지 않는 것을 경계한다. 못하는 것이 아닌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을 말이다. 공부는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게 더 만만하고, 욕정은 참는 것보다 해소하는 게 더 쉽다. 운동과 자기 계발도, 청소와 청결도 하는 것보다는 하지 않는 게 더 수월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삶이 편해져 쉽게 할 수 있는 오락에 매몰되어 삶을 영위하는 건 그 어떤 일 보다 편리하다. 나는 하지 않아서 할 수 없게 된 모든 일을 경멸한다.
[3. 우월한 원초적 야수]
[1] 어긋난 자부심은 스스로에게 큰 고역이다. 틀어진 자부심은 전반적인 객관화가 어려워진다. 이내 객관화되지 않은 자신을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이해시키려고 한다. 그러한 행태에 거짓과 허세가 가미되어 걷잡을 수 없이 부풀게 되고, 한 없이 부푼 거짓된 욕망은 이내 뻥 하고 터져버리게 된다.
[4. 누가 대장이 되는가]
[1]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삶이 싫다. 가끔은 늦잠을 자고 싶기도 하고, 뜻하지 않았던 특별한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가치 없는 것에 의미가 부여되고, 안부조차 묻지 않았던 인물의 갑작스러운 연락이 기대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사라질 어떤 것들이 영원했으면 하고, 이에 대한 불멸함이 평생 곁에 남았으면 한다.
[5. 썰매 끌기의 힘겨움]
[1] 비참함이라는 감정이 온몸을 휘감을 때 밖으로 나가 거닐었다. 휩싸인 끔찍함이 떨어져 나갈 수 있도록 걷고 또 걸었다. 쓸데없는 기억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생각을 갈무리하며 나아갔다. 근육 경련 현상으로 인해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걷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2] 무능력하고, 불평 많은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은 고문과 같다. 차라리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일 하는 게 더 나을 지경이다.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그게 정상적인 대화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 한 번 할 일을 두 번 하게 만들고, 두 번 했다고 완성되는 일도 아니다. 논리적으로도, 감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무능력자들에게 찬사를 담아 손가락에서 가장 높은 중지를 보낸다.
[3] 문명화된 사회에 맞춰 나가기 위해 자기 계발서라는 함정에 빠져 그것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자기 계발서를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실천 없는 독서는 그저 오락일 뿐이다. 그 오락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행에 옮긴 적도 있으나, 평생 지켜질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렇게 게임보다 재밌고, 술처럼 자책감이 들지 않는 자기 계발서라는 함정에 깊게 빠졌다.
[6. 한 인간을 향한 사랑]
[1] 군자에 대한 질투심에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한 적이 있다. 그 질투심은 타인의 잘못이 아닌 스스로의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 나보다 뛰어난 것이 미치도록 노여웠고, 불안했다. 어디에도 없는 자리를 직접 만들어냈고, 그 자리를 위협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는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했고, 나는 그 서열의 최상위에 속해 있다고 굳게 믿었다.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악마에게 향해야 할 적개심을 바깥으로 표출했으며, 나약함을 들키기 싫어 더욱 크게 소리쳤고, 더더욱 흉포하게 울부짖었다. 그러나 군자는 개의치 않아했으며,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았고, 천천히 다가올 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군자는 누구도 질투하지 않으며,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에게 적은 내면의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2]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 그렇기에 무엇이든 언젠가는 곁에서 떠나거나, 사라진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래서 나는 영원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평생과 윤회를 믿지 않는다. 하나의 영혼에는 한 번의 인생만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 윤회는 없다.
다음 생에는 잘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할 시간에 차라리 니체의 영원회귀를 믿으며 지금을, 오늘 하루를 최대한 열심히 살아내려 한다. 스스로의 인생을 자조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 느껴지는 자족감을 받아들인다.
[3] 나를 편안하게 해 줌과 동시에 스스로도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또 다른 관계는 무의미하다. 많은 인연을 만들고, 그들과 한 순간 웃고 떠든다 할지라도, 결국은 얄팍한 사이가 된다. 이해관계가 성립되지 않을 땐 쉽게 적으로 인식하며, 스스로의 입맛대로 상대를 예단한다. 뜻 없는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망상에 빗대어 상대를 재단한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가 행복할리 만무하다. 째마리들과 더 깊은 관계를 지속해 봤자 공허함과 더불어 허무함만이 남을 것이 분명하다.
스스로 확신이 없어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당사자에게 뱉어내지 못하고 에둘러 전혀 상관없는 타인에게 속삭인다. 더 이상 이런 머저리들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 한 번 깨진 접시는 버리고 새로 사는 게 더 효율적이고, 가치 있는 행동이다.
[4] 사랑은 절대로 쉽게 내뱉어선 안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것을 타인에게 준다는 것인데, 그것을 거부당했을 때 오는 좌절감은 세상을 등지고 싶을 정도의 고통으로 다가온다. 타인에게 준 사랑의 감정은 결코 회수되지 않는다. 이후 빠져나간 사랑의 크기만큼 공허함이 남아 다시금 사랑하는데 너무나도 긴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 기간에 제대로 된 극복을 하지 못한다면, 다시는 사랑하지 못한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절대로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되뇐다. 그렇기에 쉽고 빠른 사랑의 속삭임은 되도록 멀리하는 게 좋다.
[7. 부름의 소리]
[1] 나에게 여행이란, 며칠이든 관계없이 한적한 계곡 근처의 민박집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것이다. 볕 좋은 낮에 밖으로 나와 같은 곳을 산책하는 게 좋고, 맛집이 아닌 눈에 보이는 음식점 아무 곳에 들어가 주린 배를 채우는 게 행복이다.
일정에 사로잡혀 주변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넓고 얕게 여행하는 것보다 좁고 깊게 여행하는 것을 선호한다. 많은 곳을 가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한 곳을 깊게 파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나는 매일이 여행일지도 모른다.
[2]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막연함은 대단히 불확실하다.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옳은 행동이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고 노력도 없이 그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듯하는 설교는 조금도 타당하지 않다.
[3] 걱정하며 많은 것에 대비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행동이 독이 될 순 있지만 약간의 전환점만 가미하면 큰 운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똑같이 많은 것에 대비하며 걱정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그리고 내 생각과 다르게 펼쳐지는 모든 것을 수긍하면 된다. 즉 만반의 준비를 하되 결과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는 무시하고 과정만을 찬양하는 게 아니다. 실패도 결국 과정일 뿐이기에, 결과를 결말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인생의 결말은 죽음뿐이고, 죽음을 제외한 결말은 없다. 내 결과는 노벨 문학상과, 부커상이기 때문에, 그 밑에 있는 모든 결과물에 대해서는 부정도 긍정도 의미 없다.
아무리 실패하고, 무너지고, 좌절한다고 해도 저 멀리 보이는 태산 같은 목표를 가릴 순 없다. 그렇게 매일 공부하고, 읽고, 쓰는 삶을 죽음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평생 영위할 수 있다.
[4] 틀을 깨부수고 새로운 삶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금의 변화가 전부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향할 여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어쩌면 확신이 없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때문에 매번 공상에 빠지고, 사색에 잠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뒤섞인 이상적인 꿈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렇게 조금의 변화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실행의 틈에서 이미 틀을 깨 부수고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미래의 나를 마주한다.
[5] 생명을 다한 사람의 몸은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이질적이다. 그가 살아 숨 쉬었을 때 미세하게 움직이던 모든 것들이 정지했고, 따뜻한 체온마저 증발했다. 미숙한 합성만큼이나 어색하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얼굴을 맞았을 때처럼 얼떨떨하다. 그가 차지하고 있던 내 마음속 지분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고, 나에게는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꿈속에 나타나는 그의 인자한 미소는 매번 오열을 자아낸다.
<불을 지피다>
[1] 사람은 생각에 높은 가치를 두기에 짐승과 다를 수 있다. 반면 사람인데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매번 사색을 해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어떤 행동에 있어, 타인이 관련되어 있다면 한 번쯤 더 생각을 하고서 행동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죄책감이나 유보함 없이 일단 저지르는 짐승들 말이다. 사파리를 달려야 할 금수들이 사람인척 사회에 섞여 살고 있다.
[2] 마음을 비울 수가 없다. 내 글의 원천은 많은 생각인데, 생각은 많아질수록 잡념이 깃든다. 그리고 잡념 하나하나에 신념을 담으며 사색을 한다. 마지막으로 사색이 복잡해지면 마음이 되고, 결국 마음이 글이 되는 것인데, 그것을 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3] 자신의 안일함을 그저 불운 탓을 한 적이 있다. 오늘은 되지 않는 날이라며 자조하고, 올 해는 어려운 해라며 분투하지 않았다. 더 노력할 수 있었고, 더욱 자제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 부정은 칼날로서 내 몸 여러 곳에 생채기를 냈고, 상처는 곧 고름이 되어 고통을 안겨줬으며, 고통은 이내 딱딱한 딱지가 됐다. 얼마 후 딱지가 떨어졌으나, 흉터는 지워지지 않았다.
[4] 부정하고 싶은 모든 생각은 사색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즉, 모든 부정은 직접 부딪치고, 움직여야만 해소된다. 그런데 그 행동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어떤 움직임도, 행동도 쓸데없이 느껴진다. 그렇게 자존감이 낮아지고, 믿음은 의심으로 변모한다.
천천히 나아가자는 다짐도, 해낼 수 있다는 각오도 무의미해진다. 기어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무가치하게 연소한다. 자책감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뇌리에 안착해 모진 매질을 시작하고, 무력감이 온몸을 지배한다. 무기력한 몸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고, 눕기만을 강요한다. 결국 자신의 부덕에 휩싸인 채 깊은 잠으로 유배를 떠난다.
[작품 해설]
[1] 이상은 매번 증명을 요구한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에는 화살받이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나의 꿈을 반대한다. 갖가지 이유로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며 부정을 내뱉는다. 노력을 폄하하고, 의미를 퇴색시킨다.
나는 그럴수록 큰 힘을 얻는다. 대안 없는 반대는 어떤 동의도 얻을 수 없다. 대책 없는 비평은 자격이 없고, 능력 없는 평가는 존중받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시기와 질투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고, 계속해서 정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의 역겨운 목소리가 커질수록 내면의 자존감은 매번 성장한다.
[2] 권리를 외치며 의무를 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권익에는 목숨을 걸지만, 타인의 밥그릇은 쉽게 깨트린다. 자신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 하진 않지만 보다 월등히 많은 일을 해내는 사람들과는 공평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의 요구에는 정당성이 없고, 비평에는 비난이 짙게 묻어 나온다.
[3] 고통 끝에는 항상 깨우침이 있고, 깨달음을 통해 행복이 다가오며, 행운 근처에는 늘 불운이 도사리고 있다. 불운한 자신을 자조하며 망가진다면 끝도 없는 나락으로 빠질 것이다. 그러나 불운 근처에는 늘 행운도 함께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면, 모든 불안이 해소되어 조금 더 성장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4] 질투와 집착은 절대 사랑일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은 역겨운 소유욕일 뿐이고, 질투는 더러운 욕망이다. 사랑은 숭고해야 하며, 가끔 때 묻어도 금방 씻어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질투와 집착은 절대 닦이지 않으며, 이내 증오로 변모한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라는 말이 있다. 이기심이 주가 된 사랑의 끝에는 증오만 남는 게 당연하다.
사랑은 자연과도 같다. 자연은 절대 소유할 수 없고, 소유할수록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집착일 수 없고, 질투할 수 없는 고유한 감정인 것이다. 사랑은 호르몬이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호르몬으로만 이어지는 게 아니듯, 아이를 입양하는 것은 마음으로 잉태하고, 가슴으로 낳는 행위다.
단순히 남녀 간의 호르몬적인 소유는 사랑이 아니다. 단순한 좋아함은 될 수 있지만, 절대 사랑일 수 없다. 사랑은 매번 실패한다 해도, 이기적으로 해선 안된다. 물론 이용만 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절대 호구는 아니다. 호구는 물질적인 것으로 사랑을 채우려는 것이고, 자신은 받지 못하는 사랑을 상대에게 퍼붓는 것이다.
사랑은 쌍방이어야 한다. 사랑은 수치화할 수 없지만, 자신만의 개념은 분명 존재한다. 그 틀에 완벽한 사람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려울 수 있으나, 그렇게 하겠다 마음먹어야 한다. 사랑은 절대 쉽게 이루어져선 안된다. 세상에서 가장 쓴 고배를 마신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
사랑은 강요가 아닌 부탁이 주가 되어야 하며, 집착을 관심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강요와 집착의 사랑은 결국 증오가 되어 파국으로 향할 것이고, 부탁과 관심의 사랑은 끝이 나도 절절한 그리움이 남아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