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연
검은 막대기가 껌뻑이면 호흡이 가빠진다. 아무리 진행해도 껌뻑이는 막대는 충족되지 않는다. 내 성에 차면 타인의 정신에 깃들지 않고, 타인의 눈높이에 툭 던져두면 내 성은 와르르 무너진다. 냄새나는 늪에 팔뚝까지 넣고 휘저어 보지만 남는 것은 악취뿐이다. 진주를 건져 올린다고 한들 내겐 아무런 쓸모도 없는, 역겨운 냄새만 풍기는 구슬이다. 지나가는 아이에게 주기도 민망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선사하기도 부끄러운 그런 구체다. 검은 막대기는 여전히 껌뻑인다. 호흡은 안정된다.
냉장고 안의 음식은 모두 차게 유지된다. 그리고 냉동고에서 모든 게 얼어있다. 나는 냉장고를 열 땐 냉동고를 닫아두고, 냉동고를 열면 냉장고는 닫아둔다. 다리라도 따뜻해지라고, 머리라도 춥지 말라고. 오래간만에 온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면 먼저 냉동고를 기웃거린다. 내놓고 싶은 게 있는지, 고심 끝에 얼린 생수를 꺼낸다. 한 번 냉장고에 넣어둔 것은 냄비로 옮기기 어렵다. 손님들은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기대하는 눈치다. 그럼 나는 애써 꺼낸 얼음물도 다시금 냉동고에 넣어버린다. 철저하게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당신을 지켜보겠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스스로 신념을 내던지진 않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주시하겠다. 하나, 이 말은 거짓이며, 부정이다. 긍정하는 인간은 결국 믿게 된다. 의심 없이 믿으면 그만이다. 그 믿음에 대한 보상이 적절하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다. 결과를 원한 게 아닌, 믿음의 행동을 기대했으니까. 진정 오랫동안 지켜볼 사람은 말로 내뱉지 않는다. 그저 그럴 뿐이다. 정말 믿고 싶은 사람에게 의구심은 사치다. 믿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소진했으니까.
오래된 문장은 그대로인데 뜻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누군가의 입맛에 따라서, 특히 진리를 거세당한 반짝이들은 곡해하기에 바쁘다. 없는 사실은 만들고, 있는 사실음 감춘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안 보이는 것도 보인다며 거짓말한다. 그들이 퍼트리는 낭설은 오래된 문장을 훼손한다. 문장을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알면 아는 거고, 모르면 모르는 것일 뿐 참과 거짓이 아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다. 그러나 진리를 거세당한 괴물들은 계속해서 배척하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수만 개의 실 달린 바늘 틈에서 실을 버리라고 종용한다. 순백의 바늘은 오늘도 오염당하고 있다.
유지
명심하렴
아무리 안아도 남의 꿈엔 갈 수 없단다
잘 자라, 서정아
그은 것도 잊은
오래된 문장처럼
서사 없이도 사랑은 할 수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