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20대

스물아홉 - 스타트업 개발자

내려놓고, 내려놓자.

by 아코

스타트업에서 벌써 일한 지 4년 차이다. 초반에는 개발자인 나와 개발자가 아닌 나 자체로의 나를 나누어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업무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날 하루 종일 아니 며칠이고 시무룩하고 힘들었다. 지금도 이 부분은 어렵다. 하지만 좀 더 나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 그리고 좀 더 건강한 생각을 가진 내가 되기 위해 분리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기까지 내가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이야기할까 한다.


우선순위 정하기


시시각각 변경되는 업무와 이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 선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속에서 항상 갈등하는 것은 유저들에게 보여줄 새로운 기능과 시스템 관리를 위한 유지보수 중 어떤 업무를 먼저 해야 하는가 이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정할때는 밑에 표처럼 항상 중요도/긴급도를 고려한다. 시스템 관리 측면의 업무의 중요성은 모두가 공감하는 편이지만 긴급도에 있어선 차이가있다. 개발업무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스템 관리를 위한 유지보수가 더 긴급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반대로 비개발업무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유저의 즉각적인 반응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긴급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서로가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업무의 우선순위가 다르고 이런 일들이 갈등을 일으키는 주요 요소인 것 같다. 그 속에서 개발자인 나는 중간을 찾기 위해 계속 생각한다. 시스템뿐만 아니라 유저들의 반응도 봐야 하기 때문에 매일 SNS를 통해 유저들의 반응을 살피고, 비개발업무 업무를 맡은 분 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도움을 청하자


책임강이 강한 나는 한 가지 일을 하면 그 부분에 최대한 집중하고, 다른 부분을 잘 보지 못한다. 신입 개발자로 일할 때에는 한 가지 버그를 고치겠다 라고 생각하면 그 버그가 수정되기까지 잡고 늘어지곤 했다. 내가 그 버그를 잡고 늘어지는 나도 모르는 선택을 한 순간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개발을 하다 보면 느끼지만 이렇게 혼자서 끙끙대다가 다른 개발자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른 사람이 보면 허무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들이 많다. 책임감이 독으로 돌아오는 순간들이었다. 이런 경험들이 나를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게 해 주었다. 지금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감이 안 오거나, 오래 걸릴 것 같으면 시간을 정한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때로는 아직 남은 욕심에 몇 분을 더 질척거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문제 해결 능력을 높여주었다. 우리의 목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누가 해결하는지 경쟁하거나 실력을 뽐내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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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해지기


고정관념이란 무섭다. 일을 할 때도 이런 고정관념이 종종 나를 붙잡을 때가 있다. 기능은 최소한으로 적용해 유저들의 피로를 줄여야 한다. 색상은 그 프로젝트의 정체성이니 절대 변경하면 안 된다. 기타 등등 이런 나의 고정관념들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의견을 받아들일 때 어렵게 만드는 생각들이었다. 상식적인 생각을 하면 상식적인 결과물이 나오고 상식적인 단계까지 밖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성공을 바라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우리는 스타트업으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상품을 만들고 이에 대한 반응이 우리의 존폐를 가른다. 반응을 보기 전에 먼저 생각해서 가능성을 닫지 말고 유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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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자


업데이트가 가까워오면 나의 예민은 극에 달했고, 지금도 그렇다. 초반에는 잠도 못 자고 술에 힘을 빌어 들었던 선잠도 새벽에 깨기 일수였다. 눈뜨면 핸드폰으로 앱을 켜서 실행이 잘 되는지 테스트해보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점점 지쳐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전전긍긍하면 프로젝트가 더 잘 될까? 버그가 사라지나? 좀 더 집중할 수 있나?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은 "아니" 었다. 오히려 이렇게 만들어진 심리적 피로감에 힘들었고,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고, 이 때문에 함께 만난 친구들에게도 매일 회사 얘기를 했었다. 어는 순간에 보니 내가 만든 앱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때 생각을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임감 있고 프로젝트를 사랑하는 모습은 좋았지만 그런 모습들이 개발자가 아닌 나를 다 갉아먹고 개발자인 나만 생각하게 만들었다. 개발자가 아니어도 나는 나이고, 개발자 아닌 내 모습도 좋은 면이 많다. 그리고 내려놨다. 회사에서 벗어났을 때는 최대한 업무에 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도 문득문득 드는 생각을 다시 서랍에 넣느라 고생 중이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오히려 업무에 대한 생각을 떨치고 다른 일을 하면서 아이디어로 생각했던 것들이 업무에 오면 접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나에게도 프로젝트에도 선순환이 되는 마음가짐이 바로 내려놓기였다. (글 쓰는데 트렐로 알람에 눈이 가버렸다.)






우리는 혼자서 감히 상상할 수 도 없는 일들을 함께해서 이뤄내고 있다. 우리의 힘을 믿는다. 점심을 먹으며 회사 불평에 울분을 터뜨리고, 속상해 하지만 애정이 있기에 그렇다. 언젠가 우리의 오늘을 회상하며 그땐 그랬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긴 터널의 끝을 지나 눈부신 햇살을 염원하고 바란다. 그 햇살을 보기 위해 오늘도 우리 팀 그리고 많은 스타트업에 일하고 계신 분들 파이팅!



P.S 그런데 정말이지 내려놓기는 아직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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