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노무사님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를 가해자로 지목하신 분은 약 7일 전, 자발적으로 퇴사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약 2개월 동안 제가 요청한 업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고, 두세 차례 리마인드를 드렸음에도 반응도 피드백도 없었습니다. 요청한 업무는 회사 운영상 법적의무가 있는 정당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업무요청(단순 신고업무)을 2개월 동안 거부하는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징계조치할 수 있다는 경고도 했습니다만 그분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화를 내고,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퇴사 이후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만, 지난 4주가량 조사와 대응을 하며 느꼈던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희 회사는 15명 이내의 작은 스타트업이고, 저는 40대 초반에 이사라는 직급으로 재직 중이었지만 때로는 팀장으로서 모든 실무를 함께 처리하는 직원입니다. 저를 신고하신 분(A님)은 연구과제와 경영지원 업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회사에서 채용한 2명 중, 1명이었습니다.
두 분에게는 서로 협업하며 경영지원 업무를 새롭게 관리해 보자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함께 성장하길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근무하셨던 두 분은 업무 처리방식에서 조금씩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R&R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갈등을 만드는 사람은 항상 A님이었습니다. A님은 사소한 것에도 눈치를 주거나, 불편함을 상대방에게 티 내는 행동을 했고, 감정적인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면담을 진행하거나, R&R을 조정해주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다른 분이 같이 일하는게 힘들다며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이번 사건의 발단이라고 볼 수 있는 연봉협상의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A님은 연봉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입사 때 시니어 레벨로 연봉 인상을 충분히 해드렸으나, 업무 기여도나 역량, 태도 등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연봉협상의 불만으로 2개월가량 업무를 거부하다 퇴사하셨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저를 신고 했습니다.
노무사님께 연락을 받고, 조사를 받으며 확인한 신고사유는 대략 5가지였습니다. 대부분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거짓과 왜곡된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그냥 신고로 접수되었고, 가해자로 지목받은 저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며칠 동안 입증가능한 자료를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자료를 준비하면서 답답하고 억울함에 화도 났고, 우울감도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회사에서 수평적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동료들과의 협업을 강조해왔는데 이런 사건이 생기니 상실감과 허무함,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이겨내기보단 오히려 주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신고당한 사실에 대해 얘기했고, 저를 믿어주는 친구들이 있어 힘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과거에 퇴사하신 분이 노무사님께 사건에 대해 연락을 받았다며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재직 시절 제가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감사함을 표한다는 말과 함께 선물도 보내주셨습니다. 주변의 격려와 응원은 당시의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란?
사용자나 근로자가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①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②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을 것
③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알아보던 중 ③ 의 '정신적 고통'이라는 정의는 너무 모호하여 악용하는 사례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악용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고통을 '자신의 기분을 상하거나,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면 정신적 고통'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악용하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허위 신고란?
실제로는 괴롭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누군가가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거짓으로 신고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A님께서 신고한 목적 중 하나도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라는 보복성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본인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챙기려고 하는 행위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있는 직장에서는 언제든지 의견충돌이나 오해, 말실수 등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 모든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면 직장생활은 서로를 죽이는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이런 악용들은 관련 규정의 취지와도 부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다른 신고 목적 중 하나는 금전적 목적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내용을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결과가 나올 때쯤 본인이 질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 A님은 2차례 저에게 문자를 보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 준다면 노동청에 신고한 것을 취하해 주겠다'며 협상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업급여 부정수급은 범죄이기 때문에 들어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아마 이겼다면 다른 금전적 보상을 요구했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매년 증가하여 2024년 1만 2,253건에 달하며, 그중 84%가 취하(26%), 기타(58%)로 분류되고, 법 위반 없는 건은 약 31%에 달합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3,846명은 허위 신고나 부적절 신고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절대 작지 않은 숫자입니다.
문제는 2023년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허위 신고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명확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고, 그 결과, 악의적인 신고가 일어난 경우에도 피해자는 실질적인 보호를 받기 어렵습니다는 점입니다. 허위 신고나 부적절 신고도 무고한 누군가에게 누명을 씌우는 행위는 가해 행위입니다. 허위 신고를 당한 사람은 조사를 받는 동안 정신적인 고통은 물론, 회사 생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가장 큰 부분은 같이 일하는 동료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하락한다는 점이고, 이것은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며, 결국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실제 괴롭힘을 당하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법입니다. 회사라는 위계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짜 직장 내 괴롭힘을 막을 수 있는 장치니까요. 하지만 누군가 그 제도를 고의적으로 또는 악의적으로 남용했을 때에는 새로운 괴롭힘이 될 수 있습니다. 허위 신고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칠 수 있고, 그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것을 악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하고, 그에 맞는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잡코리아 등에서 허위 신고 패턴과 수법들을 갈수록 교묘하고 다양하게 악용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기준이 공정하지 않으면 제도는 사람들을 지키는 울타리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또 다른 폭력의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오히려 선의의 피해자만 양산하는 또 다른 구조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법이 진짜 피해자를 보호하려면 악용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따를 수 있도록 정교한 장치도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사회 전체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야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특정 개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목적은 전혀 없으며, 직장 내 법적 제도에 대한 개선 논의에 기여하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