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우고 싶다
격렬하게 재우고 싶다
완강하게 거부하는 딸아이를 유모차에 태웠다. 사람 없는 한적한 곳에서 재우고 싶어 열심히 바퀴를 굴렸다. 느낌이 이상해서 보니 차양막 안에 편안히 누워있어야 할 상체가 밖으로 고꾸라지듯 탈출해 있었다. 게다가 한쪽 손은 빗자루가 되어 아스팔트 길을 따라 쓸고 있었다. 순간 누가 볼세라 얼굴이 화끈거려 얼른 집으로 후퇴했다.
작전을 바꿨다.
포대기를 코르셋처럼 온몸에 밀착시킨 채 아이를 업었다.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심산이었다. 뭐 이런 애가 다 있는지 모르겠다. 졸음을 두 눈에 가득 담고도 절대 눕지 않고 필사적으로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희한한 아이다. 친정 식구들 사이에서는 '만취녀'로 통한다. 아무도 몰랐다. 마흔여섯의 노산모가 이토록 강철 체력의 아이를 낳을 힘이 있었을 줄이야. 누구보다 마흔여섯의 내가 가장 크게 놀랐다.
나도 좀 쉬자.
아스팔트 빗질로 단련된 강철 고사리 손에 의해 책꽂이에서 무참히 뽑힌 책들이 패잔병처럼 여기저기 누워있다. 책 하나를 일으켜 자장가를 부르듯 간절한 심정으로 읽어주기 시작했다.'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
옛날 옛적 숲 속에 엄마염소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요-' 아이고, 이 엄마 힘들겠네'
엄마염소가 아기염소들에게 말했습니다.”아웃렛에 다녀올 테니 문 꼭 잠그고 있거라 “-'그래, 엄마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런데 웬 아웃렛?
피곤한 눈 크게 뜨고 다시 확인해 보니 ’ 아랫마을'
옛날이야기를 현대식으로 트렌디하게 변형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다.
잔다. 드디어.
순한 기질 큰아이는 아기 때부터 잠이 많았다.
하도 깨지를 않아 숨을 쉬고 있는 게 맞는지 코 밑에 손을 대고 숨결을 확인할 정도로 잘 잤다.
예민 기질 딸은 잠이 없다. 게다가 잠귀가 밝아 쉽게 깬다. 이제 포대기에서 내리는 게 문제다. 내리는 동안 그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갔던가. 숨도 참은 채 조심조심 침대 위에 고이 모셔두고 예의 바른 궁녀처럼 뒷걸음으로 거실에 도착했다. 자고 있는 딸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동태를 살피며 음소거 식사를 시작한다.
소음기 앞 소리 내지 않고 먹기 대회에 출전하면 무조건 순위권이다.
낮은 데시벨로 식사하는 새로운 재능 발견.
그럼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할 일 많은 콩쥐처럼 쪽잠을 자고 벌떡 일어나 달려 나온다.
안~돼~ 막아보려 일어섰지만 천 근 만 근 한 내 몸에 슬로가 걸린다. 어느새 식탁에 부딪혀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이마에 깊이 상처가 생겼다
”아이고, 아팠어? 괜찮아, 괜찮아"
집에 있는 후시딘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첫 아이 키울 땐 뭐든 조심스럽고 겁이 많았다. 태어난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 아기 눈 한쪽에 눈곱이 낀 걸 발견했다. 뭐지? 이건 뭐지?
심장이 벌렁벌렁. 겁이 덜컥 났다. 경황없이 아기를 안고 소아과로 달려갔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원장님께 다급하게 소리쳤다.
‘선생님,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죠?’
순간 선생님의 동공이 흔들리는 걸 보았다. 속으로야 흠짓 놀라셨겠지만 표현하지 않으시고 감기약을 처방해 주시며 괜찮을거라고 해주셨다.
딸아이를 키우며 새롭게 재발견되는 능력 중 단연 최고는 세월이 주는 강심장이다.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고 난 후 성인이 되어가는 큰 아이를 지켜보며 또다시 아이 키우기가 시작되었는데 뭐 그리 놀랄 일이, 뭐 그리 불안할 일이 있겠는가. 이 나이에 사소한 일에도 심장이 벌렁거린다면, 그건 혹시 부정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