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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셀나무 Dec 22. 2023

당당함과 버릇없음의 그 사이

-  ' 조선미의 현실 육아 상담소 ' 를 읽고

 그동안 읽은 육아서가 몇 권이나 될까?

첫 아이 키울 때는 육아서를 거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2살, 4살, 6살 위의 언니들이 조카들을 키우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육아에 대한 지식과 간접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순한 기질로 태어나 낯가림도 없이 순둥순둥했던 아이를 별다른 어려움 없이 키워서인지 육아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아기 때부터 외식을 할 때도 고집을 피우거나 말썽을 부린 적도 거의 없기에 외출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다. 식당에서 물컵에 콜라와 간장을 섞고 우당탕탕 젓가락으로 시끄럽게 구는 아이들과 이미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지 오래돼 보이는 모습으로 다급하게  아이들을 단속하는 옆테이블 엄마들을 보면  뭐랄까? 마치 나는 우아하게 육아를 하고 있다는 우월감이랄까? 육아고수인 양 교만이 하늘을 찌르던 그 시절이 있었다. 아들은 엄마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아이라 어디서든 또래 엄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 아들의 대반전 사춘기 스토리는 나중에 다시 브런치글로 토해낼 예정이다)

“이런 아들이면 열도 키우겠다. 어쩜 이렇게 잘 키웠어요?”

늘 듣는 이야기.   



       

 다른 존재가 태어났다. 평화로웠던 우리 가정에 낯선 존재가.

아빠에게도 낯가림을 하는 아이. 하도 잠을 안 자고 칭얼대며 꼭 브레이저 끈을 만지며 자야 하는 아이 때문에  남편을 보며 ‘ 내 거 입힐까?’  하는 생각이 한두 번 든 게 아니다.  남편도 아이를 좀  안고 재워보도록. 늘 안고 있어야 해서 팔에 무리가 갔는지 오십견 시술도 받아야 했다.  외식? 꿈도 못 꾼다. 간장과 콜라를 섞는 아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는 아이, 그게 바로 우리 딸이다. (엄마들, 그땐 미안했어요. 고상 떨며 내가 잘 키워서인 줄 착각했어요.)

교회 성탄절날  유아부 발표회에서 남들 율동할 때 무대 위에서 냅다 누워버려 발표회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얼굴 화끈거리는 사건 이후 나의 자존감은 더욱 바닥으로 지하로 땅굴을 파고들었다. 둘째 아이 덕분에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지고 많이 겸손해졌다.   



       

 ‘우리 아이 달라졌어요’를 몇 년치 유료결제하고 매일 밤마다 몇 편씩 찾아보며 오은영 박사님의 솔루션을 배워나갔다. 또 다른 육아박사님의 강의 역시 유료 결제하고 예민기질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육아서도 일주일에 두세 권씩 독파하며 육아에 도움을 받고자 노력했다.(당시 유아 ADHD 증세 10가지 중 거의 8개가 일치하여 더욱 비장감으로 공부를 했었던 것 같다) 아이는 소리에 심하게 민감하고 천방지축에  조심성이 없어 수시로 다쳐 골절로 깁스를 몇개월이 해야했고  손잡는걸 싫어해서 놔주면 오던길 반대로 냅다 뛰어가 잡으러다니기 일쑤였다.( 그 때의 내 사진을 보면 얼굴은 늘 불타는 고구마이고 지금보다도 훨씬 늙어있다)

어디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질은 변하지 않아도 ‘엄마라는 환경에 의해 아이의 성격은 변할 수 있다’는 문장을 발견하고 나름 희망을 놓지 않고 배운 것을 적용해 나갔다. 하루아침에 변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조급해하지 않았고  화내지않고  따뜻하게  반응하며 훈육을 해 나갔다. 왜 따끔하게 혼내지 않냐며 큰아이의 항의도 받았지만 혼내서 변할 성격이 아님을 교육을 통해 알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많이 변해갔다. 그 시절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다른 아이 같다고들 하신다.(5학년이 된 지금도 히타가 나오는 지하철 좌석 밑으로 손가락을 넣어 화상을 입는 일도 있긴 하지만.)  

 이제는 사춘기를 앞두고 또 다른 방향으로 키워야 하는 제2의 육아가 시작되는 시점이 되었다. 이 시기에 독서모임을 통해  ‘조선미의 현실 육아 상담소’를 만나게 되었다.     



     

“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평소 대쪽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일곱 살 남자아이를 키웁니다. 저희 아들은 지식이든 상황이든 납득되지 않으면 계속 묻고 따져서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라는 우리 딸과 비슷한 성향인 아이의 사연이 눈에 들어왔다.


-주관이 뚜렷하고 대쪽 같다고 하는 건 자기 생각을 쉽게 안 바꾸고 세세한 것까지 물어서 확인하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아이 행동이 혹시 ’쓸데없이 고집부리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융통성이 없다 ‘는 건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행동으로 봤을 때 뭔가를 물어보고 따지는 것을 부모님이 긍정적으로 본 것 같아요....-


 박사님의 조언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을 들킨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마음을 어떻게 아셨지? 정말 그랬다. 소심한 나와는 다른  당찬 아이의 주장과 집요한 논리가 버겁게 느껴지면서도 내심 흐뭇했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아이가 마냥 좋게 보였다.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과 당당한 것과의 아슬아슬 경계가 모호해지던 시점. 관대한 엄마의 태도에 아이의 주장과 고집은 점점 강화되어 가고 대상도 학교 선생님에게 까지 확대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대해주면 아이는 납득이 안 되는 지시는 따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습관이 되면 매사에 토를 다는 어른이 될 수도 있어요...-


우려했던 부분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가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7세에 대한 솔루션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겠지만 나의 태도와 마음을 먼저 알게 된 것이 첫 번째 수확이고 딸아이의 태도를 객관적으로 점검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적용하기.

-우선은 식사 메뉴의 주도권부터 가져와야겠다. 어떨 때는 주는 대로 먹는 날도 있음을 알게   해야지.     

-휴대폰의 주도권도  찾아와야겠다. 어느 순간 너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모른 척했었는데  집안에서의 휴대폰 사용 규칙을 다시 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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