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미의 현실 육아 상담소>를 읽고, 생각하고, 쓰는 반성의 글.
어릴 적 우리 아빠는 누구보다 교과서였고, 엄격한 분이셨다. 교과서로 치자면 수학의 정석과도 같고, 영어의 맨투맨과도 같았다. 기본과 정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예의범절을 중요시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셨고, 그리고 피해받는 것도 싫어하셨다. 술담배도 안하셨던 에프엠아빠는 퇴근 후에도 딱 할 말만 하셨고, 저녁식사를 할 때에도 우리 가족은 거의 대화없이 밥만 먹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의 나는 더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엄마가 좋았고, 강하고 엄격한 아빠는 덜 좋았다.
그런 아빠에게 난 사랑받지 못하고 컸다고 느끼며 자랐다. 어른이 되고나서는 속정이 그 누구보다 깊은 분인 건 분명하게 알았지만, 좀 더 자상하고 세심히 두 딸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분이라, 난 아빠의 사랑이 늘 고팠고 당연히 아빠 같은 남자는 만나지 않으리 늘 생각했었다.
엄격한 아빠의 딸로 자라는 것은 실로 힘들었다. 시험을 치고 전교 2등을 해도 다음엔 더 잘하라는 말을 칭찬대신 들어야 했고, 진짜 여자가 되어 생리를 시작하는 그 순간엔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게 꼭 싸서 버리라는 말로 축하인사를 대신 받아야 했다.
내가 듣고 싶은 진심어린 인정과 따뜻한 축하의 말대신 아빠는 딸들에게는 늘 엄격했고, 무서운 존재였다. 아빠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될까 두려웠고, 아빠랑 친구처럼 지내는 내 단짝 친구의 가족이 어린 마음에 늘 항상 부러웠다.
'아이가 태어나면 난 친구 같은 엄마가 될 거야.'
'아이아빠는 아이들과 친구처럼 자상하고, 좋은 말들을 가득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이에게 최대한 맞춰주며 가능한 모든 것은 들어주고 사랑해 줘야지.' 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뿌리내려졌고, 결혼을 하고 그렇게 살기 위해 유난히도 노력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현실과는 동떨어진 동화책에서나 볼 법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는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은 현실이다.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다.
세 아들을 멋지게 키워낸 친한 가족 아버님이 육아 관련 조언을 했던 적이 있다.
"초록이는 다 좋은데, 가끔 아빠, 엄마보다 서열이 더 높다고 느끼며 말할 때가 있어요. 집에서 서열 1위는 부모여야 하고, 그다음이 형인 초록이, 연두여야 해요. 그래야 동생도 형아를 우습게 보지 않고, 형도 동생을 더 잘 챙기게 돼요. 나중에 커서도 집에 한 명은 기강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친구처럼 지내도 그런 부분이 없어서 걱정하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서 그래요."
몇 년 전, 가족모임에서 들었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최대한 돌려가며 선을 지키며 말씀해 주셨지만 나는 무슨 말인지 딱 알았다.
<조선미의 현실 육아 상담소> 책을 보면서 느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며 했던 말과 행동들이, 너무 과했구나!라는 것을... 아이를 잘 키워내고자 노력했던 내 노력들 중에선 필요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설명하고 있었고, 아이가 이해가 된 후에 행동하는 게 민주적이라는 생각으로 불필요한 선택사항도 많았다. 아이가 생각하고 결정하는 권한을 주고 싶어 밥을 먹을 때도 먹고 싶은 것을 미리 말하게 하고 식성 다른 두 아이의 식사를 준비한다던지, 여행을 가도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만 민주적이라는 이름하에 아이들에게 필요이상으로 많은 선택 권한을 주었다. 가끔은 부모인 우리가 선을 정해주고, 지시해야 할 부분도 있는 법인데 나는 강제적이라는 이유로 허용하지 않았다. 성향이 정 반대인 남편은 육아만은 내 의사선택을 존중해 주었지만 아이들이 꼭 해야 하는 것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배려도 없다. 올해 여름휴가를 제주도에서 보낼 때 후발대인 아빠가 뒤늦게 오고 나서야 엄마인 내가 좋아하는 카페를 갈 수 있었다. 남편이 오기전, 3박 4일 일정동안 우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놀이만 실컷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카페도 한번 안 가고, 너희가 좋아하는 것만 해서 좋았냐는 가시돋힌 아빠의 물음에 두 아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내심 '미안해서 그렇겠지' 나 스스로를 위안삼아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아빠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지는 않는다.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일순위는 아빠,엄마라고 하는 두 아들녀석이다.
이젠 나도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 어른으로서 옳은 부분에 있어서는 굳이 선택사항을 주지 않고 강제해도 나쁠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매일같이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다 보니, 설명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아이들은 엄마는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아들들은 내 번잡스러운 말들을 정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는 흘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P223. 그런데 여기서 부모들이 크게 실수하는 게 있습니다. 마음을 읽어주라니까 아이 감정을 읽어주는 데서 나아가 아이가 자기 마음대로 하게 해주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아이의 주장은 허용해 줄 수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은 읽어주되 아이의 주장을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모가 결정해야 합니다.
매일같이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며 생기는 일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나는 책에서 배운 대로 아이의 감정과 마음을 읽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의 말에 휘둘리기 일쑤.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더 말발은 늘어가고 더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중에, 난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끌려다니는 엄마가 되어갔다. 아이의 마음은 어루만져 주되, 아이의 말도 안 되는 주장까지는 수용하지 않아야겠다 다짐하면서도 그럴듯한 아이들 말발엔 당해내질 못했다.
나는 두세 달 전에 했던 부모양육태도검사에서도 합리적 설명은 88.5%로, 자녀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하는 노력의 정도가 과한 편으로 나왔었다.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으로 인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사랑한다면서 망치는 사람, 인에이블러가 바로 나였다. 아이들은 꽤 독립적인 편인데, 나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걱정이 앞서 단단하지 못했다. 말로는 단단함을 추구하지만, 행동으로는 아이들 관련한 일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나약해졌다. 비가 오면 옷이 젖어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힘들까 봐 코앞 학교를 데려다주곤 했다. 내 달콤한 사탕발림 말에, 첫째는 5분 거리 코앞 학교를 태워주냐며 가방이 홀딱 젖어도 걸어가는 걸 택하지만, 둘째는 차를 타고 등교를 한다. 말끔한 채로, 가방엔 여벌 수건과 양말이 깨끗하게 담겨서… 차마 첫째를 억지로 태우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하루종일 불편하다. 아이 옷이 젖었을까봐, 찝찝할까봐... 비가오는날은 옷이 젖어 불편함을 감수하는 법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배워야할 부분인데, 나는 그런 마음조차 귀하게 여기지 못했다.
영어공부를 할 때는 단어 하나하나 찾는 게 번거롭다는 이유로 옆에서 일일이 뜻을 가르쳐 준다. 사전을 찾아보는 것 자체가 공부이거늘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기 힘든 내가 문제였다. 아이들은 독립적인 편인데 엄마인 내가 스스로 독립을 시킬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어리다고만 보지 말고, 그 나이에 알맞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존중해 줄 것이라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무조건 맞춰주고, 들어주는 부모만이 좋은 부모는 아니다.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한 '친구같이 자상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요구사항앞에 모든 것을 수용하고 허용하는 나약한 엄마가 아닌지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단호하고, 단단한 육아를 하리라 다짐해 본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라는 법이다. 내 아이를 한발 짝 뒤에서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