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이야기 - 언어와 사고 (1)

김지씨의 수업일기 (5) - 언매 첫번째 시간 (2025/2학기)

by 국어교사 김지씨

'언어와 매체' 과목 수업은 말 그대로 크게 '언어'와 '매체' 부문으로 나뉜다. 그래서 언어와 매체의 정의나 다양한 특성 등을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이해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입시의 왕국인 이 나라에서 이런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 과목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문법'이다. 수능에서 난이도 높게 - 그 놈의 변별력을 보장할 수 있게 - 출제될 수 있는 영역으로 문법은 꽤 매력적이다. 교사들이 작정하고 덤벼들면 학생들을 깔끔하게 줄 세우기 수월한 까다로운 내용들이 곳곳에 암초처럼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표준점수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비교적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수능 선택과목으로 '언어와 매체'를 고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입시를 잘 모르는 분들은 무슨 전문용어 느낌이 들 것 같은데 어차피 2년 후면 이것도 옛날 이야기가 되니 몰라도 된다. 이게 바로 한국 입시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최대한 논란을 배제하고 규범 문법에 가깝도록 설정된 학교 문법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이런저런 해석의 여지에 휘둘리지 않고 나름의 지적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임용고사를 열심히 준비하고 막 교직에 들어온 선생님들 중에는 문법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사실 나는 정해진 무언가를 쫙 늘어놓듯 가르치고, 그걸 그대로 평가하는 것이 그렇게 재밌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내 수업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겠지만, 소위 '딱딱 떨어진다'라는 이유로 문법을 선호하는 선생님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물론 나도 문법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기존의 수업 형태와는 달리 학교 문법이 얼마나 엉성한 체계인가를 다양한 반례들 - 예를 들어 서술격 조사 '-이다' 같은 돌연변이들 - 을 통해 토론 혹은 설득하는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결국 학생들에게 '샘은 문법 수업이랑 안 맞는 것 같아요'라는 불만 가득한 평가를 받고 말았다. (할 때는 재밌다고 그래놓고...ㅠㅠ) 사람이 하루 아침에 성격을 바꾸기는 어렵기에 또 다른 문법 수업에서도 희한한 내용 - 그때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심취하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원본 그대로 한 달 동안 수업했다 - 으로 학생들, 심지어 목동 학원가 강사들에게 '미친 사람' 같다는 극찬을 받기까지 했다.

언어와 매체를 맡은 이번에도 그런 광기 어린 수업을 할 수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다행히도 올해는 마침 같이 수업하는 선생님들이 4시간 중에 3시간을 맡아 꼼꼼하게 문법을 가르쳐주시기로 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나에게는 '니 마음대로 하세요' 혹은 '너나 잘 하세요'라는 심정으로 1시간을 선뜻 내어주며 언어 혹은 매체와 관련된 심층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결국 1시간을 받아든 나는 중간고사까지는 언어와 관련된 (나만) 재밌는 이야기를, 기말고사까지는 매체와 관련된 (또 나만) 재밌는 이야기를 수업의 바탕글로 삼아 보기로 했다. 여기서는 그렇게 이미 마무리된 2학기 중간고사까지의 수업 내용을 조금 풀어보려고 한다.

중간고사까지의 주제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언어란 무엇인가?'였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언어는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첫 수업은 '숏박스' 영상 하나로 시작했다. '대표님 에바싸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영상은 영어 이름을 쓰고, 대표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격의 없이 영어 반, 한국어 반으로 소통하는 한 스타트업 회사의 모습을 과장하여 묘사한 영상이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대표에게 '에바싸지 마세요'라는 은어에 가까운 비속어를 날리고, '홈택스'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름을 짓게 된 영상 속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은 점점 수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영상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왜 이런 말투와 행동을 하는 것일까?'라고. 학생들은 웬만해서는 손을 들지 않기 때문에 아무나 시켰다. 그것도 번호를 부르면 안된다고 해서 눈에 띄는 대로 시켜보았더니 이러저러한 대답이 나왔다. 이 대답들은 두 가지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원래 영어를 많이 쓰는 환경이어서 자연스럽게 그런 말투가 되었다' 거나 '권위적인 업무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 직책을 안 부르고, 영어 이름을 격의없이 부르는 것이다'라는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여기에서 나는 이 두 가지 답변이 언어와 관련된 중요한 두 가지 관점을 내재하고 있다며 각각의 답을 조금 더 꼼꼼하게 구분해 들어갔다. 하나는 언어는 사람들의 삶이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관점이고, 또 하나는 언어 사용 자체가 힘을 가지고 있어서 환경이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관점이다. 뭐 아마 내 나이와 비슷한 또래들, 즉 5차 교육과정에서 국어를 배운 이들은 국정교과서에 실린 훔볼트의 '에르곤'과 '에네르게이아' 개념을 통해 이 구분이 익숙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맞는 생각인지를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간단할 수 있다. '두 가지 다 일리가 있다' 혹은 '언어와 인간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는 뜨뜻미지근한 답변을 하면 자연스럽게 다음 내용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즐겁지 않다. '중간은 없다' 혹은 '양비/양시는 없다'고 정하고 학생들을 약간 다그쳤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되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들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그러면 수업이 조금은 흥미로워진다. 특히 '언어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별다른 고민없이 받아들여, 좋은 말을 해주면 양파가 잘 자란다는 둥,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둥 하는 '관습적 부조리'를 믿었던 세계관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언어의 힘에 대한 무제한적 신뢰를 보냈던 하나의 가설인 '사피어-워프 가설'로 수업의 방향을 끌고 간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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