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되는 순간

존 윌리엄스, <스토너> 일부 발췌 - 책을 거의 넘기자 마자 만난 구절

by 국어교사 김지씨

슬론은 앞으로 몸을 기울여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스토너는 길고 갸름한 슬론의 얼굴에 난 주름들이 조금 엷어지고, 상대를 조롱하는 듯한 건조한 목소리가 부드럽고 무방비하게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르겠나, 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갑자기 슬론이 아주 멀게 보였다. 연구실의 벽들도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스토너는 자신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슬론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존 윌리엄스, <스토너>, p.32-33


나이를 먹고, 한 학교에 오래 머물면서 동료 교사들을 평가하는 일들이 종종 생긴다. 물론 술자리를 비롯하여 일상적인 대화, 흔히 말하는 뒷담에 가까운 평가들은 당연히 수시로 이루어진다. 그럴 때 나는 교사로서 한 가지 중요한 금기를 생각하며, 타인을 유심히 관찰하고, 스스로를 단속한다. 그 금기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으로 학생에 대한 평가를 절대로 앞세우지 말 것'이다.

일단 어떤 학생들이 나와 관계를 맺게 될 지를 내가 결정할 수 없고, 결정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상 나랑 잘 맞지 않는 학생을 만날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 수록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삶을 사는 학생들과 만날 확률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그런 상황에서 나와 잘 맞지 않는,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 이상하기까지 한 학생들의 모습은 내 행동에 대한 좋은 핑계 거리가 된다.

이렇게 핑계를 대다 보면 교사에게 더 이상의 발전을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난 이런 금기를 지금도 마음 속에 새긴다. 주변에 이런 금기를 깨는, 혹은 그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교사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학생들에 대한 평가를 무의식적으로 내리기도 하고 사회적 관계를 위해 억지로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지만, 학생들을 내세워 자신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변명하는 교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반대로 내가 다른 교사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때의 기준 또한 생각보다 간단하다. '가르칠 학생과 가르칠 칠 내용을 사랑하는 교사'이다. 내가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가장 개떡같은 충고라고 생각했던 말이 '애들은 처음부터 잘 해주면 안 돼'였다. 그런 충고를 하는 사람치고 나중에 잘 해주는 사람을 보질 못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은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 아닐까 싶다. 물론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중요하겠지만, 그 자체가 없는 사람은 좋은 교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업무를 깔끔하게 하는 사람? 글쎄다. 개인적으로 교사의 좋은 미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협업이 중심인 학교 사회에서 자기만 일처리를 깔끔하게 빨리 하는 과정에는 일정 부분 타인의 양보나 희생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깔끔한 일처리를 위해 타인을 공공연하게 압박한다면 최악의 동료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중에서 '가르칠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는 - 사랑의 방식이 여러 가지이기는 하지만 - 그래도 꽤나 볼 수 있는 것 같다. 처음 만나는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그런 선생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애정과 교사로서의 열정을 헷갈리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좋은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의 '가르칠 내용'을 사랑하는 교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이 '가르칠 내용'에 대한 사랑도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배웠던, 그리고 지금 배우고 있는 한 줌의 지식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것을 절대로 놓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사랑보다는 독선과 아집에 가까울 것이다. 가르칠 학생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자신이 가르칠 내용에 아낌없는 사랑을 주면서 끊임없이 발전시켜가는 교사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참 희귀한 일이다. 아... 그런데 이건 나에게도 똑같이 아프게 돌아온다.

거의 매년 기간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학교로 합류한 선생님들을 본다. 내 눈에 들보는 못 봐도 남들의 티는 잘 볼 수 있는 경지가 되다보니(^^), 그 선생님들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평가를 하게 된다. 그럴 때 가끔 학생들과 자신의 교과를 사랑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맨날 날카로운 지성을 활용하여 어떻게든 자신의 일거리를 줄이고, 학교 밖의 시간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는 선생님들에 지쳐 있을 때, 이런 새로운 만남은 좋은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가끔 그런 선생님들이 실수를 저질러도 선배 교사로서 대신 욕을 먹어주고 싶은 기분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나?'라는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완전히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한때 어떻게든 좋은 수업자료를 만들어보려고 발버둥쳤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마 나에게 누군가가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라고 말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지 모르겠다. 일종의 관성이 나를 이끌고 가고 있지는 않은지... 소설 속 주인공의 행보가 아직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벌써부터 이런 구절들이 기대감을 점점 부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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