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데드 리뎀션(Red Dead Redemption) 1, 2 감상문
게임 제목부터 거창했다. '붉은 죽음의 구원'이라니... <레드 데드 리뎀션(Red Dead Redemption)>(줄여서 <레데리>)이라고 최근에 빠져든 게임이다. 원래 게임을 그렇게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우연히 유튜브에서 전체 게임 스토리를 요약해서 제공해주는 영상을 보고, 왠지 재밌을 것 같아 다운받아 조금씩(^^;;) 해보고 있다. 전에 코로나로 격리되었을 때 <문명6>을 다운받아 일주일을 7시간처럼 보낸 이후로 게임에 시간을 이렇게 많이 보내는 것은 참 오랜만이다.
게임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광활한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카우보이 시대의 무법자들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이 시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꽤 흥미를 갖고 있다. 다른 드라마나 영화는 눈길도 주지 않으시면서 유독 서부 영화만을 즐기셨던 아버지의 영향은 아닌 듯 하고, 아마도 영화 공부를 어설프게 할 때쯤 미국 웨스턴 무비들을 영화사의 흐름에 따라 쭉 살펴 보면서 역사적 배경이나 영화적 기법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이 영화들의 진면목을 나름대로 발견했다고 느꼈던 경험이 흥미의 주된 원인인 것 같다.
그때 본 영화 중에서 존 웨인과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라는 영화를 강력 추천하는데, 서부 영화 자체가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 제작된 영화로, 영화 내용도 무법(outlaw)의 시대가 끝나고 법치가 시작되는 교체기 상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상징성 짙은 영화였다. 희대의 악당 리버티 밸런스와 책상물림 야학선생 제임스 스튜어트 사이에 시비가 붙어 결투가 벌어질 때, 서부 영화의 아이콘이자 무법자의 상징인 존 웨인이 아무도 몰래 숨어 대신 악당을 해치웠지만, 그 사실을 숨긴 채 제임스 스튜어트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라는 후광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결국 이 사건으로 유명해진 제임스 스튜어트는 선거를 통해 지도자로 등장하게 되고, 서부에 폭력이 아닌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한 질서를 정착시키는 정치가로 우뚝 선다. 영화는 나중에는 주지사까지 올라가게 된 제임스 스튜어트가 진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였던 존 웨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여정에서 진실을 깨닫게 되는 구성으로 진행된다.
게임 시리즈의 첫번째 <레데리 1>도 영화와 비슷한 시기를 다룬 게임인 듯하다. 이 게임의 주인공은 이미 손을 씻고 은퇴한 전직 무법자 '존 마스턴'이다. 아직도 악명을 떨치고 있는 과거 동료들을 처치하기 위한 FBI의 전신 법무부 수사국(BOI)의 계략에 주인공이 말려들면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수사국의 요원들은 주인공의 가족을 납치한 뒤 옛 동료였던 악당들을 모두 해치워야 가족을 만날 수 있다고 협박하는데, 그들을 찾아 제거하는 과정이 이 게임의 주된 미션이 된다. 스포를 조금 하자면 미션을 모두 끝내고 가족과 재회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게임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주인공 또한 입막음을 위해 정부기관에 의해 살해당하고 결국 그 아들인 잭 마스턴이 책임자 '에드거 로스'를 찾아 죽이는 것으로 게임 스토리가 마무리된다. 제목을 따라 해석해보자면 존 마스턴에게는 '붉은 죽음'만이 마지막 구원이었던 셈이다.
이 시리즈 두 번째 <레데리 2>는 비교적 최근인 2018년에 출시되었는데, 일종의 프리퀄로 존 마스턴이 1편에서 죽였던 인물들과 함께 했던 과거 무법자의 시간들을 배경으로 게임이 구성된다. 그러니까 1편에서 존 마스턴이 죽였던 핵심 인물들이 2편의 주인공 혹은 중심 인물이 된다. 2편을 초반까지 한 입장에서 보았을 때 1편 주인공 존 마스턴은 약간 배신자 혹은 문제아 느낌으로 등장한다.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의 세평에 따르면 2편이 1편보다 훨씬 더 탁월한 게임으로 추앙받고 있는데, 1편을 끝내고 바로 이 게임에 뛰어든 초짜인 내가 봐도 화질이나 그래픽 수준, 게임의 구성 측면에서 한 단계 아니 두, 세 단계 뛰어난 게임인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막 챕터 1을 끝낸 상황이라 본격적인 분석은 커녕 스포도 못하겠다.
그런데 이 <레데리>는 'Rockstar'라는 회사에서 만든 게임 시리즈다. 이 회사의 대표작은 그 유명한 <Grand Theft Auto(GTA)>인데, <GTA>의 공간을 서부로 옮기면 그대로 <레데리>가 된다. 두 게임은 공통적으로 지독할 정도의 집착적 현실 모사와 상대적으로 높은 유저의 자유도로 널리 알려진 오픈 월드 게임이다. 실제로 현실을 최대로 구현한 장면들을 통해 그 세계에 들어간 느낌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으며, 그야말로 악당이 되어 내 목에 걸린 현상금을 올리며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도와가며 명예도를 높여 칭송받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는 열린 가능성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현실 세계의 교사로서 마음 깊이 자리잡은 도덕적 꺼림직함 때문에 처음에는 명예를 지켜가며 착한 사람처럼 게임을 진행했지만, 가끔 반다나(얼굴을 가리는 수건)를 쓰고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게임에 많이 익숙해진 뒤에는 범죄에 약간 무뎌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이런 식으로 게임을 하며 특히 많이 떠올린 것은 드라마 <웨스트 월드>였다. 이 게임의 실사판, 그야말로 현실에 이 게임을 적용한다면 바로 이 드라마가 될 것 같다. 2010년에 발매된 이 게임이 2016년에 나온 드라마에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드라마는 게임의 NPC들이 인공지능 로봇으로 등장하며, 이들이 의식을 가지고 인간에서 복수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 드라마를 먼저 본 나로서는 문득 게임 중에 말을 타면서 치고 지나갔거나, 도박에서 돈을 다 따버리거나, 심지어 권총 대결에서 죽여버렸던 NPC들이 지능을 가지고 복수하면 어떡하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유사했다고 할까? 아무튼 한 20년쯤 지나면 이런 실재 체험관들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직접 몸을 써야하는 <웨스트월드> 식이라기보다 집에 앉아서 온몸에 센서를 부착하고 감각을 4D로 체험할 수 있도록 게임이 발전하는 방식이 더 유력하겠지만...
아무튼 게임을 즐기면서 아내에게 게임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아니냐는 핀잔을 듣다보니, 스스로 성찰의 시간이 찾아 오곤 했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변명이랄까? 최근에 어디 강의를 갔다가 출판사 관계자분을 만났고, 그분이 고맙게도 책을 보내주셨는데 그 책은 제임스 폴 지, 조병영 역, <게임에서 배우는 학습원리>(사회평론아카데미)였다.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한 뒤 '게임에서도 학습원리를 찾을 수 있지, 있고 말고...'라는 얄팍한 심정으로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지만, 생각보다 충격적인 구절들이 팍팍 와 닿았다. 이 책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 의식부터 쑤욱 치고들어오는 느낌이었는데, 책은 '교실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한 아이들이 게임을 할 때는 왜 이렇게 적극적인가?'를 묻고 있었다.
비디오 게임을 하는 이들은 여섯 살 꼬마의 할아버지보다 실제로 '내용'을 더 잘 배운다. 비록 <문명(Sid Meire's Civilization)>과 같은 게임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실적 정보가 담겨있지만, 이 게임에서 배운 내용은 일반화된 학교 지식처럼 수동적으로 배우는 내용이 아니다. 비디오 게임을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플레이하면서 플레이어가 배우는 내용은 바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상황을 직접 경험해 봄으로써 게임이라는 복합양식적 공간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맥락화한다.' 또는 '상상으로 구축된 세계의 디자인과 현대 사회의 실제 및 가상의 사회적 관계와 정체성의 복잡다단한 디자인을 성찰한다.'와 같은 것이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이런 내용을 배우는 것은 사실 무척 유쾌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날의 학교가 비디오 게임과 경쟁하기 어려운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제임스 폴 지, 앞의 책, 80쪽
현재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학 수업을 생각해보자. 과학 수업에는 엄청나게 기술적이고, 개념적인 언어들이 사용된다. 일종의 외계어같이 보이는 개념어들 - 칼륨, 마그네슘, S파, P파 등등 - 을 이해하고, 그 개념어들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과학 수업이 요구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원리들을 현실화하여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체감하는 것까지가 교육 과정이 성취하기를 바라는 지점일 것이다. 국어 시간의 문법, 수학 시간의 공식 등등 이렇게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개념들도 마찬가지다. 이 개념들을 어떻게 제대로 체득하고, 개념 간의 관계를 이해하며,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 바로 학교가 학생들에게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교육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과정은 개념의 현실화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 것 같다. 언제나 개념 사이의 관계와 그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적용 수준에서 항상 멈춘다. 다시 말해서 개념 간의 관계를 세밀하게 묻는 시험 문제만 정확하게 풀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말이다. 그 개념들이 실제적인 지식으로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수학 왜 배워요? 문법 왜 배워요? 공식 왜 외워요?'라는 말들이 나온다.
그러면 현실화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지식 자체가 적용되는 과정을 깊이 고민하기보다, 그 지식을 묻는 문제를 맞춰서 얻는 점수가, 부르디외 식으로 말해 '상징자본'으로 등가교환된다. 시험 성적이라는 추상적 가치가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와 결정적으로 교환되는 방식으로 학교 지식이 현실화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수업 시간에 배운 개념 자체를 현실화시켜 활용하는 학습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심지어 과목이 '실과(實科)'였던 경우도 그렇다. 바느질을 실제로 잘하기보다는 바느질의 종류와 한땀 사이의 간격 차이를 정확하게 외우는 것이 더 큰 현실적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게임 속 튜토리얼에서 배운 개념적 지식은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적용된다. 심지어 그 지식을 제대로 숙지하느냐, 마느냐 혹은 그것을 얼마나 능숙하게 적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내 목숨이 좌우된다. - 물론 게임은 그 목숨조차 여러 번 부여한다. 상당히 교육적이게도. - 그래서 유저들은 게임 속 지식을 속속들이 흡수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요즘은 유튜브를 비롯하여 인터넷 공간에서 이 게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꿀팁들이 산재해 있고, 그것은 바로 게임 속 공간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유저들이 이런 지식을 그대로 두고 혼자서 게임을 즐기지는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 감각이 독특한 방식(^^)으로 발휘된다.
그렇다고 게임만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저자인 제임스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과연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원리라는 교육적 공간으로 학생들을 안내하는 교실이 초짜 유저들을 안내하는 게임의 튜토리얼 혹은 미션 성취 과정만큼의 치밀한 구성을 갖추고 있을까? 이런 것을 묻고 싶은 것이다. 내가 <레데리>를 하면서 느꼈지만 요즘 게임들은 튜토리얼조차 그것이 튜토리얼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스토리텔링을 짜임새있게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실은 그야말로 지식을 지위와 등가교환할 수 있다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질서를 강조하는 방식 외에 다른 접근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 또한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이 국어 교사로서 수업으로 끌고 들어오는 지식이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음을 최대한 인식시키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결국 학생들에게 결정적인 동기부여는 내가 낸 시험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식 자체의 현실적 가치를 체감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수업을 고민하는 교사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서열을 세우는 시험을 폐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많은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자극적인 소재를 최대한 활용해도 되며 엄청난 자본 또한 투여된 '게임'과, 교육적 목적이라는 규제와 시험 제도라는 꽉 짜여진 틀 안에서 저가의 예산으로 구성된 '수업'이 같은 효과를 내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수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게임에 중독된 한 국어교사는 또 습관적으로 그 안에서 수업을 어떻게 꾸려갈지 어설픈 고민을 하게 된다. 언제나 답은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