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흘리는 소설들

두 편의 소설 - 김숨, <국수>와 전춘화, <야버즈>

by 국어교사 김지씨

내가 대학 때 꽤 오랜 시간을 보냈던 하숙집은 학교 앞 한 식당 건물의 3층이었다. 그 하숙집은 식당 주인분이 하숙을 겸하고 있었다. 당시 한창 유행했던 한식부페 스타일의 식당이라 1층 식당으로 내려가서 언제든 밥을 퍼먹을 수 있었고, 방 자체의 시설이 부실하며 고시원만큼 크기가 작은 대신 주변에 비해 하숙비가 저렴했다. 이 두 가지 장점에 매혹되었던 나는 심지어 방을 옮겨가며 그 하숙집에서 거의 3년을 지냈던 것 같다. 물론 학기초만 되면 과 전체가 다 들어갈만큼 큰 2층 식당 홀에서 개강총회 및 각종 모임들이 매일매일 벌어져 꽤 괴롭기는 했지만, 그 돈에 들어갈 수 있는 하숙집이 어디있냐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그 모임의 일원이 아니었던가라는 일종의 연대의식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곤 했다.


하숙집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커서 3층 말고도 반대편 한옥 건물 1층까지 하숙을 치고 있었다. 밥이야 언제든 식당에서 주면 되니 방만 있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하숙도 새끼를 친다는 느낌이랄까? 나보다 먼저 이 하숙집에 있던 선배도 하나 있었는데, 식당이다보니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분위기가 되면서 그 선배 방이나 내 방을 거리낌없이 드나드는 동기나 후배들이 꽤 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하숙집이 우리과에서 굉장히 친숙한 장소가 되었고, 하숙집을 고민하던 동기나 후배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게 되었다.


대부분은 군대를 가는 과정에서 하숙집을 빠져나갔지만 나는 대학원을 가겠다고 깝죽대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세 학번 후배들까지 같은 하숙집에 기거하게 되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하숙집을 나가지 않아 왕고참 대접을 받으면서 나름 하숙집 스위트룸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때쯤에는 오히려 학원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11시쯤 자는 후배들을 불러내 술을 먹이는 못된 선배가 되어 버렸다. 그때 괴롭힘을 당했던 세 학번 후배들이 장난삼아 그 식당의 이름을 따서 나를 'OO 대부'라고 부르기도 했다.


좀 에둘러 왔지만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세 학번 후배들 이야기이다. 이 후배들을 지켜보니 학생회, 학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선배들이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핑계로 멀리 했던 학과 공부 또한 열심히 하는 후배들이었다. 심지어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허세로 하숙집 세미나를 조직해서 해보자고 던졌더니, 그걸 받아서 같이 책 읽고 토론도 했던 그런 훌륭한 친구들이었다. 졸업 후에는 당당하게 공립 시험에 합격해서 경기도 지역에서 좋은 국어 교사가 되어 수업 외에도 각종 교사 모임을 중심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이 친구들과 함께 뜻을 모은 멋진 몇몇 선생님들이 모여 신박한 소설집을 출간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간에 학생들을 만나면서 소설 수업을 진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권할 만한 최근 소설들을 주제별로 엮어 책을 낸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소설집이 깨나 있지만, 이 소설집의 무게감은 남달랐다. 아마 꽤 히트를 쳤기 때문에 제목을 아는 분들도 있을 텐데, 그 책은 <땀 흘리는 소설>이다. 노동과 일에 대한 소중함을 다룬 소설들을 담은 이 책을 필두로 - 필두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내가 제일 처음 본 게 이 책이어서 그렇게 느꼈다. - <기억하는 소설>, <끌어 안는 소설>, <숨 쉬는 소설>, <눈 맞추는 소설> 등의 소설집이 계속 출간된 것으로 안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현대 소설을 대학원에서 공부했었지만, 제대 이후 교사가 된 이후 최근 소설에 대한 감각이 상당히 무뎌져 김영하, 은희경 이후의 소설에 대해 감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던 나에게 이런 기획들은 상당히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감을 찾겠답시고 2015~6년 연간에 기존의 각종 문학상 수상작과 해당 작가를 찾고 정리해서 의무감으로 작품집들을 사서 읽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 속에서 학생들에게 실감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별할 정도의 역량은 없었기에, 이 친구들의 시도와 노력에 감탄하게 되었다. 당연히 요 책들에 실린 소설을 수업에 잘 써먹기도 했다.


그래도 요즘은 꽤 최근 소설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다양한 작품을 찾아 보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다. 같이 수업하는 선생님들도 김애란, 황정은, 최은영, 정세랑 같은 최근 작가 작품들을 읽고 수업의 바탕글로 활용하고 있다. 감이 한창 떨어졌을 때에는 성석제, 김소진 같은 90년대 작가들이 나에게는 그나마 최근 작가였으니, 이 정도면 나로서는 최최근 작가인 셈이라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예를 들자면 김영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나 성석제, <새가 되었네> 등을 대신해 김애란, <입동>이나 최은영, <씬짜오 씬짜오> 같은 작품들이 수업에 출몰하게 되었다. 이렇게 수업을 하다보니 바탕글과 학생들의 시간적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반응이 더 좋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러면서 최근 문학 수업 혹은 언어와 매체 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작품들 중에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소설 하나를 찾기도 했다. 2024년에 '언어와 매체' 수업을 하면서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매체자료를 살펴보자는 취지로 '국수' 혹은 '누들'을 주제로 다룬 적이 있다. 그래서 현대시 백석의 <국수>, 영화 임순례의 <리틀 포레스트>, 예능프로그램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속 '국수'의 이미지와 의미를 비교 분석했다. 각각의 자료를 감상하면서 작품 속에서 '국수'가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 모둠토의를 통해 찾아가는 수업이었다. 백석의 '국수'는 먼 과거부터 전해지던 공동체와 연관된 뜨끈한 무엇이었고, <리틀 포레스트>의 '꽃파스타'는 싱그러운 봄을 느낄 수 있는 상큼한 이미지였으며,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의 '유포멘'은 중국의 깊이 있는 음식문화를 체감할 수 있는 독특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현대소설 자료로 제시한 작품이 김숨, <국수>였는데, 이 작품은 유독 학생들에게 묵직하게 다가갔다. 요약하자면 기구한 운명으로 자신과 아무런 혈연도 없는 아이를 키운 한 여인과 그 여인에게 키워진 딸의 미묘하고 슬픈 관계를 섬세하게 다룬 작품으로, 그 두 사람의 관계가 '국수'라는 소재로 묘하게 엉켜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수를 잘게 끊어버리는 행위'가 새어머니로 들어 온 여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거부'의 의미에서, 시간이 지난 후 식도암에 걸린 어머니가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돌봄'의 의미로 바뀌는 장면이 강력한 인상으로 남았다. 또한 '국수'가 인간의 수명과 연관된다는 관습과 미묘하게 겹치면서, '죽음'의 이미지까지 결부되는 소설의 구성을 통해 이야기가 가진 힘 또한 수업 시간에 잘 느낄 수 있었다.


상식적인 이야기겠지만 인간이 매일매일 섭취하는 음식물에는 음식물이 지닌 그 수많은 맛만큼, 그것을 먹는 이들의 삶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문득 음식과 관련된 소설들을 묶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생각에 박차를 가한 또 하나의 소설이 전춘화의 <야버즈>였다. 연변 출신 조선족 작가로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조선족이 살아가는 방식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야버즈', 즉 연변에서 즐겨 먹는 오리 목구이 요리를 중심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갑자기 아이를 갖게 된 주인공이 양꼬치나 꿔바로우처럼 한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못해 연변 요리 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는 '야버즈'를 집착적으로 찾아 먹는 모습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 온전히 동화되지 못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상징적으로 풀어내면서 오늘날 한국 사회가 가진 문제들을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새긴다.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문학 수업을 구성했던 나로서는 눈에 확 들어오는 작품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니 문득 이런 작품들을 엮어 하나의 소설집을 만들면 제목을 '침 흘리는 소설'로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그 후배들 중 하나에게 연락을 건넸다. 기획 의도와 함께 두 작품을 추천하면서 동시에 생각한 제목 또한 운띄워 보았다. 후배는 기획이 가진 의미를 깊이 존중했지만, 40대 아재 감수성에서 나온 제목의 천박함에 대해서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답해주었다. 제목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이 기획에 어울릴 만한 소설들을 좀 더 찾아봐야 겠다는 의지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보면 최근 작가가 아니라도 추천할 만한 소설은 충분한 것 같기도 하다. 좀 더 찾게 되면 또 수업에 써먹어야지라는 생각에 오히려 내가 '추릅'하고 '침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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