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라 May 11. 2020

그럼에도 여행에서 깨달은 게 있다면


종종 사람들이 물어본다.


"여행에서.. 무얼 얻으셨어요?"

만약 좀 친하거나 편한 사람이면 그저 하하하 웃는다.


'여행에서 무얼 얻는다니 그저 즐길 뿐인걸.'


만약 자신이 축구를 좋아한다, 아니면 온라인 게임을 좋아한다고 치자. 게임을 하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지 여기서 무얼 얻거나 하지 않는다. 물론 세상의 여행에 대한 이미지는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고, 변화의 계기가 되고.... 나는 이러한 류를 목적주의라고 부른다. 무엇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행동을 한다. 반대로 난 목적 따윈 없이 그저 즐기기 위해서 여행을 할 뿐이다.


만약 2천만원이 있는데 이 돈을 자동차 사는 데 쓰거나, 골프 장비를 마련하고 골프장 가는데 쓰거나, 나처럼 한 해 여행을 다니며 쓰는 것 사이에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쓴 것일 뿐, 별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행을 다니면 많은 감정들이 돋아나고, 분명 변화와 다른 사고방식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것들은 즐거운 과정의 부산물이지, 여행의 결과는 (나에게는)아니다.


성과, 꿈, 고소득... 세속의 목적 따위에 질렸다. 다른 가치이긴 하지만 여행에서도 어떤 목적을 갖고 싶진 않다. 얼마나 잘 즐겼냐가 중요하지 무엇을 얻는가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면 나의 삶 전체에서 영향을 줄 만한 깨달음이 있다.



여행의 순간만큼 현재의 순간도 소중한 것임을.


20대 후반에 첫 여행을 시작한 후 어느 덧 8년이 지났다. 나는 계속 여행을 다녔고, 일과 여행을 반복했다. 여행의 돈을 벌기위해 여전히 불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했고, 통장의 잔고라던가 집의 크기에 변화는 없다(오히려 줄었다..흑). 반면 친구들은 회사에서 진급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문득 친구들의 생활을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가족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모습을 얼마나 숭고한가? 나 같은 한량은 일 힘들다고 반년, 일년만 일하고 훌렁 비행기 타고 한국을 떠났다. 배낭에 텐트들고 문명이 희미한 곳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며 행복해했다. 나 혼자만 행복하고 잘 살았다. 그러나 문든 주변을 보니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나는 나 밖에 몰랐다. 가진게 없다고, 부족함이 많아서, 여러 핑계로 나만을 챙겼다.


첫 인도여행 때 상인의 바가지나 호객이 지긋지긋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지긋지긋하다. 나는 특히 흥정같은 걸 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 어처구니 없는 가격에 흥정이 필수였던 인도는 내게 참 피곤했다. 네팔 카트만두는 그 보단 낫고, 바가지도 양심적(?)이다. 보통 카트만두에서 택시를 타면 외국인은 100~200루피를 더 부르는 게 관례이다. 타멜거리에는 노점상들이 좀 있는데 그들의 호객도 귀찮지 않다. 택시를 타면 깍지 않고 100루피가 더 비싼 걸 알면서도 낸다. 호객꾼들도, 택시 기사도 자신과 가족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저 나이라면 아마 결혼했을텐데, 그럼 자녀도 있겠지. 이렇게 벌어 어떻게 살까? 하루 벌어 하루 생활비를 해결하기에 허투루 할 수 없다. 다 나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만들고 양육하는 일은 나같은 여행 한량의 생활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여행자의 삶을 부러워하지 말길. 그대들은 이미 여행자의 생활보다 의미있고 훌륭한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이니까.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 뿐
- 인생,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갠지스강의 보트를 타며. 인도, 2012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반복해서 꾸는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