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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라 Feb 10. 2017

17 평온이 깃드는 곳, 맥그로드 간즈

여행, 일, 여행을 반복하는 30대의 사진에세이.


  만약 맥그로드 간즈를 가지 않았다면, 인도는 그저 문화적으로 다양한 여행자의 괜찮은 나라 정도 였을 것이다. 타지마할의 압도적인 건축미, 시간을 500년 전으로 되돌리는 메헤랑가르성, 첫 사막 낙타 투어 등 다른 나라와는 차별화된 특색있는 여행지다. 반면 뉴델리는 끊이지 않는 차와 릭샤의 경적 소음, 거리의 소똥 냄새, 혼을 털어놓는 호객으로 최악의 도시로 남아있다. 45도까지 오르는 바라나시의 낮 기온은 나를 길가에 널부러져 있는 개처럼 만들었다. 이런 경험들을 섞으면 제로썸이 되어 그저 괜찮은 여행지로 남았을 것이다. 맥그로드 간즈를 제외했다면.


  암리차르에서 낡은 버스를 타고 8시간 걸려 밤 12시 맥그로드 간즈에 도착했다. 대충 숙소를 잡고 다음날 오전 마을을 둘러보았다. 해발 1800m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오른쪽으로 히말라야 산맥을 기대고 있다. 30분만 걸어도 마을을 다 둘러볼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차도도 없다. 사람만이 다니는 보행길이 전부이다. 그러기에 마을 중심에는 자동차도 릭샤도 별로 없다.  인도 상인들도 없어 호객질 없이 거리를 다닐 수 있다는게 어색할 정도다. 귀가 평온하다. 뉴델리의 경적 소리와 혼을 털어놓는 호객에서 자유로워졌다. 소가 없기에 소똥도 없고, 골목은 깨끗하다. 덩치 큰 개가 많긴하지만 하루종일 누워있어 방해되거나 위협적이지 않다.  날씨는 낮에는 선선, 아침·저녁에는 조금 쌀쌀하다. 공기좋고, 조용하고, 날씨 좋고, 물가도 싼데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를 끌어들인 가장 큰 매력은 음식이었다. 처음 마을에 도착하고 골목을 좀 돌아다니다 웨스턴 스타일에 식당에 들어갔다. ‘닉’이란 이름을 가진 식당이었는데, 채식 전문 식당이다. 아무 피자나 시켰다. 음식이 나오고 피자를 한 입 문 순간, 맛있다! 치즈맛이 다르다. 한국에서 먹던 모짜렐라 치즈와는 다르다. 기존의 치즈가 쫀득하고 오래씹어야 한다면, 이 치즈는 입안에서 조금씩 사르르 녹는다. 토마토 소스는 시판 소스처럼 느끼하거나 짠 맛이 강하지 않고, 조금 싱거운 듯 하지만 은은한 달달함을 느끼게한다. 이후에도 닉레스토랑을 여러번 방문했다. 서양 음식만이 아니다. 이곳은 티벳 망명지이기 때문에 티벳 문화와 음식이 흔히 있다. 뗌뚝은 마치 칼국수와 유사하고, 모모는 한국 만두 그 자체이다. 인도의 커리와 서양 음식에 질려있을 때, 티벳 음식은 고향의 맛을 연상시킨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음식들이 한 끼 사천원도 안 한 다는 것! 한국 식당도 두 군데 있으며, 일본, 중국 음식점도 있다. 


  인도의 많은 도시에서는 술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주세법상 면허제이기 때문에 허가받은 가게만이 술을 구입할 수 있다. 즉, 마트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 뉴델리, 바라나시에서는 알콜샵을 찾다가 길을 잃고 빈손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작은 마을에 알콜샵이 두 군데나 있다. 심지어 칼스버그 같은 외국 브랜드 맥주도 있다. 인도 맥주 킹피셔는 소맥같은 맛에 질려 먹고 싶지 않았다. 현지 양주 맥도웰(500ml, 가격 오천원)과 맥주를 잔뜩사서 숙소의 옥상에 올라갔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다행히 혼자는 아니다. 동행했던 동네친구 Y군과 자이살메르에서 만났던 여자 동생 S와 두 명더 있었다. S와 내 친구는 어디서 케익을 구해왔다. ‘뭘 이런걸 다….’ 이국에서 듣는 생일 축하 노래라니. 생일 따윈 의미두진 않지만, 해외에서 맞는 첫 생일, 쓸쓸하진 않았다. 늦은밤, 하늘의 별빛 아래, 히말라야 산맥의 어느 한자락에서 좋은 사람들과 한 잔 하는 것만으로 무엇도 필요치 않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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