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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라 Feb 13. 2017

18 그냥 문득 가슴이 따뜻해져.

여행, 일, 여행을 반복하는 30대의 사진에세이.

쿠스코, 페루. 2016


그냥 문득 가슴이 따뜻해져. 


  필리핀 산호세 델몬테에서 마닐라로 가는 버스 안 이었다. 한국의 70~80년대에 있을 법한 시내버스의 목재 의자에 앉아 창 밖을 바라봤다. 버스 밖 오른쪽 풍경은 재래식 시장으로 사람들로 가득차다. 정육점에는 껍질이 벗겨져 있는 닭, 염소 등이 거꾸로 매달려 있고, 입구 없이 통째로 열려있는 식당에는 사람들이 밥을 먹고 오간다. 마치 90년대 청량리 시장의 모습같다. 10차선 도로의 반대편에는 SM몰이라는 3층 건물의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백화점 입구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보인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매우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난 싫어한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다행이다. 


  창 밖 사람들의 풍경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그리고 SM몰을 지날 쯤이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가슴이 벅차오른다. ‘뭐지?’ 창 밖의 멋진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닌데, 멋진 곳에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유도 없이 마음이 따뜻해진다. 행복의 바람이 내게 들어와 세포 하나하나 정화해주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은 여행 중 가끔 일어난다. 


  페루 쿠스코 광장의 의자에 앉아있을 때였다. 나의 마음에, 정신에 산들바람이 분다. 아무 정황없이 벅차오르는 이 감정은 마치 다른 차원에 있는 내가 보내주는 신호같다. 원래 이게 너의 본래적 감정이라고. 지금 가지고 있는 불안, 어둠, 고독은 오염된 것이라고. 


  하지만 이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약 2~3분 정도 내 마음속 환희의 파도를 몰아치고 사라진다.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여운이 남는 것처럼 마음의 어두운 때들이 정화되었다. 씻겨진 마음에는 하나의 감정만이 남아있다. 행복하다. 살아있음에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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