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라 Feb 17. 2017

22 버스 추락의 기억

여행, 일, 여행을 반복하는 30대의 사진에세이.

필리핀 바기오에서 마닐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원래 1시 출발 10시 도착 버스였지만 연착으로 인해 4시에 출발하여 새벽 1시에 도착 예정이었다. 버스에서 나는 곤히 잠들었다. …    

얼마나 잠들었을까? 나는 쿵하는 소리에 정신이 번뜩깻다.


‘쿵!’, ‘끼이이익….’     

버스는 가드레일을 박고 난간 밖으로 추락하는 중이었다. 

‘벨트! 벨트!’ 필리핀 버스에 안전벨트 따위는 없다. 

버스가 기울어져 넘어가면서 순간 몸은 무중력 상태가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중력 상태, 그리고 이어진 엄청난 공포. 

버스가 넘어져가는 그 찰나의 순간, 머릿속은 온갖 생각이 가득했다. 

가장 먼저 ‘아 이제 끝이구나. 이제 겨우 30살인데, 아직 못 해본게 많은데 이건 아니잖아….’ 

‘여긴 해발 몇 미터 되는 지점이고 얼마나 추락할까? 엄청 아프겠지. 고통스럽게 죽는 건 싫은데….’ 

'무서워. 너무 무서워. 죽기 싫어 흑흑….'


심장은 마구 요동친다. 


순간의 완전한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귀가 열렸다. 

‘꺄아아아아악…’ 50여명이 탄 버스는 순간 아비규환의 상태가 되었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였다. 

단순히 소리지르는 비명이 아닌, 비명에서 혼의 절규가 나의 귀로 들어와 머리와 가슴을 움켜쥐었다.

 50여명이 폐쇄된 작은 공간에서 죽음의 목전에서 지르는 절규, 

무중력 상태에서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절규는 버스 안 구석구석을 감싸고 있었다. 

비명소리라도 없다면 공포가 덜 하겠건만, 

그렇다고 ‘거 좀 조용히 하쇼. 소리지르니까 더 무섭잖아요!’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쿵’ 추락은 끝났다. 다행히 아주 높은 곳은 아니었나보다. 그러나 공포는 여전하다. 

‘지금 절벽의 난간에 걸쳐있는 상태여서 다시 굴러떨어지면 어쩌지?’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기에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없다. 

살면서 그렇게 심장이 빠르게 뛴 적은 처음이다. 그리고 그렇게 심한 공포를 느낀 적도 처음이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추락사고를 내가 당하는구나. 버스가 데굴데굴 떨어지면서 죽기전까지 엄청 아플텐데, 종교가 없는 나에게 지금이라도 신을 외친다면 사후 세계가 열릴까? 우리 부모님은 어쩌지?’ 

죽음 앞에서는 참 많은 생각들이 든다. 


추락 후 비명소리는 멈췄지만 곧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차다. 사람들이 엉엉 운다. 

흡사 장례식 화장 직전의 울음소리와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황 상태가 왔다. 

‘쾅, 쨍그랑’ 버스의 승무원이 비상 망치로 창을 깨고 먼저 나갔다. 

그가 랜턴으로 밖을 비추었을 때,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절벽 난간에 걸쳐있는 것이 아닌 도랑에 빠져있는 상태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살았다. 이건 무슨 임종체험도 아니고 너무 무서웠다. 


이후 응급차가 와서 몇명을 후송해갔다. 운전기사가 가드레일을 받고 브레이크를 밝아 떨어지면서 충격은 크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도 왔다. 들리는 얘기로는 아마도 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추정된다. 하필 비도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 따윈 없다. 사고 현장에서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버스 회사에서 보낸 후속 버스를 타고 다시 마닐라로 향하였다.


그 이후로 난 비행기 공포증이 생겼다. 지금도 여행은 설레지만 비행기 타는게 무섭다. 그 기억 때문에...


작가의 이전글 20 편도티켓의 로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