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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라 Feb 17. 2017

24 여행의 바다에서 표류하다

여행, 일, 여행을 반복하는 30대의 사진에세이.

아유타야 유적,  태국. 2015

  SNS를 통해 여행자들의 세계여행 일상을 보면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특히 첫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잘 돌아다니는 모습이 그렇다. 그런 모습을 보자면 난 첫 여행 때 왜 그리 지질했었나 하고 웃음이 난다. 한 때 여행의 바다에서 표류한 적이 있었다.  


첫 여행은 친구와 동행했었는데 그 친구는 2개월 정도 지나고 푸켓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푸켓에 남겨졌다. 혼자다니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원래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가장 큰 문제는 이왕 나온거 유명한 곳은 다 돌아다녀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나는 해변, 바다를 안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꼬사무이, 꼬팡안, 꼬따오를 점찍기하듯 방문하였다. 패착이었다.


혼자가 되고 나서 이동한 곳은 태국 꼬사무이 섬이었다. 

버스와 배를 타고 밤 8시 쯤 도착한 그곳은 관광화된 모습이 푸켓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메인 스트리트는 서양의 팝 사운드가 흘러나오고 대형 TV에는 영국 축구 경기를 중계한다. 

길거리에는 맛깔난 노점 음식이 즐비하고 거리엔 온 통 여행객들 뿐이다. 

이미 이와 같은 분위기는 푸켓에서 일주일이나 있었기에 어떠한 매력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커플, 가족 동반 여행자들이 대부분이었기에 혼자라는 고독이 엄습하였다. 

그들의 다정한 모습, 웃음을 담고 있는 표정을 보면 나의 초라함은 커져만 갔다. 

한국에서 방구석에 홀로 있을 땐 외로움을 모르고 고독을 즐기지만, 

함께라는 세상에 나왔을 땐 그것은 자기 위로였고, 나는 외롭지 않다는 셀프 세뇌였다. 

이 외로움, 쓸쓸함과 함께할 수 없다. 난 아침도 먹지 않고 다음날 아침 섬을 떠났다. 


  떠나고 새로 도착한 곳도 섬이다. 관광지에서의 쓸쓸함으로부터 도망친 곳이 꼬팡안 섬이라니, 

이곳에서는 지질함이 더욱 가관이었다. 배에서 내린 후 먼저 숙소를 알아보았다. 

바닷가가 보이는 건물의 싱글룸은 2만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2만원이 뭐라고 고개를 절레 흔들며 

더 싼 곳을 찾아다녔다. 아름다운 섬에 머물며 쾌적한 환경에서 보내야지, 

돈 몇 푼 때문에 어두 칙칙한 곳은 선택했던 것이다. 방의 가격은 약 3천원. 

반지하 구조의 작은 방이었는데 햇빛도 반만 들어오고 환기도 반만 되는 듯하다. 

가뜩이나 습도가 높은 지역인데 반지하여서 인지 습도가 2배는 더 높게 느껴진다. 


코팡안은 관광지의 느낌보다는 한적한 배낭여행자의 휴양지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럼에도 제대로 여행을 즐긴 것도 아니다. 이 섬은 물속 생태계가 아름다워 다이빙으로 유명한 곳이다. 

3박 4일 오픈워터 과정이 약 30만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돈에 절박하거나, 

30만원이 없던 것도 아닌데, 고작 그 금액이 부담스러워 다이빙을 포기했었다.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짜게 여행하느라 진정 즐거운 것들은 놓친 것이다. 

이 섬도 결국 하루만 보내고 다음날 방콕으로 떠났다. 


이미 한 달을 지냈던 방콕으로 다시 돌아와 밍기적 시간을 보내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2박 3일간 떠났다. 원래는 씨엠립→프놈펜→라오스→베트남을 갈 계획이었으나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인지 흥이 나질 않았다. 방콕으로 돌아와 가장 빨리 출발하는 인천행 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태국에서 보낸 시간을 표류했다고 느끼는 이유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남들이 좋다는 곳을 다녀봤지만 내게 흥미를 끌리 없었다. 


나의 지난 과거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세상의 기준을 쫒았다. 

나는 세상과 부딪치며 상처받고, 힘들어도 경험속에서 성장해야만 했다. 

하지만 책상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취업 시험 준비를 하며 경험없는, 내면의 상처를 입었다. 

남은 건 열등감 뿐이었다. 시험은 결과적으로 잘 안됐고, 

20대의 청춘의 많은 부분이 책장 사이에 묻혀갔다. 결국 껍데기만 남았다. 

여행을 시작해서 다행이다. 처음엔 좀 표류했지만 괜찮다. 

이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소중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다. 

한번뿐인 생,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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