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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라 Feb 20. 2017

29 가이드북을 버리고 끌리는대로 걷기

여행, 일, 여행을 반복하는 30대의 사진에세이.

매거진 여행사진에 실었던 글을 소개한다. 

'바기오, 끌리는대로 걷기'


운무현상으로 마치 도시가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을 준다. 바기오, 필리핀 .2013


  필리핀의 여름 수도로 불리는 바기오는 해발 고도 1500m에 위치해 있어 연중 서늘한 기후로 인해 많은 현지인들이 휴가지로 찾고 있다.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으면 작은 마을일 것 같지만, 20세기 초 미국 식민지 시대에 개척된 도시로 기본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고 맛있는 음식, 볼거리도 많은 지역으로 유명하다. 대통령의 별장도 이 곳에 있다. 위의 사진은 해무 현상으로 인해 마을 아래 구름이 낀 모습인데 마치 마을이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야자키 하야오 가 왜 '하울의 성'을 모티브로 삼았는지 이해가 간다.  

sm몰에서 바라본 바기오 언덕마을

  필리핀의 백화점인 SM바기오의 4층 테라스에서는 번햄공원, 세션로드 등 바기오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경을 둘러보던 중 눈에 띄는 한 곳이 있다. '저 곳은 뭐지?' 과거 성남, 서울 숭인동 지역의 달동네와 비슷한 느낌이다. 또한 바기오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라는 점이 조금 끌렸다. 사실 달동네는 치안상 위험한 지역인데, 그 땐 그 생각을 못했다.  지중해 마을처럼 이쁜 집들도 아니지만 판자촌도 아니다. 호기심이 증폭한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멋진 곳을 발견하는 것 또한 바라지 않는다. 단지 끌린다. 일단 바기오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에 뷰가 좋을 것 같다. 또한 시골마을의 운치가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래 가보자!' 바기오의 예술마을인 탐아완 마을을 둘러본 후 택시를 잡아 '저 곳'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경사가 높다. 머리 위로는 전기줄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골목골목 슈퍼가 있다. 비탈길에 지어진 집들이 눈에 빼곡히 들어온다. 기사님이 "어디까지 갈까요?" 묻길래 끝까지 올라가 달라고 부탁했다. 올라가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직선으로 쭉 올라가는 것이 아닌 비탈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올라간다. 포장된 도로는 없고 1차선 도로인데 나름 차들도 다니고, 주차된 차도 몇 대 있고, 심지어 대중교통인 지프니도 다닌다.  택시가 멈추고 아저씨는 여기가 도로의 끝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택시비도 적게 나왔다. 100페소(약 2500원)을 지불하고 마을을 둘러본다.

  허름한 지역에 가면 왠지 슬럼 느낌이 날 것 같지만 이 곳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한적한 마을일 뿐이다. 동네에는 사람이 별로 없으며, 슈퍼같은 편의 시설도 없다. 낮시간에는 더워서인지 사람들은 집에 있는 것 같다. 

  길이 나있는대로 걷다보니 가장 높은 곳으로 왔고 시내의 반대편 풍경이 보였다. 구름은 낮게 깔려 산 머리에 둘러있고 고위 평탄면 지형에는 집과 논이 펼쳐있다. 

  바기오 시내가 보이는 쪽으로 향했다.  마을 곳곳에서 노는 사람들이 보인다. 체스를 두고있는 사람도 있고, 돈을 걸면서 마작을 두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공터에 가니 다트를 던지기도 하고 농구를 하는 모습도 있다. 

  드디어 마을 가장 높은 곳에서 시내를 볼 수 있는 장소에 왔다. 이 코너의 앞 장의 사진이 바로 그 모습이다. 시내는 고지대이면서 산으로 둘러쌓여 분지지형의 형태이다. 낮게 깔린 구름으로 인해 1500m이상의 높이에 있는 것 같다.    

  올라갈때에는 택시를 타고 왔지만 내려갈 때엔 택시를 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행이 올라올 때처럼 꼬불길이 아닌 수직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내려가는 길에 사진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자기들을 찍으라는 듯이 포즈를 취한다. 사진을 찍자 마냥 좋아하며 다시 자기들이 했던 놀이를 계속한다. 


  나름 애써 이 곳에 왔는데 여행자들이 볼만하거나 즐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풍경 뿐. 바기오에서 가장 높은 곳에 바라본 경치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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