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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만난 간디

런던 여행기 3

by 새벽강




빅벤으로 가는 길

기마병의 힘찬 발소리가 남아있는 호스가즈 로드를 지나 드디어 런던의 심장, 웨스트민스터로 향했다. 그 길목에서 우리는 영국 문화의 상징인 펍과 마주했다. '웨스트민스터 암즈(The Westminster Arms)'라는 오래된 펍(Pub) 간판 아래에 'Britain’s Oldest Brewer Since 1698'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펍임을 주장하는 곳들이 영국 곳곳에 있다고 하니, 이곳은 몇 백 년 역사를 지닌 오래된 펍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영국인들의 최애 스포츠인 축구. 경기장에 직접 가지 못할 경우엔 그들은 펍에서 보는 걸 좋아한다. 오로지 손흥민 선수의 토트넘 경기를 보기 위해 영국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있다. 그에 따르면 펍에서 볼 때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깃발이 꽂혀 있는지를 잘 보고 가야 한단다. 상대편 팀을 응원하는 펍에 가서 응원하다가 심지어 두들겨 맞을 수도 있다고. 영국인의 축구 사랑과 펍 문화를 알 수 있는 단면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오래된 영국의 감성을 느낀다.


거리에는 런던의 상징인 빨간 2층 버스들도 달리고 있다. 그런데 다른 색 버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내 눈에 들어온 분홍색 2층 버스에는 ‘The English Tea Bus’라고 적혀 있었다. 레스토랑처럼 꾸며진 실내에서 영국의 애프터눈티와 음식을 먹으면서 시티투어를 하는 버스라고 한다. 2층 앞자리에서 티를 마시며 여유 있게 런던 명소를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특정 브랜드 이름이 래핑된 버스
애프터눈티와 음식을 먹으면서 시티투어를 하는 The English Tea Bus
웨스트민스터 사원

어느새 웨스터민스터 사원이 눈앞에 있다. 영국 왕실의 즉위식, 장례식 등 주요 행사가 많이 열리는 곳이다. 사원 옆에 있는 국회의사당과 빅벤 쪽으로 걷는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빅벤과 국회의사당 모습근사하다.

런던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이 건물의 공식 명칭은 201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여 '클락 타워(Clock Tower)'에서 '엘리자베스 타워(Elizabeth Tower)'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정식 명칭보다는 여전히 '빅벤(Big Ben)'으로 많이 불린다. 1859년에 이 시계 종을 설치한자민 홀 경(Sir Benjamin Hall)의 덩치가 매우 커(Big)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정각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다들 빅벤 방향을 바라본다.

"때앵~! 때앵~! 때앵! ... "

정각이 되자 빅벤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몇 년간 보수 공사를 마치고 다시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크고 웅장하다는 런던의 상징적인 종소리는 나에게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매 15분마다 울리는 종소리인 '쿼터 종소리(웨스트민스터 차임)'가 귀에 들어왔다. 이 종소리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의 학교에서 수업 종소리로 들었던 바로 그 네 음(도미레솔)으로 되어 있다. 한국 학교에서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빅벤 종소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니 놀랍다.

웨스트민스터다리에서 본 빅벤과 국회의사당


런던에서 만난 간디

유람선을 타러 템즈강 방향으로 걸어간다. 오늘 유난히 동상을 많이 만났다. 런던에는 버킹엄궁 앞의 니케상(빅토리아 여왕 기념비), 한국의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에 해당하는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 제독 동상 등이 유명하다. 그런데 여기 부근에는 동상이 쭉 줄지어 모여 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의회 광장(팔리아멘트 스퀘어)인데, 민주주의 발달에 기여한 인물들 동상이 12개나 설치되어 있다. 1867년 영국 정치가 조지 캐닝의 동상이 의회광장으로 옮겨진 뒤 2018년 1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세워진 여성 동상인 밀리센트 개럿 포셋(여성 참정권 운동가)까지이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외국인 동상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애브라함 링컨,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그 주인공이다.

영국 의회광장의 동상들. 사진 속 왼쪽이 마하트마 간디, 오른쪽이 밀리센트 개럿 포셋의 동상

흑인 인권을 위해 노력한 링컨과 만델라도 동상을 세울 만한 인물들이지만, 간디 동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시절에 영국에 대항하여 비폭력불복종 시위를 이끌던 간디.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위스턴 처칠 수상마저 단식 투쟁하던 간디가 굶어 죽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그런 인물의 동상을 영국의 중심부에 떡하니 세운 영국인들의 마인드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비유하자면 비폭력독립운동인 3.1 운동을 이끈 유관순 열사, 김구 선생님의 동상이 일본 도쿄 한복판에 세워진 것과 같지 않을까. 과거에 대한 객관적인 반성과 평가라는 차원에서 보면 일본과 더더욱 비교되는 마인드이다. 이런 마인드를 바탕으로 인도계인 리시 수낵이 영국 총리로 선출될 수 있었을 것이다.


몇 년 전에 의회광장에서 처칠, 간디, 만델라 동상을 둘러싼 소동이 있었다. 2020년 미국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런던에서도 열렸다. 그때 시위대가 처칠 수상이 인종차별주의자라며 동상 철거를 주장하자, 극우 보수파가 맞불 집회를 열어 간디와 만델라 동상을 파괴하겠다고 했다. 물론 경찰에 의해서 동상들이 보호되어 파괴되지는 않았다.

최근 유럽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다양한 갈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이민자 정책을 둘러싸고 좌우 대립이 극심하다. 그럼에도 그들의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유서 깊은 유럽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기를 바라본다.


템즈강 유람선과 타워브리지

런던아이와 유람선. 오른쪽은 초록색의 웨스트민스터 다리

강변에 도착하니 찬 바람이 분다. 코트와 목도리를 여미고 템즈강 유람선에 올랐다. 구름 사이로 해가 나와 맑은 런던 풍경을 유람선을 타고 구경할 수 있었다. 유람선은 런던을 대표하는 새로운 관광 스폿이 된 런던아이 쪽으로 이동하여 한 번 더 승객들을 더 태우고 운행을 시작했다.

템즈강을 사이에 둔 양 지역의 경제적 격차가 크다고 한다. 주로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런던아이가 있는 쪽이 열악한 지역이다. 하지만 낙후된 도심 지역을 재개발하여 런던아이부터 타워브리지 사이에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과거 화력 발전소 건물을 현대 미술관으로 재개관한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 대표적이다. 피카소나 워홀 등 거장들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으니 템즈강변을 따라 걷다가 구경해도 좋겠다.


유람선에서 올려다보니 빅벤 근처의 웨스트민스터 다리는 초록색이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이 다리와 가까운 국회의사당 내 하원의 좌석 색깔과 동일한 색깔로 칠했다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다리의 상류에 있는 다음 다리는 램버스 다리인데, 이 다리는 상원의 좌석색인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탁한 템즈 강물(좌), 런던탑(우)

의외로 템즈 강물은 매우 탁하고 흙탕물이었다. 원인은 강바닥의 진흙 때문이란다. 그래도 탁한 흙탕물이지만 런던 부근의 템즈강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라 다양한 물고기가 엄청 많이 잡힌다. 낚싯대를 드리면 바로바로 잡히기 때문에 오히려 손맛이 없어서 낚시를 못할 정도라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템즈 강변 풍경을 즐겼다. 바이킹배도 보였고, 새로 지은 독특한 모양의 첨단 빌딩들도 있었다. 템즈강 유람선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반가운 대상은 바로 타워브리지이다. 균형과 대칭이 잘 어우러진 고전적인 형식의 도개교이다. 이 다리를 배경으로 많은 승객들이 인증 사진을 찍었다. 물론 나도 동참. 타워브리지를 보고 런던탑 근처 선착장에 내렸다. 그리고 영국을 대표하는 메뉴 피시앤칩스를 먹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타워브리지를 배경으로 유람선에서 인증 사진 남기기


런던에서 인상적이었던

런던 시내의 명소들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뉴스 속 런던 특파원들이 서 있던 명소를 직접 방문하니 즐거웠다. 뉴욕과 함께 전 세계 금융서비스의 중심인 런던의 금융가 뱅크 지역(지하철역 이름도 뱅크역)도 기억에 남는다. 런던 금융가가 뱅크 지역이라 불리는 것은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과 그 주변에 금융 기관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런던의 상징인 빅벤과 타워브리지도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했지만, 런던 투어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것은 의회 광장에 우뚝 선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이었다. 해가 지지 않던 제국의 중심부에 식민지 독립운동가의 동상을 세울 수 있는 그 객관적인 성찰과 포용의 마인드. 런던의 금융가만큼이나 인상적인 이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영국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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