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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마을에서 탄광촌까지, 시간을 달리는 협곡 열차

백두대간 협곡 열차 V-트레인 여행기 1

by 새벽강

백두대간 협곡열차

듣기만 해도 마음이 웅장해지는 단어들이 있다. 광개토대왕, 대륙, 발해, 만주 벌판... ‘백두대간’이라는 말도 나에게 그렇다. 백두대간은 호랑이를 닮은 한반도의 중심을 잡아 주는 뼈대와 같다. 백두산 병사봉에서 금강산, 설악산을 지나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그 산줄기를 생각하면 장엄하고 엄숙한 느낌이 든다.


백두대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산들이 솟아 있다. 그리고 그 산에서 흘러내리는 수많은 계곡이 있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에 낙동강이 흐른다.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하여 영남지방을 관통하는 낙동강이 백두대간 협곡 사이로 굽이친다.

그 협곡을 따라 철길이 만들어졌다. 석탄과 목재를 생산하여 운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석탄산업이 쇠퇴하고 나서 그 철길에는 이제 관광열차가 다니게 되었다. 백두대간 협곡의 풍경이 아름다우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인지도 모른다.


백두대간 협곡을 오가는 관광열차는 바로 ‘V-트레인’이다. 이 열차는 사계절 내내 인기가 많다. 봄꽃과 신록, 여름의 푸른 산과 맑은 계곡, 가을 단풍도 인기 있지만, 특히 겨울에 인기가 아주 많다. 겨울 주말에는 이른바 '광클릭'을 통해 원하는 시간대 티켓팅이 가능하다. 백두대간의 차가운 날씨는 눈 쌓인 계곡 풍경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열차 정차역 중에 산타마을로 유명한 분천역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하다.

분천산타마을에서 출발하는 백두대간 V-트레인 열차

분천역과 산타마을

지난해 패배를 딛고 올해는 한 달 전쯤 펼쳐지는 티켓팅 전투에서 마침내 승리하여 1월의 어느 토요일 길을 나선다. 드디어 백두대간 협곡 열차를 탈 기대감을 안고.

꾸물꾸물한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지만, 대구에는 눈이 그리 호락호락 내리지 않는다. 고속도로로 영주까지 가는 사이 하늘은 점점 어두워진다. 한때 경북 북부지방의 철도 교통의 요지였던 영주는 이제는 조용한 전원도시의 모습이다. 미리 검색해 둔 맛집에 들러 식사 주문을 했다.


"어, 창밖에 봐요. 눈이야!"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창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이 주는 감성에 젖는다. 마음도 포근해진다. 영주 시내에서 분천역으로 향할 때 소담스레 내리던 눈발이 점점 굵어진다. 눈길을 조심조심 운전한다.


경북 북부지방은 예전에 강원도 못지않은 교통 오지였다. 하지만 요즘엔 도로 상황이 많이 나아져서 쭉 뻗은 길을 따라 달릴 수 있다. 어느새 분천역이다. 멀리서 봐도 빨간 지붕들이 모여 있는 풍경이 여기가 바로 산타 마을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열차 시각보다 한참 여유 있게 도착한 덕분에 마을 구경에 나선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해주는 커다란 트리 구조물
산타할아버지와 순록을 보며 썰매도 탈 수 있는 산타마을


아주 크고 뾰족한 원통 모양의 트리 구조물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해준다. 그리고 마을 곳곳에 산타할아버지들이 보인다. 물론 진짜 산타는 아니다. 그렇지만 분천역 일대에서 매년 열리는 산타 축제에서는 진짜 산타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산타의 나라 핀란드에서도 방문한다고 하니 다음에는 축제에 맞추어 방문해 봐도 좋겠다.


분천역 앞 포토존

산타우체국 느린 우체통

산타할아버지도 구경하고, 동네 곳곳의 핫플레이스를 돌아보고 언덕 위 분천역으로 올라간다. 분천역 앞에는 눈썰매를 끌고 있는 산타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있다. 누구나 산타 옆에 앉아 보고 싶게 만드는 그 썰매에 사람들이 다들 활짝 웃으며 사진을 남긴다.


분천역 작은 역사 바로 옆에 분천산타우체국이 있다. 추워서 몸도 녹일 겸 들어가 본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실내가 잘 꾸며져 있다. 둘러보니 '느린 우체통'이 있고, 산타마을이 그려진 엽서를 판매하고 있다.

"우리 엽서 한 장씩 쓰자!"

눈 쌓인 바깥이 보이는 창가에 나란히 앉아 엽서 한 장씩 쓴다. 손글씨를 써본 지 오래되었지만 또박또박 글자마다 마음을 담아 본다. '느린 우체통'에 넣으면 내년 크리스마스에 배달이 되고, 그 옆 우체통에 넣으면 여행이 끝난 후에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며칠 뒤에 받기로 한다. (실제로 며칠 뒤에 집으로 우리가 보낸 엽서가 도착했다. 각종 고지서 사이에 배달된 엽서가 반가웠다.)

엽서를 보낼 수 있는 분천역산타우체국


설국열차를 타고 겨울 왕국 속으로

분천역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열차다. 잠시 뒤 우리가 타고 출발할 V-트레인이 플랫폼에 정차해 있다. 창이 넓은 빨간 열차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어울리기도 하고, 외관이 무척이나 이국적이다. 알프스 산악 구간을 달리는 스위스 열차 같기도 하고, 런던 킹스크로스역에서 해리포터가 호그와트로 타고 가는 열차 느낌도 있다. 살짝 낡은 모습이 오히려 감성을 돋게 한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니 사람들이 하나둘 플랫폼으로 모여든다. 다들 출발하기 전에 빨간 열차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기관사의 안내와 함께 열차가 출발한다. 열차 내부는 바깥 풍경을 최대한 잘 볼 수 있도록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인 열차 좌석 방향도 있지만, 바깥 풍경을 마주 보는 좌석이 특히 인기가 많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으로 백두대간 협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소나무가 빽빽한 산골짜기를 따라 얼어붙은 계곡물 위로 하얀 눈이 내린다. ‘설국열차’를 타고 ‘겨울왕국’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다음 주에 2화로 이어집니다.

작가님, 독자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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