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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Aug 18. 2022

뒷산에서 쿠-스틱 치기

나의 뒷산 답사기 : 뒷산 걷기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10년 만에 등산, 정확히 표현하자면 뒷산 언저리 걷기를 한 뒤로 나는 갑자기 산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산을 좋아했다. 가족과 함께 산행을 할 때면 힘들다고 칭얼대는 동생과는 달리 나는 매 순간 감탄사를 내뱉으며 걷곤 했고, 대학교 때는 친구와 거의 매주 일요일 등산을 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한동안 왜 그렇게도 산을 멀리했는지는 정말로 모를 일이다.


주말, 나는 다시 뒷산에 가기로 결심했다.


지난 번처럼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산에 가기로 한 것이다. 금요일 저녁, 주말이니 오랜만에 과식도 좀 하고 평소처럼 밤늦게까지 넷플릭스를 보고 잠들긴 했지만 나는 다음 날 새벽 기상을 위해 알람 시계를 새벽 6시에 맞춰놓고 잠에 들었다.


물론 내가 이 날부터 주말마다 새벽에 일어나서 뒷산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정말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우리 인생은 생각처럼 훈훈하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내가 잠에서 겨우 깼을 때 시각은 11시였다.




부끄럽지만 당시 대체로 나의 일상이 그랬다.


주중에는 알람을 7시 30분에 맞춰놓긴 했지만 스누즈 버튼을 계속 누르면서 8시 즈음에 겨우 일어나 세수만 대강 하고 회사에 갔다. 저녁이면 조깅을 하긴 했지만 그 뒤 간식을 먹으며 밤늦게까지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았다. 주말이면 더 심해졌는데 금요일 밤에는 새벽까지 과자나 씹으면서 넷플릭스를 보다가, 토요일에는 오후 2시, 3시쯤 겨우 깨서 아침밥을 먹고 다시 넷플릭스 정주행을 했다. 그러니 갑자기 새벽 기상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평소에 나 같았으면 ‘이왕 늦잠 잔 것, 넷플릭스나 보지 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말오전 11시에 일어난 것도 나에게는 충분히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가끔 나는 지나치게 긍정적일 때가 있는데, 이 날이 바로 그 날이었다. 나는 적어도 오전에 일어난 것만으로도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아침을 대강 먹고 조깅 차림으로 뒷산으로 향했다.


지난 번 물이 부족했던 것을 떠올리고 물은 넉넉하게 챙겼다.


다행히 10년도 훨씬 전에 쓰던 구닥다리 등산가방이 하나 있어서 그 안에 생수병을 몇 개 던져 넣었다. 매일 밤마다 과자를 탐식하면서 넷플릭스를 봤던 주제에 다이어트 중이라는 이유로 간식거리는 전혀 챙기지 않았다. 면으로 된 티셔츠와 후드티, 그리고 조깅바지 차림을 한 나는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뒷산으로 향했다.


아파트 놀이터 근처의 쪽문을 지나 등산로 입구를 통과해서 숲길을 지나갔다. 1월 1일 지나쳤던 등산로 표지판도 보였고, 또 한참을 걸어가자 전에 멈춰 서서 돌아갔던 지점이 나왔다. 마치 산 속의 과수원처럼 주위에 잡목이 우거진 편평한 공간이다.


내 눈 앞에, 지난 번 가보지 못 했던 숲길이 보였다. 지난 번에는 물이 부족해서 되돌아와야만 했지만, 오늘 내 등산배낭 안에는 아직도 2병의 생수가 남아있었다.


나는 다시 용감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마치 적진으로 향하는 인디언 전사처럼.




북미 인디언들은 적들과 싸울 때 적에게 자신의 용맹함을 자랑하고 적을 기죽이기 위해서 ‘쿠 스틱 치기(Counting coup)’라는 것을 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적진으로 용감하게 말을 타고 달려가서는 지팡이로 적의 뒤통수를 툭 치고 약을 올리고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따금씩은 적을 터치하거나 적의 물건을 훔치면 쿠 스틱 치기에 성공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한다.


뒷산 등산이 전쟁은 아니었지만 나는 마치 쿠 스틱을 들고 적진으로 향하는 인디언 전사가 된 기분이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산 속을 혼자 걸어가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숲에 눈으로 터치를 하면 뭔가 대단한 성취라도 될 것 같이 느껴졌다.


고백하자면 사실 한 번도 산에 혼자 가 본적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한동안 산에 안 갔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가족과도 멀리 떨어져 살게 되고, 산을 좋아하는 친구와도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되면서 산에 함께 갈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등산을 한 것은 거의 10년 만이었고 혼자서 등산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다보니 막상 혼자서 산길을 걷다보니 길을 잃을까봐 덜컥 겁부터 났다.  


때는 바야흐로 2019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등산 앱 따위를 많이들 쓰고 있었고 등산 붐이 절정이라 다들 레깅스에 운동화를 신고 산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1월 1일 조깅 차림으로 물통하나만 들고 산에 들어가기도 했으면서, 막상 산에 들어가니 조난당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 것이다.




나는 매사에 겁이 좀 많은 편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간다는 속담을 내 삶에 적용한다면, 나는 돌다리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가 새로 다리를 지어야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서는 결국 혼자 지쳐서 계획을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나는 오랜만에 다시 만난 산은 포기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1월 1일에 뒷산을 걸으며 느꼈던 행복감이 컸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 행복감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사실 오랜만에 산길을 걸은 뒤 나는 주눅이 들어서 쥐죽은 듯이 있었던 직장에서도 다소 활기를 되찾았고, 어쩐지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돌아온 모험가의 기분이 바로 이랬을까.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활기가 샘솟아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의 쿠스틱을 다잡았다.


나한테 정말로 쿠스틱, 아니 등산 스틱이라도 있었으면 괜찮은 비유가 되었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물 두병과 배낭과 허리춤에 묶은 땀에 절은 후드티가 전부였다.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앞으로 쭉 이어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그저 걸어갔다. 가끔씩 뒤를 확인해보면서. 그리고 얼마나 걸었는지 헷갈릴 즈음 생수가 다 떨어졌고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걷자.


평소에 조깅을 한 덕인지 체력은 충분했지만 돌아갈 에너지를 남겨놔야 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동네 뒷산에서 비상식량 하나 없이 조난될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나는 아쉬워하며 길을 되돌아갔다. 다음에는 뭔가 간식거리라도 싸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나는 매주 주말마다 동네 뒷산을 조금씩 탐험해갔다.


사실 진짜 동네 뒷산이었지만, 혼자 등산을 해 본적 없는 나로서는 정말로 탐험처럼 느껴졌다. 나는 북미인디언들이 쿠 스틱 치기를 하는 것처럼, 조금씩 더 멀리, 더 멀리까지 걸어 가보았다. 


1km가 2km가 되었고, 2km가 3km, 4km가 되었다. 7km가 떨어진 곳에 봄이 되면 진달래가 멋지게 핀다는 어떤 산에 대한 표지판은 보았지만, 거기까지 가볼 수 있게 된 것은 무려 5개월 뒤였다. 봄도 훨씬 지났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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