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애리 Oct 19. 2015

러시아 곰에 대한 동상이몽

뜬금없이 블라디보스톡 9

이따금 러시아를 곰에 비유한다. 다소 미련하게 생겼지만 덩치가 크고 사나워서 위험한 동물인 곰.


블라디보스톡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곰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테오도르 루즈벨트가 사냥하다 놓아준 곰에 대한 일화(그래서 테디베어가 탄생했다고 하는 설이 있다)와 서커스에서 곰이 재주를 잘 부린다는 것 두 가지 뿐이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돌아온 뒤 나는 곰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쌓게 되었다. 물론 거기서 곰을 만났다거나하는 이유 때문은 아다.


아르세니예프 박물관의 곰 박제

그것은, 블라디보스톡공항에서 비행기가 딜레이되는 바람에 만나게 된 캄차카 출신의 아저씨 때문이었다.


사실, 비행기가 딜레이되면서 항공사에 좀 적극적으로 항의한 사람들이 한국인들 가운데는 내가 있었고 러시아인들 가운데는 세르게이 아저씨가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둘이서 밥을 같이 먹게 되었다. 항공사에서 주는 기내식 밥이 뭐가 그리 맛있겠느냐고 아저씨는 근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우리는 밥 먹으면서 항공사 욕을 신나게 하게 되었다. 알고보니 이 아저씨는 한국에서 선박 관련 일을 하고 있어서 한국에 몇 번 오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세르게이는 러시아 북쪽의 캄차카 출신이었는데, 그 지역에는 곰이 많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나는 캄차카라고 하면 왠지 아이누와 에스키모와 어울려 살고 있을 것 같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런 내 생각을 읽은 듯 시내 풍경과 시청 건물을 보여주면서 캄차카 관광홍보대사처럼 캄차카로 놀러오라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곰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캄차카엔 얼마나 곰이 많은지 버섯 따러 갈 때도 라이플을 하나 들고 가야 안전하다는 얘기를 하면서 곰에게 공격당하는 등의이야기를 시리즈별로 해주었다.


세르게이는 일본인들에게 감정이 좀 있는 듯 했는데, 일본인이 곰한테 공격당하는-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야기를 계속 해준다. 한국인인 내가 일본인을 당연히 싫어해서 그 이야기를 재미있어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전세계 전쟁터와 위험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던 일본인 사진가가 캄차카에서 곰한테 잡아먹힌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일본인 관광객들이 곰한테 쫓기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사실 첫번째 이야기는 좀 무서웠는데, 이 아저씨가 보여준 곰한테 쫓기는 영상까지 결합되어 나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돌아온 뒤 계속 곰이 나오는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하지만 일본인 관광객 이야기는 조금 웃겼다. 세르게이의 말에 따르면, 캄차카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헬리콥터를 빌려서 곰사냥을 하러 온다고 한다. 헬기를 타고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서 관광객들을 내려놓은 뒤, 관광객들이 엽총을 들고 기다리고 있으면 헬기가 숲에서 곰을 몰아 그쪽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여느때처럼 헬기조종사가 일본인 관광객들을 데리고 가서 숲 속 한 켠에 내려놓고, 숲 속에서 곰을 몰아갔다. 곰 몇 마리가 헬기가 쫓아오니 겁이 나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숨어있는 곳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일본인 관광객들은 자신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곰들을 보고 너무 놀란 것이다. 그들은 놀란 나머지 자신들이 사냥을 왔으며, 손에 엽총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어버렸다. 그래서 일본인 관광객들은 총을 손에 든 채 곰을 피해서 헐레벌떡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인 관광객들의 바로 뒤에 곰은 헬리콥터를 피해서 전속력으로도망쳤다. 가장 뒤에 있는 헬기 조종사는 곰을 피해 도망치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어이없어하면서도 그래도 자기가 맡은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 곰을 계속 몰아갔다. 곰은 더 빨리 도망쳤고, 일본인 관광객들은 괴성을 지르면서 더 빨리 뛰었다.


결국 곰이 뛰는 속도가더 빨랐기 때문에 일본인 관광객이 따라잡히고 말았다. 그런데, 보통 곰은 사람을 만나면 공격을 하는데, 이 날 곰은 헬기에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그대로 지나쳐앞질러 뛰어가버렸다는 것이다. 곰이 일본인 관광객들을 지나쳐 수풀 속으로 숨어버린 뒤에야, 일본인 관광객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라이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세르게이 아저씨는 그 날 저녁을 먹으면서 나에게 수십편의 곰 이야기와, 왜 핸드폰에 그런게 저장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수 편의 곰 공격영상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자랑스럽게 말한다:


언제 한 번 캄차카에 놀러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캄차카에는 안갈 거다. 그날 세르게이는 자랑스런 고향에 대해서 홍보를 했다고 만족했고, 나는 지도 상에서 여행금지지역을 하나 추가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원을 함부로 빌면 안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