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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Oct 20. 2015

살바도르 달리: 꿈의 해석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적 그림에서 무의식 찾기

죽은 형의 이름을 가진 아이


1904년, 스페인 피게라스에서 공증인의 둘째아들이 태어났다. 


형은 얼마 전 죽었고, 그 아이는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첫째아들을 잃은 부모는 둘째인 그 아이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쏟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늘 자신이 형의 대체물이고 언젠가 형처럼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가 걸어놓은 형의 사진을 보면서 그 아이는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죽은 사람의 모습을 늘 보아야만 했고, 죽은 형과 자신이 다른 사람임을 끊임없이 증명하기위해서 괴상한 짓을 해대곤 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omingo Felipe Jacinto Dalí i Domènech, 1904~1989)였다. 


중산층 법률가의 아들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다소 신경증 증세가 있는 예술가가 되었다. 1922년 달리는 마드리드에 있는 예술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다양한 미술사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인상파, 점묘파, 그리고 큐비즘에 이르기까지 그는 다양한 미술사조를 실험해가다가 그는 결국 기하학적 이미지에 싫증을 느끼고 고전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의 그림은 점점 어린시절의 환상과 내면세계를 탐구해가기 시작하고, 그는 결국 초현실주의 대표적인 예술가가 된다. 

창가에 서 있는 소녀, 1925

살바도르 달리의 1925년 작 <창가에 서 있는 소녀>는 이러한 불안정한 정신세계에 대한 탐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벽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고, 그저 커튼만이 바람에 가볍게 휘날리고 있는 열린 창문이 있다. 창문 너머로는 잔잔한 바다와 거기에 맞닿아있는 하늘이 보인다. 창문 앞에는 한 소녀가 서 있다. 소녀는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선 채 창 밖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어쩐지 이 공간이 실재가 아닐 것이라는 느낌을 자아내는 구도이다. 소녀는 마치 꿈이나 환상 속의 존재같고, 그 존재는 열린 창문이라는 상징적 소재를 통해서 마음 속을 엿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달리는 자신의 끊임없이 자신의 불안한 내면세계를 탐구해갔다. 이러한 탐색은 예술에만 그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겪은 이후로, 유럽에는 이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회의가 싹트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예술형식과 사회문화에 대해서 거부하는 허무주의적인 다다이즘(Dadaism)으로 이어졌다. 기존의 것을 거부하는 다다이즘은 이후 무의식 속에서 이성과 논리에서 해방된 이미지들을 표현하는 초현실주의(Surrealism)으로 이어진다.      


“예술은 무의식이나 과거의 체험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지그문트 프로이드     


인간의 숨어있는 무의식에 대한 탐구를 주창했던 프로이드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살바도르 달리 역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프로이드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단순히 예술적인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정신적 불안을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했다.      

욕망의수수깨끼 ; 나의 어머니,어머니,어머니, 1929

프로이드 정신분석학과 살바도르 달리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분석학 창시자이다. 히스테리와 신경증과 같은 분야에 임상연구를 하던 그는 꿈의 해석과 자유연상 같은 방법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심리를 생리학이나 신경학으로부터 분리를 시켰다. 그는 ‘꿈’을 탐구하면서, 꿈이 단순히 수면 중의 신체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내부 장기에 대한 반응이라는 당시의 이론에서 벗어나서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층 더 나아가 꿈이란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소망충족을 위한 것으로, 이러한 꿈을 통해서 신경증과 노이로제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Dream Caused by the Flight of a Bee around a Pomegranate, 1944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의 방법으로서, 꿈의 분석과 함께 자유연상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 프로이드는 꿈 속의 상징을 찾고 자유연상을 통해서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억압된 욕망을 찾아내려고 했다. 꿈이란 바로 이러한 억압된 욕망을 상징을 통해서 드러내어주며,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도구였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심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성(性)이다. 


이것은 어린아이도 마찬가지로, 구강에서 배변행위, 그리고 성기를 통해서 어린아이 역시 쾌감을 느끼게 되며, 남자 아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어린 시절 가장 첫 이성인 어머니에 대해 성적 동경을 느끼고 아버지에 의한 거세공포를 느끼게 된다고 하며, 여자 아이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남근을 선망하고 아버지에 성적 애착을 가지는 일렉트라 콤플렉스에 빠지게 된다고 해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프로이드의 이러한 성이론들은 현재에도 많은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그의 정신분석학은 현대 심리학의 시초가 되었고 많은 방법론과 용어들이 현대 심리학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프로이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달리의 작품 속에서는 꿈의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꿈 속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기억 속에 있는 다양한 사물과 사건들이 비논리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실제 형상은 왜곡되고, 나타나는 사물은 논리적 영속성이 없으며, 꿈 속의 공간과 시간 역시 현실과는 다르다. 꿈 속에서는 사물에 대한 집착과 콤플렉스가 환상적인 이미지로 그대로 표현된다. 달리는 이러한 꿈의 속성을 자신의 작품 속에 드러내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과 양갈비를 함께 그린 남자


1925년, 초현실주의자 파티에서 달리는 동료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인 갈라를 만나게 된다. 달리의 첫 전시회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사랑의 도피를 하고, 결국 갈라는 엘뤼아르를 떠나 달리와 결혼을 하게 된다. 


달리는 아내를 양갈비와 함께 그리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의 독특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할수 있다. <양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에서 그는 갈라의 얼굴과 함께 양갈비를 그녀의 어깨 위에 그려넣었는데, 왜 하필 양갈비와 아내를 함께 그렸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갈라와 양갈비를 둘 다 좋아한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갈라와의 만남은 달리에게 큰 전환기가 되었다. 달리에게 갈라는 연인이자 어머니, 뮤즈, 조언자였다. 달리는 갈라와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정신적 불안과 이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해나갈 수 있었다. 결혼 이후 달리는 평생을 갈라와 함께하면서, 아내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달리의 그림에서 갈라라는 여성은 많은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화가의 아내로서의 이미지를 비롯하여 신화 속의 존재(레다), 성스러운 여신(성모)로도 나타나며, 심지어 달리는 자신의 그림에 사인을 하면서 갈라의 이름을 넣기도 했다. 


갈라와의 결혼 이후, 예민하고 불안하기까지 했던 달리의 작품은 수많은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연출해내게 된다. 달리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무의식을 탐구하면서 그것을 꿈과 환상 속의 이미지들로 구현했다.      



살바도르 달리꿈 속의 무의식을 탐험하다


Dali at the Age of Six...(제목후략), 1950

달리의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꿈의 이미지들은 어떤 의미에서 사실적이다. 


달리는 그의 작품 속에서 실제의 사물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고, 어떤 경우는 실제의 사물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상세하게 묘사한다. 달리는 꿈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실재하는 사물을 전혀 새로운 구도를 통해서 환상적으로 나타내거나, 그것을 이질적인 낯선 사물과 결합시키거나, 이중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며, 환상적인 존재를 이미지로 구현한다. 


흰색의 고요, 1936

달리의 <흰색의 고요>는 바닷가의 풍경이다. <리가 항구의 풍경>과 같은 그림 속에서 나타나는 풍경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정경이지만, 마치 환상 속에 있는 느낌이 든다. 


빛이 반사되어 안개와 같이 뿌옇게 보이는 바다와 경계가 어딘지 헷갈릴 정도로 바다와 비슷한 색상의 하늘이 보인다. 그림의 아래 쪽 중앙에는 한 여자가 서 있고, 그 옆에는 바위 위에 어부와 같은 남자가, 그리고 여자의 저 뒤쪽 멀리 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보인다. 오른쪽 옆에는 바위 옆 배를 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 풍경은 달리의 그림 속에서 마치 비현실적인 꿈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리가 항구의 풍경,1950


달리의 작품 속에서는 이중적인 이미지를 발견할 수 도 있다. 사람들이 있는 평범한 풍경을 기묘하게 배치하여 그 속에서 볼테르의 얼굴을 발견한다거나, 여러 가지 겹쳐있는 이미지들을 통해서 사람의 얼굴을 찾아볼 수도 있다. 

Slave Market with the Disappearing Bust of Voltaire, 1940


달리의 작품 속에서는 평범한 존재도 초현실적인 것으로 변한다. 달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기억의 고집>에서 나타나는 녹아내리는 시계나, 식물의 형상을 한 사람의 모습, 고무처럼 늘어나는 피아노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베이컨은 얼굴이 되고 달걀은 사람이 된다. 상상 속에만 있을 법한 존재도 찾아볼 수 있다. 달리의 그림 속에서 여인의 몸에 서랍이 잔뜩 달려 있기도 하고, 기린은 불타고 있으며, 사람의 형상을 한 음식물이 서로를 먹기도 하며, 육중한 코끼리가 새처럼 가늘고 긴 다리를 하고 걸어다니기도 한다.


시간의 고집, 1931


달리의 많은 작품은 그 자체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림 속에서 나타나는 그의 편집증적이고 불안한 정신세계는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혼란을 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는 상상의 한계가 없는 그의 작품을 만나면서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인간의 정신을 단순한 화학물질과 회색뇌조각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의식이라는 영역으로 확장했듯이, 달리의 작품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꿈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정신을 탐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The Elephants,  1948



참고

지그문트 프로이드정신분석입문

지그문트 프로이드꿈의 해석

이정은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연구한남대학교(학위논문)

김서현초현실주의 상상적 이미지 분석에 관한 연구한국교원대학교(학위논문)

정선열초현실주의 작가 Salvador Dali의 작품연구건국대학교(학위논문)

정지영프로이드 정신분석 이론으로 본 살바도르 달리 회화연구목포대학교(학위논문)

김경선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과 심리적 양상에 따른 작가연구.달리뭉크쉴레를 중심으로강원대학교(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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